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하스킬 타라 레이블 2종

희뿌연 안개 속, 선명한 백색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2월 1일 12:00 오전


▲ 슈만 피아노 협주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하스킬(피아노)/쿠벨리크(지휘)/덴마크 라디오 오케스트라ㆍ파리 음악원 협회 오케스트라*
Tahra Tah 736 (ADD, SACD Hybrid)
★★★★☆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음악을 통해 공감각적 이미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표제음악에 관심이 많지만, 순수음악에 가까운 작품과 음악 외적인 내용들을 이리저리 연관시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리를 통해 나타나는 ‘색채감’에 대한 것도 그렇다. 감상자의 의식을 거쳐 흘러나온 색채라면 그야말로 상상에서나 나타나는 오묘한 매력을 자랑하는 것이겠으나 특정한 조성ㆍ스케일 등에서 ‘색깔’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널리 공감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이미지 메이킹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특정한 연주자의 스타일을 색깔이나 등등의 다른 현상에 빗대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필자도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흰색’의 피아니즘을 들려준다고 생각되는 연주자는 늘 한 사람인데, 클라라 하스킬이 그 주인공이다.
하얀색과 하스킬을 연관 지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누구나 비슷할 듯하다. 순백ㆍ순수ㆍ맑음 등의 단어가 연상될 것이 분명하며, 하스킬의 ‘백색’은 그 매력의 핵심이 여러 가지로 분산돼 있다. 투명한 터치의 톤에서 나오는 청명함이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자 피아니즘의 정점이다. 하지만 하스킬이 만들어내는 금속 줄의 울림 자체로 그 희고 찬란한 색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닌 바, 터치와 음향에 대한 특유의 감각이 빚어내는 독특한 억양의 프레이징과 어딘지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예민한 기질의 솔직한 표출 등이 하스킬을 하스킬이게 한다. 오래되고 열악한 음질들의 음반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도 우리가 희뿌연 안개 속에서 하스킬의 ‘백색’을 분명히 구분해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공개 음원과 함께 어느덧 마니아들에게도 잊힌 반가운 자료들을 찾아내는 데 능한 타라 레이블에서 소개하는 하스킬의 두 장의 앨범은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와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와의 운명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기도 했던 하스킬이었지만 주로 프랑스권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그녀의 연주 생활 전반에 중요한 계기가 되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와의 조우는 슈만 협주곡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꾸며져 있다. 그중 1955년 2월 코펜하겐에서의 슈만 연주는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없는 음원이라 특별하다. 하스킬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입체적인 음향 감각이 오케스트라 전체를 이리저리 오가며 흥미롭게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함께 수록된 쇼팽의 협주곡은 1960년 1월 파리의 실황이다. 연주자로서는 최만년의 녹음인 만큼 스케일이 크고 농염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주해온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 중 특이한 해석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쿠벨리크의 솜씨는 좋지 않은 녹음과 청중의 기침 소리 속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견질의 울림은 아니지만 끈질기고 고도로 정제된 합주의 음향 속의 디테일을 강조하는 면은 에스프레시보의 표본과 같다. 음반사들과의 계약 문제로 결국 성사되지 못한 두 사람의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녹음 프로젝트가 새삼 안타깝게 느껴진다.
루마니아 출신의 대표적 음악가 두 사람 하스킬과 디누 리파티의 음악적 만남은 비교적 짧았지만 두 사람의 추억에 진한 예술적 굴곡을 남기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935년 폴리냐크 공주의 응접실에서 열리던 금요일 오후의 음악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22년이라는, 거의 모자지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음악적 대화와 철학을 공유하는 절친 관계로 발전했다. 디누는 늘 의기소침하던 클라라에게 음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고, 클라라는 디누의 타고난 천분에 우아함과 솔직 담백함을 더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다. 1939년 전쟁이 발발하고 그 이듬해 리파티가 스위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들렌 단하워와 결혼하게 되면서 그 만남이 소원해져 아쉬움을 주지만, 그가 무서운 불치병으로 인해 서른셋의 나이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루마니아 피아니즘 전반에 걸쳐 두 사람의 공적이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보게 된다. 1953년 하스킬의 루트비히스부르크 성에서의 공연 실황은 바흐의 토카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두 곡과 함께 베토벤 최후의 소나타 Op.111이 실려 있다. 관심의 초점은 단연 베토벤으로, 투쟁적이고 초월적인 두 악장의 대조를 살리는 것이 초점인 대부분의 해석과는 달리 하스킬의 터치는 지극히 달콤하고 나긋나긋하여 로맨틱으로 경도된 작곡가의 이색적 얼굴을 드러내준다. 리파티의 연주는 1948년 파울 자허가 지휘하는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버르토크의 협주곡 3번이 실려 있다. 하드보일드적 정서, 백열적인 울림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리파티의 개성이 전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정교하고 세심하게 다듬어진 리듬 감각과 세련된 톤 컬러, 적절히 등장하는 비르투오소적 표정이 작품에 중량감을 더한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ㆍ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


▲ 바흐 토카타 BWV914, 슈만 ‘아베크 변주곡’,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 외
하스킬ㆍ리파티*(피이노)/파울 자허*(지휘)/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Tahra Tah 747 ((ADD, SACD Hybr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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