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LLENGE
생황 연주자 김효영
많은 비밀을 품은 ‘숨’의 악기
생황이 간직한 무한한 가능성을 말러의 음악으로, 또 굿과 함께 풀어내다

©DAVIN, 수림문화재단
“용의 울음소리와도 같다.” “너무도 아름다운 음색을 가졌기에 홀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 역사에 기록된 이 글귀들은 하나의 악기를 향하고 있다. 바로 생황. 이 악기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전해졌고,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과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오랜 악기다. 그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일제강점기 등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국내 제작 기반이 약해졌고, 20세기에는 연주 전통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오늘날 생황이 수수께끼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일까? 생황은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곤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황은 들고 나오기만 해도 벌써 이목이 집중돼요. 둘러보면, ‘과연 저 악기에서 어떤 소리가 날까’ 하는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가득하죠.”
생황의 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들은 좀처럼 그 소리를 묘사하기 어려워한다. 누군가는 클라리넷이나 반도네온을 빗대기도 하고, ‘태초의 소리’ ‘근원의 소리’와 같은 모호한 표현을 빌리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입을 모으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홀린 듯이 들었다”라는 것.
“한번은 리허설 중인데,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던 어린이가 갑자기 울더라고요.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더니 ‘음악이 너무 슬퍼서’ 울었다고 하네요.”
국내의 몇 되지 않는 생황 연주자인 김효영은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적잖게 마주하곤 한다. 과거의 기록처럼, 생황의 소리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어떤 신비한 힘이라도 깃든 것일까?
피리 전공에서 생황으로 전환한 이유
피리를 전공한 김효영은 국립국악원 정악단 활동 중 당시 국내에 단 한 명 뿐이었던 생황 연주자를 보며 호기심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땐 몰랐죠. 그저 생긴 것이 신기한 악기라서 몇 번 건드려 보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그 악기와 함께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본인도 모르는 새 생황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 김효영은 동·서양은 물론 전통·현대음악·클래식 음악·재즈 등 다양한 장르와 만날 수 있는 이 악기의 매력에 크게 빠져 들었다. 하지만 연주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생황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아예 국내에서는 악기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환경이 없었다는 것. 그렇게 김효영은 연주 뿐 아니라 복원을 위한 연구도 끊임없이 진행하게 되었다.
생황은 전통적인 형태인 17관과 개량을 거친 24·37관이 보편적으로 쓰이며, 그 외에도 3·7·8·36·40·41관 등 관대의 수에 따른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개량 생황은 거의 중국에서 나오는데, 그 안에서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요. 제 경우 처음에는 베이징에서 제작한 24관과 38관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상하에서 제작한 37관을 주로 쓰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운지법이 다 달라요. 뭐 하나 통일된 게 없어서 생황의 종류마다 각기 다른 운지법을 익혀야 해요.”
한편, 열띤 개량이 이뤄지는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쇼(笙)’라 불리는 17관 계열의 전통적 형태가 주로 사용되며 소리에도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황을 제작할 수 없지만, 언젠가 국내 제작이 가능해질 날을 꿈꿔보곤 해요. 그렇게 된다면 중국·일본 생황의 대비되는 특성 그 사이에서 한국만의 생황 소리를 찾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굿’ 소재의 매력, 그리고 생명의 ‘숨’
김효영이 올해 발표한 ‘숨X굿’(이하 ‘숨굿’)에 앞서, ‘굿’이라는 소재는 그의 전작 ‘오굿XResurrection’(이하 ‘오굿’)에서 먼저 나타났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망자를 달래는 굿인 동해안 오구굿과 ‘부활’을 엮은 구성이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도 많이 즐기고, ‘부활’도 좋아하던 곡이었어요. 다만 실황으로 접한 것은 2020년의 일인데, 그날 이후로 말러의 거대한 세계 안에 저도 한번 빠져보고 싶었죠. 이제 생황도 혼자 몇 시간이고 연주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웃음)
김효영이 본인만의 색채로 ‘부활’을 어떻게 풀어낼지를 고민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굿이었다. 장례를 치른 망자가 한을 풀고 죄를 씻어내며 무사히 저승에 이르러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내용이 ‘부활’과도 상통하던 것이었다.
“굿은 분명 매력적이고, 많은 가능성을 품은 소재에요. 전통이 간직한 독특한 미학을 품었을 뿐더러, 내용이 존재하고, 또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지니기도 했고요.”
그렇게 굿의 매력에 심취한 김효영은 ‘오굿’에 이어 다시 한 번 굿을 소재로 한 ‘숨굿’을 올해 1월 세상에 내놓았다.
“사실 ‘오굿’과 ‘숨굿’의 연결성을 의도하진 않았고, 그냥 ‘굿’이라는 소재로 상통하는 것뿐이에요. 다만 평소에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는 편인데, 그전까지는 너무 ‘죽음’에만 몰두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이젠 산사람도 좀 챙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네요.”(웃음)
그렇게 ‘삶’으로 시선을 돌린 김효영은 삶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대상을 구상하던 중 ‘숨’을 떠올렸다고 한다.
“숨이 곧 생명이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숨을 통해 회복과 치유를 그려내 보고자 했어요. 더군다나 또 숨 하면 생황 아니겠어요! 들숨과 날숨이 모두 소리를 빚어내는 악기니까요. 생황으로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숨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숨이라고 한다. 즉, 이 작품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경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숨의 감각에 더 몰입하는 방향을 의도했습니다. 합주 주자들도 가야금과 2명의 타악기 구성으로 최소한의 배치를 이뤘죠. 중간의 전자음악은 그 가운데서 빈 공간과 흐름을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체라고 보면 됩니다.”
이번에 인천 트라이보울에서 선보이는 ‘숨굿’은 지난 1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된 무대에 이은 두 번째 무대다. 김효영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크지 않은 트라이보울의 환경에 맞춰 작품을 한 차례 보완 중이라고 말했다.
“공간의 의미를 좀 더 살려보고자 합니다. 제가 서는 위치도 초연과는 달라질 예정입니다. 물론 음악에도 수정이 들어가고요.”
김효영은 연주자 이전에 창작자이기 때문에 기존에 발표한 작품이라도 매 공연마다 보완을 거친다고 한다.
“같은 작품이라도 모든 무대가 늘 새로운 무대에요. 결국 제가 진행하는 모든 작품 활동들은 언제나 생명력을 지니고, 저와 함께 숨 쉬며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트라이보울
김효영(1974~) 국립국악관현악단·KBS국악관현악단·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국립심포니·창원시향 등 다수의 국악·양악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프랑크푸르트 한국음악제 개막공연 초청 및 파리국제예술공동체 레지던시 선정 등 해외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서울대·한양대에 출강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트라이보울 시리즈 ‘숨X굿’
7월 29일 오후 7시 30분 트라이보울
김효영(생황), 박승원(율기·전자음악), 서정민(25현 가야금), 황민왕·조한민(타악), 박수정(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