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Y
첼리스트 문태국
‘나’보다 ‘바흐’를 보여주기 위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음반 발매와 공연을 앞둔 이의 고민
2014년 20세의 나이로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아시아 최초 우승을 달성했던 ‘어린’ 첼리스트 문태국이 어느새 ‘젊은’ 첼리스트가 되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들고 왔다. 워너 클래식스 레이블의 음반 발매와 동시에 10월 말, 그의 독주회가 열린다. 본지와의 인터뷰는 오랜만이라 다양한 주제의 질문을 준비해 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바흐 이야기만으로도 예상했던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음반을 준비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그는 수십 가지의 고민을 만났고, 아직 이와 싸우고 있는 듯했다. ‘문태국의 바흐’보다는 ‘바흐의 바흐’에 접근하고 싶다는 문태국의 바흐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첼리스트들이 도전하고 싶어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녹음하게 됐다. 본인도 “죽기 전에 해보고 싶던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라고 전했는데, 계획하고 있던 음반은 아니었나?
올해 음반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바흐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초반 구상 과정에 피아니스트와 일정이 맞지 않아 고민했는데, 음반사가 무반주 작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나는 바흐 작품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코다이 작품을 비롯하여 다른 작품 이야기를 꺼냈더니, 다시 그쪽에서 “그거 말고 바흐 무반주 작품은 어떠세요”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바흐 무반주 작품은 언젠가의 과제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해결될 줄이야.
전곡을 녹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여러 무대에서 각 곡을 연주했고, 1번의 경우는 본인의 음반 ‘첼로의 노래’(Warner Classics/ 2019)에도 담겨 있다. 앞선 음반과는 해석이 다른가?
이번 녹음을 진행하면서, 그 음반의 연주를 다시 들으려고 했는데, 몇 마디도 채 가지 못하고 음악을 껐다.(웃음) 실상 해석이 너무 변해서 고민이 될 정도이다. 음반의 녹음은 1월에 1~4번과 4월에 5·6번으로 나누어서 진행했는데, 벌써 이번 녹음과도 다르게 연주하고 있다.
몇 달 새에 생각이 변했나? 고민이 되는 이유는?
공연을 위해 계속 공부를 하고, 여러 전문가와 대화를 나눠 보니 새로운 지식이 늘었다. 9개월 동안 벌어진 일도 무척 많았고. 지금 8월 말의 생각이 이러한데, 10월 말, 공연 때가 되면 또 연주가 다를 것이다. 공연에 오는 관객들이 발매되는 음반과 내 연주가 너무 달라서, 내 음반이 프로듀싱의 산물이라 오해하진 않을까?(웃음)
궁극적인 작품 해석 방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간 문태국을 보여주는 것일까?
정반대이다. 물론 바흐 작품의 연주는 개인의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고 녹음도 무척 많다. 카살스부터 시작하여 수백 장의 음반이 있는데, 그중에서 ‘와, 이건 정말 내가 듣고 싶은 바흐다’라고 꼽는 음반은 다들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적지 않은 수의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보다는 자기 개성에 중심을 두는데,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그것이 아니더라. ‘문태국의 바흐’보다 ‘바흐의 바흐’에 다가가고 싶었다.
6번을 녹음하기 위해 고(古)악기인 비올론첼로 피콜로도 구입하고, 바로크 현과 거트현을 사용하는 등 ‘시대연주’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도 ‘바흐의 바흐’를 위한 것인가?
내 수준에 ‘시대연주’는 너무 거창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바흐의 시대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비올론첼로 피콜로를 구입했다. 이는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이었는데, 미국에 바로크 악기 딜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0시간을 운전하여 찾아간 시골 마을에서 간신히 구입했다. 비올론첼로 피콜로는 5현으로 되어 있는데, 이 악기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지금까지 4현 첼로로 모음곡 6번을 연주하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게 되었다.
공연에서도 비올론첼로 피콜로와 거트현을 만나 볼 수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거트현 부분은 고민 중이다. 관객이 감상하기에는 철현 소리가 훨씬 깨끗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200년 묵은 간장을 떠올려 보아라. 처음 맛봤을 때는 그 맛이 낯설고, 굳이 이 간장을 써야 할지 고민되지만, 계속 접하면 그 매력에 빠지는 이가 생긴다. 하지만 내 취향을 고집하겠다고 남의 입에 맘대로 200년 묵은 간장을 넣는 것이 맞을까? 그렇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더 즐겁지 않을까? 이렇게 몇 주간 더 고민을 반복할 것 같다. 혹시 몰라 거트현은 일단 잔뜩 사뒀다.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에는 악상 기호가 거의 없다. 이러한 작품을 해석하다 보면 주관이 많이 개입될 것 같은데, 어떻게 중심을 잡았나?
바흐를 연구하는 음악학자에게 여러 번 레슨을 받았다. 공부를 해보니 악상 기호가 필요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바로크 시대에 살았던 당대 연주자들에게는 그들에게 통용되는 법칙이 있었고, 그 법칙은 말 그대로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악보에 표기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 법칙을 모르는 우리에겐 정말 고역이지만, 그 법칙을 차근히 익히다 보면 각 악구의 세밀한 셈여림, 필요한 보잉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공부하며 한 마디 한 마디씩 새롭게 읽히는 기분은 정말 신기했다.
음악학자에게 레슨을 받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떠올렸나?
지난여름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말보로 페스티벌의 연주자로 초청되어 7주간 미국 버몬트에 머물렀는데, 그곳에 바흐를 연구하는 일본인 연구자분이 도서관 사서로 계셨다. 대화를 나눠 보니 그분은 비올론첼로 피콜로에 관한 논문을 쓰고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연주하는 바흐 스페셜리스트였다. 조언을 구했더니, 그분은 흔쾌히 이를 수락했고, 그렇게 7주의 페스티벌 폐막 전날까지 그분께 매주 레슨을 받았다.
기가 막힌 인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알고 봤더니 일본의 첼리스트 스즈키 히데미(1957~)와 함께 연주하는 사이였다! 나는 음반을 녹음하는 동안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다른 연주자의 음반은 거의 안 들었는데, 그럼에도 찾아 들은 것이 있다면 스즈키 히데미의 연주와 피터 비스펠베이(1962~)의 연주였다. 사서분은 나를 스즈키 히데미와 연결해 주겠다고 했고, 10월 초에 스즈키 히데미에게 레슨을 받게 됐다.
진실된 자세로 배움을 좇고, 학업을 즐기는 것이 느껴진다. 줄리아드 음악원의 최고연주자 과정을 막 마쳤는데,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계획 중인가?
가을부터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음악원의 비스펠베이 교수 아래에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게 됐다. 매번 ‘이놈의 공부는 언제 끝나나’ 싶다가도 좋은 선생님께 가르침을 얻으면 의욕과 학구열이 끓어올라서 정한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40세의 문태국, 50세의 문태국을 그린다면?
10년, 20년을 더 살면 분명 후회하는 부분이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봤을 때 더 나아간 사람, 더 성숙해진 사람이 되어 지금의 나보다 그때의 나를 스스로 더 좋아하길 바란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크레디아
문태국(1994~) 뉴잉글랜드 음악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2014년 카살스 콩쿠르에서 아시아 최초 우승, 2019년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4위를 차지했다. 2019년 워너 클래식스에서 데뷔 음반 ‘첼로의 노래’를 발매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문태국 첼로 독주회
10월 2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오후 2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3번
오후 8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4~6번
11월 2일 오후 4시 평촌아트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 2, 5, 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