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9월 6일 롯데콘서트홀
협주곡 한 곡과 교향곡 한 곡. 간결한 구성이다. 그러나 이것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말러 교향곡 1번이라고 했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대한 여정이다. 지휘자 만프레트 호네크는 말러 교향곡 1번에 대해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사실 많은 음악에서 표현하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주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러 교향곡 1번이라고 했을 때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띤다. 기존의 관습과 전통을 과감히 탈피한 이 작품이 교향곡으로 수용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운한 초연의 역사에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당시로서는 지나치리만큼 확장된 규모의 이 협주곡은 교향곡 같은 성격과 초견에 가까운 초연 때문에 빛을 보기까지 먼 길을 걸어야 했다.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된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흡입력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절대적인 음량은 작았지만 그만큼 더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력과 기교, 다이내믹으로 심원하고도 고원한 베토벤의 세계를 유려하게 그려냈다. 정점에 이른 연주력이었다. 이날 테츨라프는 그가 직접 준비한 카덴차를 연주했는데, 새로운 실험과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면모가 드러났다. 특히 팀파니와의 이중주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서울시향 또한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등한 동반자로서 주체성을 보여주었다. 흐름을 타지 못한 목관의 화음반주가 드물게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독주자에 전혀 밀리지 않는 섬세함과 날렵함, 그리고 눈치가 아닌 배려가 돋보이는 서울시향의 연주는 이 교향곡과도 같은 협주곡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반부에서 선전한 서울시향은 그러나 말러에서 예상외로 부진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시작은 놀라웠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신비한 현악기군의 하모닉스는 서울시향이 연주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느낄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연주는 집중력을 잃은 듯 산만했다. 오케스트라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살려야 하는 교향곡에서 오히려 반주를 하는 것 같은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빛나는 몇몇 순간들도 있었지만 다소 지지부진한 첫 세 악장을 지나고 마지막 4악장에서 서울시향은 호네크와 함께 극적으로 회생했다. 절절히 파고드는 현악기부터 장렬히 내뿜는 관악기, 그리고 심장에 꽂히는 타악기까지 이들은 마지막 악장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찬란하다고 했던가? 오랜 시간 어둡고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하나가 된 이들의 승전가는 눈부셨다.
혁명과 진보의 상징이던 말러의 교향곡과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 되었다. 이번 연주에서는 오늘날 최고의 말러 교향곡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출신 만프레트 호네크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공식 연주만 300회를 훌쩍 넘는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함께 했다.
이제는 본고장 출신 거장 지휘자와 협연자가 얼마나 그들의 음악을 잘 연주하는지만이 감상이 초점이 될 수 없다. 서울시향이 이들과 어떻게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조화를 이루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우리가 담긴 이야기, 우리의 여정에서 감동의 새로움을 기대하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 쉬웠던 적은 없다.
글 서주원(음악평론가)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