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INTERVIEW
오직 연주와 음반만으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각인시킨 그. 생생하고 명료한 바흐의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다
배경음악으로 틀 수 있는, 소위 집중하기 좋은 음악에 가장 먼저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가 바흐다. 이때 집중하기 좋다는 의미는 음악이 아닌 다른 일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도로 만약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바흐를 선택했다면 다소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음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풍부하며 명료하게 살아있어 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의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버린다. 그의 바흐는 결코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독특한 입체감과 생명력을 지닌 음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와 끊임없이 말을 건다.
콘스탄틴 리프시츠는 1976년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키신을 잇는 신동으로 주목받았고, 1994년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 졸업 연주에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담은 음반으로 평론가들의 찬사와 함께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무대에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 10대에 발매한 음반으로 글렌 굴드에 맞먹는 놀라운 개성과 호소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리프시츠는 다른 젊은 연주자들과 달리 콩쿠르가 아닌 오직 연주와 음반만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에 첫 내한 연주를 한 후 지난해 20년 만에 다시 내한해 바흐의 ‘영국 모음곡’과 ‘프랑스 모음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올해 8월 1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한국 무대에 처음으로 선보인다.
작년 연주에 이어 이번 연주회도 모두 바흐의 작품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당신에게 바흐는 어떤 의미인가? 사실 내가 바흐만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난해 바흐의 여러 모음곡 연주를 요청했던 것처럼 올해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를 요청해 왔다. 바흐는 나에게 번개같이 불가피한 존재다. 때때로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흐의 음악은 묘사하기가 어렵다. 나에게 그는 마치 설명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모호하면서도 가장 구체적이다. 경이롭다.
최근에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에도 몰두하고 있다. 연주자로서 이 두 작곡가의 특징과 차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베토벤과 바흐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관한 질문은 매력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매일같이 내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질문이다. 자주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을 단독으로, 혹은 함께 연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독특한 특성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바흐가 수직적이고 베토벤이 수평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말하기 어렵다.
이번 공연의 1부에서 바흐의 다양한 전주곡과 푸가 등을 연주한다. 특별히 이 작품을 선곡한 의도나 이유가 무엇인가? C조와 G조를 기반으로 한 이 작품들의 조성 관계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처음에는 바흐의 작은 보석 같은 작품들로 시작한다. 내가 선택한 이 작은(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보석들은 흔히 다른 순서로 연주된다. 이번에 매우 정렬된 형태로 나오는 그것들을 나는 ‘바흐 스시’라 부르는데, 한 입 먹을 때마다 깊은 풍미와 감칠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진지하게 표현하자면, 이 작품들은 바흐의 실험실로 구축된 대성당을 볼 수 있는 일종의 옅게 채색된 창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 작품의 분석은 쉽지 않은데, 어떤 방식으로 작품들에 접근하는가? 바흐 작품의 분석은 쉽지 않다. 바로 그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바흐에 다가가고 분석한다. 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내 연주에 가장 잘 드러날 것이다. 만약 바흐의 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아마 내 삶 전체가 필요할 것이다.
바흐 연주에서 당신의 개성을 어떻게 작품과 조화시키는가? 아주 까다로운 문제다! 만약 내가 충실하게 바흐에 집중하고 충분한 인내와 노력을 작품에 쏟는다면 균형과 조화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모든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바흐의 작품에서는 너무 많은 별들을 조화시켜야 하므로 그런 화합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당신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닐 것 같다. 지금까지 연주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하다. 작품에 접근할 때마다 바뀐다. 말 그대로 연주를 준비할 때마다 변화한다. 그 변화는 음악 자체로부터 발생할 수 있고, 내 삶에서부터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여행, 독서에서 받은 인상 등 다양한 외부 자극에 의해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 영감의 순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그 변화는 오직 나의 연주를 듣는 이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작품의 구조나 해석에 대한 의견이 있는가? 만약 내게 그러한 것이 있다면 작품을 연주하기보다 말로 대신할 것이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나의 의견은 끊임없이 변한다. 내가 이 작품의 구조를 다 파악하거나 해석하는 방법을 다 알았다고 말할 때가 온다면, 내가 연주를 멈추어야 할 때일 것이다.
첫 아리아는 30개의 변주 후에 반복되고 작품이 끝난다. 마지막으로 첫 아리아를 다시 연주할 때 당신은 어느 지점에 가 있는가? 그곳은 고향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세계인가? 마지막 아리아에는 변주를 통해 거쳐 온 나의 모든 감정의 정수가 담길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내가 ‘집’이라고 느끼는 곳으로 돌아오는 거다. 또 다른 공간이지만 안식처라고 느끼는 곳. 그러나 결국, 말이 필요한 것일까? 바흐는 일평생 말과 음악을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악은 말을 할 수 없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리프시츠는 말한다. 바흐 음악에 대해 일일이 말해야 한다면 아마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그가 이번 무대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귀향’한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오직 음악으로만 말해질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글 서주원(음악평론가)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콘스탄틴 리프시츠 피아노 독주회
8월 1일 오후 8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