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LA 오페라 ‘발퀴레’ 금속으로 된 날개 달린 말의 뼈대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발하더니 검은 보디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튀어나와 그 주위를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타워즈 광선검을 들고 스타트랙 분장을 한 인물이 등장했다. 정말 궁금하다. 아이디어와 통찰이 결여된 작품을 재포장해 미국인들에게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선전한 공연을 보고, 완전히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녕 나뿐이었는가? 내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연출가의 아이디어가 진부하거나 독창적이지 못해서, 혹은 부족해서가 아니다. 연출이 바그너의 이 음악극이 지닌 본질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4일 도러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아힘 프라이어의 ‘링 사이클’ 두 번째 무대인 ‘발퀴레’가 초연됐다. ‘스타트랙’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등장인물들과 아힘 프라이어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원형 무대는 여전히 논란거리였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최고의 지크문트”라는 격찬을 받았으며, 제임스 콘론이 지휘한 오케스트라는 한껏 향상된 연주를 펼쳤다.
마린스키 레이블, ‘코’를 내놓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이 그들만의 레이블 ‘마린스키’를 론칭했다. 지난 5월 발매된 첫 음반은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코’. 게르기예프가 런던 심포니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만큼 ‘LSO Live’가 파트너로 붙었고, 배급은 아르모니아 문디가 맡았다.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레이블을 위해서 조금 심각한 프로그램을 택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이는 필립스와의 작업에서 충족하지 못한 점들을 그 스스로 실현하겠노라는 포부이기도 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정적이고도 아름다운 1악장 1주제에 이어 2주제가 상승 스케일로 귀결되는 전개부의 끝부분에서 김수연은 갑자기 마지막 몇 음을 남겨두고 연주를 멈췄다. 당황한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흐름에 의지하며 마지막 음을 따라잡았다. 길버트 바가는 김수연과의 호흡을 재정비하기 위해 포디움에서 팔짝 뛰며 오케스트라를 자극했다. 그렇게 발전부가 시작됐다. 그 순간 모든 청중의 뇌리에 스쳐간 생각은 ‘김수연은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1악장 카덴차는 말 그대로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그녀가 터지는 울음을 참아가며 연주를 계속했는지, 아니면 청중이 그녀 대신 울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젊은 음악가의 존엄성은 연민과 감동을 동시에 유발했다. 드디어 끝난 1악장. 청중은 브라바를 외치며 그녀에게 한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피나 바우슈 6월 30일 타계 독일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슈가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문화성 장관은 “무용계는 가장 빛나는 대표자 중 하나를 잃고 애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각국 언론이 앞다퉈 그녀의 일생과 업적을 요약한 기사를 내놓았다. 그중 “무용이라 부르는 것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한 인물로 피나 바우슈의 계승자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라는 평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존 노이마이어의 말이기에 더욱.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유자 왕 마침 ‘투르 드 프랑스’ 경주 행렬이 베르비에를 통과했다. 다행히 페스티벌 측은 이 스트레스와 모호함 넘치는 분위기를 가시게 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유명세를 타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부상 중인 유자 왕의 방문이었다. 키신ㆍ벨ㆍ마이스키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스위스 유력 일간지 ‘르 탕’은 빼어난 미모와 생기에 찬 유자 왕과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한마디로 베르비에 전역이 22세의 이 아름다운 중국 아가씨의 후광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의 독주회를 찾은 한 노신사는 감탄하며 “8월 1일의 불꽃놀이와 같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8월 1일은 스위스 국경일로 관례적으로 불꽃놀이를 한다). 물론 자지러지는 청중의 환호 저편에서 언론들은 한결같은 악평으로 그날의 기사를 마감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