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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듣다
리그 오브 레전드
동일한 뿌리, 갈라진 두 인물
매년 전 세계 게이머를 열광하게 하는 이벤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2024’가 유럽에서 개최됐습니다. 또 게임의 매력적인 설정에 탄탄한 이야기를 더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케인’도 3년 만에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됐죠. 이번 호는 이 ‘아케인’의 새로운 시즌을 학수고대하며 이야기의 두 주인공, ‘징크스’와 ‘바이’의 음악을 살펴보겠습니다.
상반된 매력의 자매 도시
징크스는 빈민가 ‘자운’ 출신의 파란 머리 소녀로 대도시 ‘필트오버’에서 끊임없이 난동을 일으키는 테러범입니다. 반대로 바이는 필트오버의 보안관으로 골치 아픈 범죄자 징크스를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인물이죠. 이 둘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필트오버와 자운이라는 지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필트오버는 대륙과 대륙 사이의 좁은 해역에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이런 지리적 이점으로 운하를 건설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죠. 그리고 필트오버의 바로 아래에는 지하도시 자운이 있습니다. 자운은 어둡고 침침하며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독극물과 스모그가 가득합니다. 필트오버의 세련된 외향과는 달리 자운은 쇳덩이를 잘라 놓은 듯한 투박한 건물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두 도시는 사실 하나의 도시였습니다. 지금 필트오버의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있는 이들이 운하 건설에 집착한 나머지 약한 지반을 건드리게 되었고, 그 결과 도시의 반쪽은 지상에, 나머지 반쪽은 지하에 잠겨버린 것이죠.
이리 보면 자운이 참으로 불운한 동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필트오버가 가지지 못한 문화적 풍요와 자유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필트오버가 문명화된 대신 경직되고 위선적인 것에 비해, 자운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활기가 넘치죠.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다양한 단편 소설을 통해 이 두 도시의 생활상과 여러 차이를 보여 주는데, 특히 이 두 도시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나 소리풍경이 다르다는 점도 인상 깊습니다.
가령 징크스의 광기를 묘사하는 ‘결혼식의 불청객’이라는 단편 소설에는 징크스가 필트오버의 음악을 듣고 지루해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가 들은 음악은 느리고 무거운 선율의 오케스트라 음악이었죠. 이어서 징크스는 발을 구르고 멀미가 날 정도로 빙빙 도는 자운의 음악이 훨씬 좋다며 필트오버의 문화를 비아냥댑니다. 또 바이의 비밀 임무에 관한 이야기인 ‘자운의 아이’에는 자운에는 고요가 찾아올 일 없이 언제나 공장 소리와 여러 기계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죠. 즉, 자운에서 정제되지 않은 거친 소리는 일상이면서도, 덕분에 그 음악은 고루하지 않고 생명력이 넘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모가 징크스의 주제곡에 잘 녹아들었습니다. 다소 폭력적인 가사와 강렬한 드럼, 그리고 귀를 얼얼하게 하는 일렉트릭 기타가 어우러진 하드코어 펑크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이의 음악도 징크스의 음악과 비슷합니다. 그 이유는 바이가 필트오버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자운 출신이기 때문이죠.
바이의 주제곡은 징크스보다 템포가 느리지만 그만큼 묵중한 느낌을 주는 펑크록입니다. 이는 바이의 직장 동료이자 필트오버의 명문가 출신인 케이틀린의 주제곡과도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케이틀린의 음악은 차분한 느낌의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작곡됐습니다. 즉, 음악에 필트오버와 자운의 차이가 반영됐다는 것이죠. 그런데 징크스와 바이의 음악이 유사한 이유는 자운 출신이라는 동일한 정체성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도시와 함께 나뉜 운명
징크스가 필트오버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를 때 언제나 빼놓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보안관 바이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입니다. 과연 징크스는 왜 그렇게 바이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애니메이션 ‘아케인’에서 세세하게 밝혀졌습니다. 바로 이 둘이 피를 나눈 자매이기 때문이죠.
필트오버와 자운 간의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어렵지만 희망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아였던 징크스와 바이는 또다시 두 도시를 두고 벌어지는 어른들의 분쟁에 휘말리고 맙니다. 그 분쟁이란 필트오버와 자운의 독립을 두고 일어난 것으로, 필트오버의 시민들은 원래 이 도시가 하나였다는 점을 망각한 채, 자운에 사는 사람들은 야만인이라고 혐오하였습니다. 도시로 들어오는 이익은 전부 챙기면서도 해가 되는 것은 전부 자운으로 떠넘기곤 했죠. 자운에 독극물이 가득한 이유도 필트오버에서 오염물질을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벌어진 폭력의 현장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어린 징크스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릅니다. 바로 바이의 친구들이 있는 곳에 폭탄을 터뜨려 막대한 사상자를 내버린 것이죠. 바이는 그런 징크스에게 “네가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라며 일갈합니다. 그렇게 징크스는 더욱 삐뚤어지고 이 둘의 관계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죠.
세월이 흘러 바이는 필트오버의 보안관이 됐고, 징크스가 보았을 때 자신과 자운을 배신하고 필트오버의 앞잡이가 된 바이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을 겁니다. 바이가 언제나 자운의 정당한 독립을 꿈꾸고 있었다는 걸 모른 채로 말이죠.
이런 둘의 관계를 잘 표현한 곡이 애니메이션 ‘아케인’의 엔딩곡 ‘What Could Have Been(무엇이었을까)’입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스팅과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이 함께한 음악이죠. 분명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한 징크스와 바이, 더 나아가 필트오버와 자운의 관계를 요약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만큼 당신도 아프기를.”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가사와 더불어 쓸쓸한 반주 위로 중후한 스팅의 목소리가 흐르고, 레이 첸의 바이올린 속주가 곡의 분위기를 한껏 비극적으로 만들죠. 과연 이 둘을 갈라지게 만든 이야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요. 과연 이 둘은 고통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글 이창성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 전공을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KBS 1FM의 작가 및 PD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