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데뷔 후 한국에서 정식으로 갖는 첫 리사이틀 무대
스물다섯 살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입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어왔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오디오 앞으로 달려가 가만히 서 있기를 좋아했다나요? 하하. 다섯 살 무렵 대전의 한 음악학원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만난 것이 음악을 실현할 수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작곡가들의 곡을 만나며 바이올린이 좋아졌어요. 특히 작곡세계가 명확한 작곡가의 곡을 좋아하죠. 작곡가 개인이 지니고 있는 성향과 생각들이 작품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연주자는 그 창조물을 통해 내면의 세밀한 감성들을 찾아내는데, 이것이 연주자의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을 ‘소통’으로 정의합니다. 저 자신과 소통하고 또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몇 해 전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서 공연을 했는데, 연주를 마치자 어느 노인이 다가와 “당신의 연주를 듣고 고향생각이 났다. 내가 평생 그리던 음악을 들려줘서 고맙다”라며 눈물을 흘렸죠. 스승들로부터 “전보다 많이 발전했구나”라는 칭찬을 듣는 것만큼이나 기뻤습니다. 반면 음악가로서 빠른 발전을 보이지 않을 때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것은 퇴보가 아닌 에너지의 비축이야’라고 주문을 걸며 제 갈 길을 가지요. 음악은 저에게 있어 유일하게 자신 있는 언어니까요. 올해 5월에 학업의 한 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이후 미국이나 독일에서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에요. 틈틈이 연주회를 열 계획도 있고요. 연주자로서 음악적인 커리어를 한 계단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이 정도면 ‘한 길을 꾸준히 가자’라는 신념으로 살고 있는 제 소개가 충분한가요?
김다미는 198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예원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악원·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양해엽·에런 로잔드·미리암 프리드를 사사한 김다미는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 전문연주자과정에 있다. 2010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및 특별상을 수상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정한 외모만큼이나 깔끔한 연주로 2011년 무네쓰구 에인절 콩쿠르 우승 및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올랐으며, 같은 해 하노버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김다미는 1월 17일 금호아트홀 라이징스타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