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무렵 바흐의 ‘브라덴부르크 협주곡’을 들었습니다. 그때 바흐처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지금도 그 곡을 들으면 마음의 지표가 새로워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니, 바흐는 분명 제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흐는 늘 자신의 곡 아래에 ‘S.D.G.’라고 썼습니다. 라틴어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이라는 뜻이죠. 그가 음악을 대하던 자세처럼 저도 매순간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하기를 꿈꿉니다. ‘예술이 나의 길이다’라고 확언해본 적은 없습니다. 음악을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예술은 제 일상 속에 녹아 있었으니까요. 스크랴빈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정교한 기술을 표현해낼 줄 아는 장인 라벨과 다케미쓰 도루도 좋아합니다. 특히 제 마음의 표상으로 여기는 작품을 꼽으라면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들고 싶습니다. 이렇게 예술은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고 영향을 끼쳐 그의 삶에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곡가는 이전에 만들어진 영감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오선지에 옮겨 적는 하나의 기록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감흥을 타자의 심연 깊숙한 곳까지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겠지요. 그렇지만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정의되는 순간 본질과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스스로 서는 존재는 아닙니다. 작품을 들어줄 단 한 명의 청중이 없다면 침묵에 불과하니까요. 가까운 친구가 제 작품에서 의도한 바를 정확히 읽어줄 때 작곡가로서는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창작이란 기쁨과 공포가 공존하거든요.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의 끝은 늘 기쁨으로 마무리 됩니다. 올해는 고전음악의 엄격한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는 파리로 건너가 공부할 예정에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현재 쓰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마무리해서 선보일 계획이 있고, 자작곡의 피아노 연주도 병행하고 싶습니다. 이상 저는 지나간 수세기와 앞으로 다가올 수세기 사이에 속해 있는 수많은 음악가 중에 한 명, 작곡가 전민재입니다.
전민재는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 2003년 첫 번째 대규모 관현악 ‘교향적 회화’를 작곡했고, 같은 해 윤이상의 작품을 편곡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연주했다. 이듬해 독일로 건너가 뮌헨국립음대 작곡과 교수인 한스 위르겐 폰 보제에게 작곡의 기본기를 배웠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이건용·유병은·김성기 교수를 사사한 전민재는 2008년 선후배들과 함께 작곡단체 ‘서정적 전위-숨’을 결성해 자신의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타깃’으로 최연소 1위를 차지했다. 현대음악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이유는 작곡가가 직접 연주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국내외의 실험적인 무대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