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ING STAR
발레 무용수 전민철
다음 스텝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하는 두 번째 한국 남자 무용수
행복의 눈물은 기회로 흐른다
예술계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때는 언제인가. 바로 공중파 뉴스에까지 소식이 올라 그 분야를 전혀 모르는 사람까지 이름을 언급할 때이다. 지난해 하반기 발레계에 이러한 일이 터졌다. 2011년 김기민(1992~)이 마린스키 발레에 동양인 남성 무용수로서 최초로 입단한 이후, 14년 만에 마린스키 발레에 솔리스트로 입단하는 신예, 전민철(2004~)이 등장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의 공중파 방송 출연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7년 SBS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에 발레 신동으로 출연했는데, 이번 입단 소식 후 “발레를 할 때 행복하다”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린 시절의 영상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7~8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 않기에 다시 방송에 출연한 무용수 전민철은 같은 인물이 맞는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춤이라면 다 좋다”라고 답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발레’와 얽히면 눈물도 뚝뚝 흘리는 순수함이 그의 안에 여전히 있었다. 다가오는 마린스키 발레 입단부터 그전에 앞둔 국내 공연까지 그의 심경을 들어보았다.
마린스키 발레 입단이 이제 몇 달 앞으로 다가왔네요! 정기 오디션 없이 일주일간 단독으로 입단 오디션을 보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기회를 잡았나요?
현재 재직 중인 김기민 선배님 덕분입니다. 유리 파테예프 단장님께 제 이야기와 영상을 직접 전달해 주셨고, 덕분에 일주일 동안 마린스키 단원들과 같은 클래스 수업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수업 이후 단장님과 1 대 1로 작품 지도를 받는 오디션으로 진행됐어요. 단장님께서는 지원자인 제 춤의 매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피시고, 본인이 피드백을 해주었을 때 지원자가 어떻게 대처하고 습득·수정하는지 관찰하셨습니다.
김기민 무용수와는 어떤 인연인가요?
우상이죠!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입학한 후 김선희 교수님께서 선배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가 마린스키 발레에 워낙 관심을 보이고 있었거든요. 선배님은 그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제 영상을 보고, ‘잘하네’라며 지나가셨는데, 소개를 받고 나서야 저를 그 영상 속 인물과 뒤늦게 매치했다고 하네요.(웃음)
롤 모델로 항상 ‘김기민 선배’를 거론하는데, 마린스키 발레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군요!
항상 존경하는 무용수, 아니, 예술가상이었어요. 무용으로는 물론이고, 닮고 싶은 인격을 갖춘 분입니다. 사실, 후배를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는 건 정말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저랑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끈끈한 사이도 아닌데, 직접 마린스키 단장님께 말씀하고, 또 저에게 단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신다고 전달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제게도 직접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오디션은 어떤 작품으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말이죠. 오디션을 보러 러시아에 갈 때도 숙소는 어디를 잡고, 비행기는 어떤 편을 잡아야 하는지 챙겨주셨어요. 제가 정말 몸만 가서, 오디션만 신경 쓸 수 있게 말이죠. 심지어 당시에 ‘백조의 호수’ 공연을 소화하고 계셨는데, 직접 러시아 구경까지 시켜 주셨어요! 마음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보여주셨고, 정말 감명받았습니다. 제가 그리는 예술가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알게 됐죠.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
마린스키 발레에 관심이 높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내에 지금까지 많이 소개된 발레의 초연작은 대부분 마린스키 발레에서 왔습니다.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발레의 역사와 관련된 서적, 영상과 같은 온라인 자료의 출처도 마린스키 발레의 비중이 무척 크고요. 제가 무용수를 은퇴하는 순간이 와서 발레와 관련된 다른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마린스키 발레에서 얻을 경험은 대체할 수 없는 깊은 배움일 것입니다.
이야기한 대로 마린스키 발레는 여러 클래식 발레의 탄생지이죠. 클래식 발레에 특별히 더 관심이 있나요?
발레 장르마다 선호가 다른 건 아닙니다. 저는 춤이면 다 좋아하는걸요! 모던 발레도 좋아해요. 모던 발레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있거든요. 다만 두 발레 장르를 생각했을 때, 모던 발레는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역량을 자유롭게 펼쳐서 춘다면, 클래식 발레는 지켜야 하는 사항이 많아 이를 익히며 성장하는 느낌을 줍니다. 지금의 제 위치에서는 클래식 발레를 통해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을 쌓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클래식 발레 중 하나인 ‘라 바야데르’(유니버설발레단/2024)로 첫 전막 발레 주역을 맡기도 했죠. 새로 익힌 배움이 있었나요?
3막 마지막 장면에 ‘아쌈블레 앙 투르낭(Assemblé en Tournant)’이라는 높게 뛰면서 무대 전체를 도는 동작이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 처음 해봤습니다. 분명 연습실에서는 잘 됐는데, 광활한 무대로 올라가니 공간의 감을 전혀 못 잡아서 무척 떨렸습니다. 다행히 공연에서는 성공적으로 해냈고, 그게 너무 안도가 되어 커튼콜 때 오히려 표정이 복잡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또 ‘라 바야데르’ 주역의 연기도 비교적 어려웠습니다. 사랑·슬픔·분노와 같은 감정은 여러 연습으로 이제 친숙해졌지만, 복잡한 드라마의 감정선을 관객석까지 전달하는 연기는 보다 심화 과정이었어요.
연기는 따로 연습을 해서 익혀왔나요?
10대 시절까지는 공연보다 콩쿠르를 중심으로 발레를 해왔기 때문에 연기를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예종에 입학 후에 참여한 김선희 교수님의 안무작 ‘인어공주’가 제 첫 연기였어요. 처음에는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상황에 던져지면 그건 해야 하는 일이죠. 그래서 직접 해보니, 이는 ‘할 수 있는 일’로 바뀌었고, 더 과감해질 수 있었어요. 연기는 그렇게 직접 경험해서 무언가 탁, 깨지는 느낌을 겪어야 는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을 들어보면,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이 돋보이네요.
조금 더 어릴 때는 그렇지 못했어요. 중학생 때는 남과 스스로 비교하면서 발레가 너무 하기 싫기도 했거든요. ‘나는 왜 못하지?’라는 마음을 달고 살았죠. 생각을 전환하게 된 것은 3학년 때 국제 콩쿠르에 나가 외국 학생들이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본 이후였죠. 그 친구들은 발레를 하면서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남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가능한 일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원래 저렇게 행복했는데’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됐죠.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 하면 박수를 쳐주면 된다는 감정을 그때 처음 배우고, 그 뒤로는 무슨 일을 겪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성격을 갖게 됐습니다.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는 피에로
이달 ‘피에로’ 역을 맡아 공연하는 ‘피아노 파 드 되’는 지난해 9월에 선보인 바 있습니다. 김용걸 한예종 교수의 안무에 관한 소감은 어땠나요?
교수님의 안무에 여러 번 호흡을 맞춰왔던 지라, 처음부터 안무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안무가님도 제가 표현해야 하는 작품이란 걸 아셔서 제 의견을 많이 듣고, 수용해 주셨습니다. 김용걸 교수님은 저의 새로운 면을 이끌어주시고, 그동안의 춤 인생에서도 처음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공연의 음악은 오은철 작곡가의 작품으로, 공연에서 피아노로 직접 연주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 있어요! ‘헬로, 마이 디어(Hello, my dear)’라는 곡인데, 안무와 음악도 무척 잘 맞고, 공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다소 서정적이고 슬픈 장면인데, 음악이 시작되기 전 ‘피에로’가 거울 속 가여운 나를 바라본 후, 춤을 추며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합니다. 제가 직접 춤을 추고 있지만, 감정 이입이 진하게 돼요. 관객분들 역시 이 장면에서 위로받으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넥스트 스텝’이 궁금한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한 달 내내 같은 작품을 출연해도, 1주 차를 보면 2주 차가, 2주 차를 보면 3주 차가 또 보고 싶어지는 그런 무용수요. 계속 궁금해서 보고 싶은 모습이 제가 은퇴하는 순간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전민철(2004~) 선화예중·선화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입학했다. 2022년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에서 금상을 받았으며,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클래식 파드되 부분 1위를 달성했다. 2025년 6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에 솔리스트로 입단 예정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발레 ‘피아노 파 드 되’
2월 9일 오후 3시 30분·오후 7시 유니버설아트센터
전민철(피에로 역), 김민진(전 여자친구 역) 외/ 김용걸(대본·안무·연출), 오은철(피아노·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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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린스키 발레에 대하여
‘러시아 황실 발레단’으로 출발한 마린스키 발레는 러시아의 서쪽 끝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 위치한 단체로, 1740년쯤부터 시작하여 약 285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이다.
러시아는 1738년 최초의 발레 학교를 설립했는데, 이는 현재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가진 교육기관으로, 설립부터 지금까지 마린스키 발레와 제휴하고 있다. 즉,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이 일반이며, 현재 마린스키 발레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 대부분이 이 아카데미 출신이다.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최소 만 10세 이상이어야 하며,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긴 역사를 가진 발레단인 만큼, 수많은 고유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전 세계 다양한 안무작을 수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주요 발레단이 연속적으로 선보여 화제가 됐던 ‘라 바야데르’부터, ‘돈키호테’ ‘지젤’ ‘불새’ ‘호두까기인형’ ‘세헤라자데’ ‘백조의 호수’ ‘라 실피드’ ‘로미오와 줄리엣’ 등 우리에게 친숙한 발레 작품이 가득하다. 또한 전설적인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알려진 마리우스 프티파(1822~1910),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 바츨라프 니진스키(1890~1950) 등이 마린스키 발레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마린스키 발레의 단원 등급은 총 5단계로 수석무용수, 제1·2 솔리스트, 캐릭터 솔리스트, 군무로 나뉜다. 현재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는 2015년 동양인 최초로 임명된 김기민을 포함하여 총 11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