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저 언더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ㆍ23번 외

혜안이 돋보이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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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끼리도 자신의 분야와 조금 다른 것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중 흔한 것이 악보를 읽는 부분이다. 한 줄짜리 오선을 보아오던 사람들에게는 피아노 연주자가 두 줄(많게는 세 줄)의 악보를 읽는 것이 신기할지 모르지만, 지휘자들이 몇 십 줄 되는 스코어를 한 눈에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 경험과 혜안이 필요하겠다고 느끼게 된다.
굳이 혜안이라고까지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여든여덟 개의 건반을 한 번에 아우르는 능력도 쉬운 것은 아니다. 피아니스트들 중에 좋은 지휘자가 많은 것이 소위 ‘독보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휘자의 위치가 아니라도 건반 위에서 악보 전체를 편안한 자세로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피아니스트가 있다는 점인데, 헝가리의 명인 게저 언더가 대표적이다.
음질과 상관없이 생생한 당대의 느낌을 전달해주는 명연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헨슬러 클래식의 선택은 게저 언더의 1952년과 1963년의 모차르트와 라벨 협주곡이다. 특히 1952년은 50대의 나이에 급서한 언더에게 매우 중요한 해였다. 절친했던 지휘자 페렌츠 프리처이와 함께 한 버르토크의 협주곡 2번이 큰 호평을 받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독주회와 모차르트 협주곡 연주를 통해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페스티벌과의 긴 인연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1960년대 음반사상 최초로 지휘자와 솔리스트를 겸하며 녹음된 모차르트 협주곡 시리즈의 시발점이 바로 이 녹음이며, 결과적으로는 언더의 ‘혜안’이 돋보이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협주곡 17번 G장조 K453을 연주하는 언더의 발걸음은 사뿐히 가벼운 동시에 귀족적인 절제가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갖가지 앙상블과 엮어내는 우아한 화합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모차르트 피아니즘에서 만끽할 수 있는 노래의 아름다움도 오롯이 살아있다. 유창한 느낌의 1악장과 화사한 음색으로 휴식을 주는 2악장, 시종 즐거운 3악장의 변주 모두가 인상적이다.
함께 실린 협주곡 23번 A장조 K488에서는 촉촉함이 묻어나는 뉘앙스의 터치와 여유로운 음의 흐름이 훌륭하다. 적당히 무뎌진 음상은 십여 년이 지난 녹음(1963년)이라서가 아니라 작품의 서정적 특성을 고려한 판단이라 여겨진다. 끈적임 없이 깔끔한 조망으로 완성된 2악장과 꼼꼼하게 되새기는 듯한 타건으로 단정함을 강조한 3악장 역시 완성도가 높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언더가 즐겨 연주하던 레퍼토리가 아니라서 더욱 반갑다. 1947년부터 2년 간 파리에 머물렀을 당시 접한 것으로 알려진 독특한 단악장 협주곡에서 언더의 작품에 대한 유니크한 접근 방식이 재미있다. 재즈적인 즉흥성과 뜨거움이 느껴지는 음색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바로크적인 엄격함과 어두운 미스터리적 분위기 안에 숨겨놓은 인간적인 따뜻함이 매력적이다. 곳곳에 배어 있는 섬세함을 통해 나타내려 한 넓은 음역대와 전반적 구성 두 가지 모두에 관한 균형 감각은, 과연 젊은 시절부터 합리적이고 무리 없는 음악성을 지녔던 게저 언더의 모습을 정확히 드러낸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


▲ 게저 언더(피아노)/한스 로스바우트ㆍ에르네스트 부르(지휘)/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Hanssler Classic 94.216 (A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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