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 & 일 포모 도로 ‘비욘드’, 바로크 레퍼토리를 관통하는 1인극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2월 3일 9:00 오전

CLASSICAL MUSIC

 

오를린스키 & 일 포모 도로 ‘비욘드’

바로크 레퍼토리를 관통하는 1인극

1월 11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서양음악의 특징과 양식은 세기마다 무척이나 다르다. 18세기 모차르트부터 19~20세기의 오페라를 주로 접하는 오늘날의 관객이 가장 친숙한 성악 양식은 오페라 부파와 같이 춤의 어법을 활용한 아리아 또는 프리마 돈나를 비롯한 스타 성악가를 빛내주는 벨칸토 창법의 아리아일 것이다. 18세기부터 분명하게 등장한 ‘갈랑(Galant)’양식을 활용한 성악 작품은 듣고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악구의 길이가 명확하여, 성악곡을 처음 듣는 관객도 각 소절을 분명하게 짚을 수 있다. 나아가 반복이 많아 주요 모티브와 선율이 귀에 쏙 들어온다.

한편 카운터테너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1990~)와 고음악 연주단체 일 포모 도로가 이날 연주한 17세기의 성악곡은 어떠한가. 성악 선율이 반복되는 규칙은 있지만, 이는 가사와 함께하지 않아, 복잡한 패턴을 단번에 알아채기 어렵다. 또한 곡의 마무리에 고음을 화려하게 선보이는 모습은 아직 이 시대의 것이 아니다. 한 곡에 하나의 감정만을 말끔하게 담아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거의 없고, 성악 기교는 도약이 아닌 인접한 음 사이를 일정하게 돌아다녀 한 단어를 장식하는 ‘멜리스마’가 매력이다. 바소 콘티누오를 연주하는 시대악기는 다이내믹의 폭이 비교적 좁으며, 19세기 오페라처럼 화려하게 성악을 받쳐주거나 대결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러한 특징을 돌아봤을 때, 바로크 시대 성악곡을 연속으로 부르는 갈라 공연은 오늘날 관객을 매료하기 쉽지 않다.

 

맵시 있는 전략

그래서 오를린스키와 일 포도 도로의 공연은 더욱 영리했다. 하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리아의 특징을 살려, 총 13작품을 유사한 감정을 가진 곡을 서로 엮어, 마치 그러데이션처럼 여러 감정을 부드럽게 연결했다. ‘포페아’를 향한 사랑을 흥얼거리던 ‘오토네’가 그녀는 ‘네로’와 있을 거란 상상에 좌절을 느끼고 쓰러지면(몬테베르디 ‘포페아의 대관’), 당신을 사랑하는 이 마음만은 제발 믿어 달라 애원하는 청년(카치니 ‘아마릴리, 내 사랑’)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곡 사이를 박수와 인터미션 없이 80분간 이어서 진행하는 방식도 프로그램의 개연성을 강화했다.

오를린스키의 탁월한 연기와 몰입은 이 연출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필요에 따라 공연장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물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거나, 또는 저 멀리 벽에 기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음악에 맞추어 사교춤을 추기도 했고, 본인의 장기인 간단한 무용 동작을 펼치기도 했다. 각 곡의 가사와 어울리는 이러한 연기는 일 포모 도로의 기악곡이 연주될 때도 이어져 프로그램이 가진 드라마가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들의 음악은 거대한 현대식 공연장보다는 작은 체임버홀에 어울릴 레퍼토리였는데, 관객석에 직접 내려와 걸어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등 심리적 거리감을 가깝게 만드는 지혜도 보였다.

그의 가창과 일 포모 도로의 호흡은 특히 눈부셨다. 오를린스키는 어느 공간에서 노래를 하든 균등한 음량을 만들었기에 관객을 등지고 노래를 부를 때도 소리가 안 들리는 답답함이 없었고,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어 기악을 가리는 일이 없어, 바로크 음악이 가진 고유한 미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특히 마지막 곡인 모라텔리의 ‘잃어버린 화살통’ 중 ‘우리 마음에서 멀고 먼’은 매우 어두운 조명에서 가장 고요하게 노래하였는데, 유려하고 고운 감정을 무결하게 표현하여 피날레로 모자람이 없었다.

공연 전체에서 크게 지르는 발성이 없어 성량이 비교적 작은 편인지 생각이 들 무렵, 세 곡의 앙코르로 이 의심을 거두었다.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각 곡은 찌를 듯한 고음, 더욱 화려한 기교, 통통 튀는 유쾌함을 뽐내었고,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에 연거푸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마무리됐다.

 

관객을 홀린 이 남자, 누구인가?

‘비욘드’(2023) Erato 5419772645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카운터테너)/일 포모 도로

폴란드 출신의 오를린스키는 201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주최하는 에릭 도미니크 라폰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인물로, 워너 클래식스와 에라토의 전속 아티스트이다. 에라토와의 첫 음반인 ‘아니마 사크라’(Erato/2018)부터 더 타임스 올해의 음반상, 오푸스 클라식의 오페라 독창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이후 발매하는 음반도 그라모폰 매거진 초이스, ICMA 어워드, BBC 뮤직 매거진 등에서 수상하였다.

11일 인천 공연을 포함하여 2024년부터 세계 투어를 이어오고 있는 음반 ‘비욘드’(Erato/2023) 역시 2024년 BBC 뮤직 매거진 성악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음반에 수록된 작품 중 10곡이 세계 초연 녹음된 발굴 작품이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음반은 ‘비욘드’라는 단어에 주안을 맞추어 작업했습니다. 바로크 음악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의 시대와 연결될 수 있고, 여전히 활기 넘치는 음악으로 존재합니다”라고 밝혔는데, 하나의 주제로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그의 연출력도 엿볼 수 있다.

이 장점이 특히 부각되는 음반은 지난해 발매된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Erato)이다. 오페라 전막 아리아를 스튜디오 녹음한 음반인데, 그가 직접 캐스팅, 프로듀싱, 그리고 지휘자 스테판 플레브니아크와 함께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는 “학생 때부터 오르페오 역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비전을 분명하게 가져왔다”라고 전하며, 이 음반에 애정을 표한 바 있다.

이 다재다능한 면모는 그가 데뷔 초부터 인기를 얻은 비결이기도 하다. 20대 시절 고향인 폴란드에서 브레이크 댄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댄스 대회 수상 경력 또한 가지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또한 폴란드 ‘보그’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모델이자, BMW·루이비통·넷플릭스 등의 브랜드와 협업하고, SNS 활동으로 팬들과도 자주 소통하는 인플루언서이다.

오페라 가수로도 물론 활동하며, 그의 열연을 담은 오페라 실황 영상도 있다. 줄리아 블록, 조이스 디도나토가 주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2022년 로열 오페라의 헨델 ‘테오도라’(Opus Arte)에서 테오도라의 연인 ‘디두모’로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2024년에는 장 크리스토프 스피노지가 연출한 파리 샹젤리제 극장의 비발디 오페라 ‘올림피아드’의 ‘루치다’ 역도 맡은 바 있다.

올해 3월에는 취리히 극장의 헨델 ‘아그리피나’(3.2~30)에서 ‘오토네’ 역으로, 5월에는 제네바 극장의 페르골레지 오라토리오 ‘스타바르 마테르’에 출연할 예정이다. 넘치는 끼로 여러 분야와 매체를 종횡무진하는 그는, 명실상부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하는 카운터테너이다.

이의정 기자 사진 아트센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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