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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백조의 호수’ 7.1~6 & ‘로미오와 줄리엣’ 7.9~13
노련함으로 빛난, 무대 위의 별
백조의 섬세함, 줄리엣의 애절함을 담은 서희의 활약(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지난 7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이하 ABT)의 작품이 연달아 무대에 올랐다. ABT의 수석무용수 서희는 두 작품 모두 주역을 맡으며 활약했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백조와 흑조의 1인 2역을 소화하는 표현력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비극적 스토리에 따라 변해가는 섬세한 감정을 드러냈다.
섬세함으로 완성된 백조
7월 3일, 서희가 오데트로 분해 무대에 올랐다. 이번 작품에서 안무를 맡은 케빈 멕켄지(1954~)는 발레 분야에서 잘 알려진 감독이다. 뉴욕 시립 발레학교와 ABT에서의 무용수 경력을 바탕으로 테크닉과 예술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고전 발레 작품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무대 디자인·조명·의상 등 꼼꼼하게 선택하여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는 무용수들이 캐릭터의 감정을 잘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무대를 장식했다.
‘백조의 호수’는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공주 오데트와 그 반대 캐릭터인 흑조를 모두 소화해야 하는 만큼, 주역 발레리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역은 기술은 물론 감정 표현, 연기력 등의 뒷받침을 요구한다.
서희는 이 모든 역량을 갖춘 발레리나로서의 모습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가 우아하게 발끝으로 서 있거나(relevé) 가녀린 몸이 날아갈 듯 회전(pirouette)을 거듭할수록 관객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백조의 호수’는 여러 장면 중 많은 백조가 하나가 되어 동시에 움직이는 코르 드 발레(군무)가 유명하다. 또한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왕자가 사랑에 빠져 춤을 추는 사랑의 파드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특히 흑조가 되어 32번의 회전을 해야 하는 푸에테는 예술적, 기술적으로도 완벽했다.
대사가 없는 발레에서 연출만큼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다. 지휘자 데이비 라마르슈는 ‘지젤’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다양한 발레 작품을 지휘했다. 그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동선은 물론 막이 바뀔 때마다 관객들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죽음과 닿은 사랑으로 달린 소녀
일주일 후인 7월 9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서희를 만날 수 있었다. 거의 연달아 두 작품이 공연됐기에, 무용수들이 동시에 작품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다. ‘백조의 호수’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두 서희의 상대역을 맡은 수석무용수, 코리 스턴스는 그녀의 턴과 리프팅을 균형 있게 잡아주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발레곡이다. 극적인 서사와 풍부한 감정의 음악을 위해 옴스비 윌킨스가 지휘봉을 잡았고, 케네스 맥밀런의 안무 버전으로 공연됐다. 맥밀런은 감정의 깊이와 인간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연출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서정적이면서 화려한 동작들과 발코니에서 사랑을 나누며 연기하는 장면은 고난도의 리프팅과 기술이 필요하다. 코리 스턴스와 서희의 호흡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서막에서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며 두 가문의 갈등을 보여준다. 초반에 서희는 푸근한 풍채의 유모와 함께 인형을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통통 튀는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서는, 미래에 다가올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고통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부모의 반대에 저항하며 결국 죽음으로 결말을 맞이하는 줄리엣을 어떻게 연기할지 기대하며 시선을 따라갔다.
2막에 등장하는 무도회에서는 웅장한 음악 속 가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ABT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거대한 세트와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으로도 유명하다. 무도회장을 비롯해 베로나의 거리, 줄리엣의 침대와 발코니 등 다양한 배경이 등장하며 화려한 의상으로 당시 캐릭터의 신분과 성격을 알 수 있다. 특히 두 사람을 반대하는 집안끼리 칼싸움이 많기 때문에 날아오를 듯 춤을 추며 상대와 칼싸움을 완벽하게 맞추는 동작은 관객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움
긴 흐름을 가진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번의 인터미션을 가져야 했다. 드라마틱한 줄거리로 인해 등장인물도 다양했다. 그에 비해 각 장면의 전환은 빨랐다. 무대 위에 8개의 레이어가 설치되어 있었고, 최대한 막의 회전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치임이 엿보였다. 막이 바뀌는 동안에도 음악이 빈자리를 채워주며, 극의 흐름을 깨지 않도록 도왔다.
두 번째 인터미션 후, 서희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졌다. 앞선 장면들에서는 다양한 무용수의 군무로 화려함을 보여주었다면, 후반부에는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중심축이다. 서희는 반대하는 부모와의 갈등,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연기했다. 먼저 죽은 로미오를 따라가기 위해, 약을 먹은 후 비틀거리다가 가녀린 몸이 반으로 접힐 만큼 누워 손을 뻗는 모습은 비극적 사랑의 비통함을 격렬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두 작품으로 서희는 기술적인 테크닉은 물론, 노련한 무대 매너와 감정의 몰입을 끌어올리며,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어디까지인가. 공연을 보는 내내 찬사를 멈출 수 없었다. ABT에서 오랜 기간 수석무용수로 자리를 지켜온 서희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글 양승혜(미국 통신원) 사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