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러플린의 ‘샥티(shakti)’나 키스 재럿의 음악에 있는 즉흥성을 좋아합니다. 평화와 자유의 시대정신이 깃든 1970년대 우드스톡의 음악들도 좋습니다. 예술가는 급변하는 세상에 주시하고 동시대적 사고와 시대적 딜레마를 조합해주는 재해석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기란 쉽지가 않죠. 이들의 눈으로 본 것들이 하나의 작품이 되고, 그것을 공감으로 이끌어낼 때 비로소 예술이 되니까요. 10대에 저는 아버지의 음악창고에서 김소희 선생님의 구음을 듣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밤새 들었죠. 부모님도 국악(어머니는 가야금·아버지는 해금과 아쟁)을 하셨기 때문에 집에는 늘 사람들이 모이고 음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뜸 나도 국악을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반대하셨습니다. 사춘기 때는 뭘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어지잖아요. 집을 나가겠다는 해프닝까지 벌이며 저는 아쟁을 쟁취했습니다. 그러고는 밤낮없이 연습하며 시간을 보내왔네요. 한 길만 걸어가는 제 모습에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격려합니다. 국악을 하는 후배들과 함께 하는 팀 ‘앙상블 시나위’를 통해 저희의 음악세계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까요. 음악은, 연주와 청중 개개인의 유기적 관계도 필요하지만 연주자들 사이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했을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특히 협업 작업을 좋아합니다. 존경하는 예술가는 피나 바우슈이고, 연출가 박근형의 작품과 프랑스의 태양극단도 좋아합니다. 희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바닥을 치는 순간 솟아오르게 됩니다. 때문에 좋은 작품과 곁에 있는 사람들은 늘 희망이 되죠. 이렇게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이 목표이자 최종의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겸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까요.
신현식은 1979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및 전문사를 졸업했다. 신상철·윤윤석·김한승·김일구에게 아쟁을 사사했으며, 1997년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문 학생부 장원, 1999년 대구국악제 대상, 2004년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문 일반부 장원을 수상하고, 2012년 KBS국악대상 연주단체상을 받았다. 현재 ‘앙상블 시나위’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이다. 국내외 다채로운 연주 활동을 즐기며 음악을 진정한 소통의 도구로 삼고 있는 차세대 예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