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주년 다시 만난 세계 2002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아사히나 다카시 2001년 12월 30일 타계 “예술에 대한 아사히나의 정열의 불길이 사라질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아사히나를 아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새해를 앞두고 일본 열도에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아나운서의 덤덤한 멘트는 지휘자 아사히나 다카시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부음이었다. 2001년 12월 29일 오후 10시 36분. 향년 94세. 사인은 노쇠였다. 다음 날인 30일 오후 6시, 일본 오사카.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회가 열리는 페스티벌 홀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전날 밤 별세한 아사히나를 추도하려고 홀까지 찾아온 팬들. 원래는 아사히나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는 콘서트였지만 운명은 그것을 추모 콘서트로 만들고 말았다. 아사히나는 친절하며 따뜻한 봉사정신의 소유자였고 까다롭거나 복잡하지 않은 고결한 성품의 한 인간이었다.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그가 남긴 수많은 레코딩 속에서 오늘도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로열 오페라의 하이팅크 고별시즌 로열 오페라와 15년간 동고동락 해왔던 하이팅크가 2001/2002 시즌을 끝으로 음악감독직을 사임하게 됐다. 코벤트가든과 함께 한 15년 동안 하이팅크는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지휘했다. 그중 코벤트가든 재개관 공연이었던 베르디 ‘팔스타프’를 비롯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트리스탄과 이졸데’, 야나체크 ‘예누파’ 등을 지휘해 찬사를 받았다. 하이팅크는 코벤트가든을 떠난 후 9월부터 주세페 시노폴리가 남겨두고 떠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지휘자를 맡게 됐다.
귄터 반트 2월 14일 타계 독일 지휘 전통 최후의 수호자를 잃은 날이다. 2월 14일 향년 90세의 귄터 반트는 스위스 베른 근처의 자택에서 숙환으로 운명했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항상 겸허함과 진솔함을 잃지 않았던 정결한 인격의 지휘자 반트. 결국 그가 그렇게도 경배했던 브루크너가 기다리고 있는 하늘로 홀연히 떠나갔다. 인간이란 존재는 살다가 언젠가는 종착역에 안착해야 하는 것이 신이 내려준 섭리. 그렇지만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항상 아쉽고 애달프다. 반트의 서거는 일개인의 음악가가 죽었다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독일 정통 거장 시대가 마침내 커튼을 닫고 고별인사를 던지며 거룩하게 임종을 맞았다는 것을 뜻한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5월 3일 타계 러시아 고전음악의 지주 스베틀라노프가 73세를 일기로 모스크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 35년간 구소련 국립교향악단을 이끌었던 그가 2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끈덕지게 레코딩한 ‘러시안 엔솔로지’는 러시아 음악사에 남겨진 가장 큰 공헌 중 하나다. 1989년 전무후무하게 107개의 CD로 완성된 앤솔로지 레코딩에 스베틀라노프는 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시리즈는 물론이고 묻혀 있던 러시아 음악까지 담아내 러시아 고전과 현대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20세기 음악사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러시아 음악의 2세대 대가들이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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