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 시간을 건너 온 음악이 나의 첼로에 흐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5월 19일 9:00 오전

ANNIVERSARY

 

첼리스트 양성원

시간을 건너 온 음악이 나의 첼로에 흐른다

 

음반에는 엘가의 작품을 담고, 무대에는 첼로 인생 50주년을 담았다

 

 

오는 5월, 양성원이 첼로와 동행해 온 50년을 돌아보는 연주회를 갖는다. 때마침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한 10번째 음반 ‘에코 오브 엘레지’도 나온다. 첼로와의 반백년, 그 시작은 일곱 살 소년의 인생을 뒤흔든 야노스 슈타커(1924~2013)의 실황 연주를 본 날이었다. 우리나라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 양해엽으로부터 야노스 슈타커 또한 자신과 같은 일곱 살에 첼로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할 정도로, 양성원에게는 특별한 의미였다.

훗날 그는 야노스 슈타커를 사사하며 어린 날의 꿈을 이뤘다. 지금의 양성원은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이끄는 예술감독이자, 연세대학교에서 차세대 연주자를 길러내는 스승이다. 그는 스승 야노스 슈타커를 생각하면 “횃불을 계속 들고 가야한다”라고 남겼던 말이 떠오른다며, “인류를 따뜻하게 밝혀온 횃불, 클래식 음악이라는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라는 가르침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엘가의 작품을 담은 이번 음반에도, 한스 그라프 지휘의 런던 심포니와 협연한 첼로 협주곡과 더불어 송지원·임지영(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박재홍(피아노)이 함께한 피아노 5중주가 담겼다.

 

오는 5월,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로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그리고 엘가·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한 자리에서 연주하며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입니다. 50주년 기념 공연치곤, 레퍼토리가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우선은 50주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좋은 스승을 만났고,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후배 음악가들과도 동행하죠. 50년간 첼로를 연주했다는 건, 끊임없이 첼로에 저를 비춰보며 나눈 수많은 대화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세 명곡에 담아 표현하며 청중과 마음을 나누는, 의미 있는 생일 파티가 아닐까요. 감사한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야지, ‘어이쿠 이 세 곡 다 연주하는 건 큰일인데’라고 생각하면 끝도 없어요.(웃음)

 

미묘한 영국의 날씨 같은, 엘가

‘에코 오브 엘레지: 엘가’ Decca 4878472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이번에 발매한 음반에도 실려 있습니다. 엘가 말년에 작곡되어, 처절한 감정이 담긴 작품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외면적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엘가의 내면이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엘가의 개인적 심정, 그러니까 당시 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후 세상에 대해 느꼈던 마음일 수도 있고요. 여러 영국 작곡가들 중 영국의 로맨티즘을 대표하는 작곡가는 엘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초연했던, 런던 심포니와 함께 녹음했습니다.

런던 심포니에게 엘가는 ‘자신들의 작곡가’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몸에 배어 있는 곡이에요. 너무 익숙하다는 점에서 자칫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제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전부 자연스럽게 수용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악장 곳곳에 그간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해석을 다 녹여낼 수 있었죠.

오히려 ‘엘가에 대한 어떤 해석이든 다 받아주겠다’ 같은 자신감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본인이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연주자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 곡을 썼을 당시 엘가는 영국 별장에 머물렀는데, 별장 뒤 숲에서 있을 법한 전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국에 머물다보면 날씨가 참 묘해요. 맑았다가 금방 비가 오고, 또 금세 햇볕이 나거든요. 이 작품도 장조에서 시작해서 금세 단조였다가, 또 장조 화음 속에서도 단조의 음색이 느껴지는…. 리듬도 프랑스나 독일 음악과 달라요. 훨씬 더 유연하고 유려한 물결처럼 흘러가죠.

지난해 발매한 음반 ‘에코 오브 로망스’에서 에마뉘엘 슈트로세(피아노)·김한(클라리넷)과 함께 연주한 브람스 클라리넷 3중주의 연주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 음반에도 한국 연주자들과 함께한 엘가의 피아노 5중주가 실렸는데요, 어떤 의도인가요?

이번 실내악 연주 트랙 또한 기대하셔도 좋아요. 엘가의 피아노 5중주는 그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연주해달라고 했을 만큼 훌륭한 곡인데, 그에 비해 저평가되는 작품이죠. 영국 작곡가의 작품이지만, 이제 클래식 음악은 인류 모두의 유산입니다. 모든 클래식 음악이 그렇죠. 제가 100% 신뢰하는 음악가들과 함께 우리 시대의 연주를 해냈다고 생각하고, 이 피아노 5중주에 대한 해외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될 정도랍니다.

 

살아 숨 쉬는 음악이 해내는 일

수학학자 김민형과의 대담집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2024)에서 “어떻게 하면 제 레코딩을 사람들이 라이브 연주처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에게는 숙제입니다. 살아 있는 순간을 잡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번 음반 녹음에선 어땠나요?

아, 그 책 참 재밌죠.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책이었습니다. 녹음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서면, 정말 까마득하게 아무 영감이 없습니다. 음악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이거든요. 물론 젊을 때는 남들보다 잘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러나 어느 순간 이후로는,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의 싸움입니다. 요즘에는 제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첼리스트라는 답변보다, 수백 년 전 작품에 담긴 한 영혼과 청중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연주를 하다보면 청중이 모였을 때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침묵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한 분 한 분이 모두 조심히 숨 쉰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 순간. 그 때에 음악으로 서로 연결된다고 느껴요. 꽤 영적인 부분이죠. 그래서 녹음실 마이크 앞에서 연주했을 때도 저는 최대한 이 느낌을 살려내고자 애써요. 그 생명력이 없으면, 음반은 한없이 지루해집니다. 우리가 엘가의 음악을 백그라운드 뮤직으로만 듣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요.

첼로 인생 50년 중 본지와의 인연도 깊습니다. 1990년에 데뷔 연주회 리뷰로 처음 ‘객석’에 이름이 실렸고, 2009년에는 ‘제1회 객석예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인터뷰 답변을 좀 길어 올려봤습니다. 수상 후 인터뷰(2010년 1월호)에서, “요즘 아이들에게 자주 ‘토끼와 거북이’ 얘기를 해줍니다. 저는 한 반쯤 온 것 같아요. 거북이의 속도로요”라고 답변하셨는데요, 이 인터뷰 이후 15년이 더 지났습니다. 50주년을 맞은 지금, 첼로 인생의 어느 정도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때가 반쯤이었으면, 뭐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4분의 3… 혹은 5분의 4정도? 얼마 전 프랑스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70대에 어떤 연주자가 될 것 같냐’고 묻더군요. 첼로를 안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첼로를 쥐는 것보다 음악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는 게 본질이니, 유스 오케스트라를 맡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앞으로 점점 더 듣는 것을 가르치는 게 중요해질 것 같아요. 훌륭한 젊은 연주자들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자리도 많이 넘겨줘야 하고, 첼로 연습을 안 해도 되는 순간이 드디어 온다면…. 그동안 연습하느라 시간이 없어 못했던 일들도 하고 싶네요.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인가요?

다 잊어버린 이탈리아어도 다시 배우고, 독일어도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체스두기를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아들이 매번 저를 이기거든요. 체스도 다시 배워봐야겠어요.

끝으로, 올여름에 열릴 평창대관령음악제(7.23~8.2)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올해 축제에 대해 미리 귀띔을 해주신다면?

주제는 ‘인터 하모니’입니다. 균열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았죠. 작곡가들이 다른 나라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훌륭한 작품들을 여럿 배치했습니다. 서로의 존재가 있어야, 멋진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네요.

허서현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유니버설뮤직

 

양성원(1967~) 파리 음악원·인디애나 대학을 졸업했으며, 야노스 슈타커를 사사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으며, 평창대관령음악제·프랑스 본 베토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연세대·영국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PERFORMANCE INFORMATION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 ‘첼로와 50년’

5월 2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양성원(첼로), 윌슨 응(지휘), 수원시립교향악단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엘가 첼로 협주곡,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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