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다멜/LA 필의 말러 교향곡 9번

서른 즈음에 바라본 말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구스타프’와 ‘구스타보’로 이름이 같은 말러와 두다멜은 태생부터 운명적인 만남을 예견하고 있었다. 자신의 영원한 영웅인 아브레우 박사와 처음 공부한 말러의 교향곡 1번을 통해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한 두다멜이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곡은 교향곡 5번이었다. 말러가 28세에 작곡한 교향곡 1번은, 2009년 28세 두다멜의 역사적인 LA 필하모닉 취임 연주회에서 필연적으로 선곡되어야만 했다. 이쯤 되면 두다멜은 현재 세계 지휘계를 호령하는 젊은 마에스트로 그룹 가운데 가장 앞서가는 말러 전문 지휘자다. DVD로 발매된 LA 필 취임 연주회는 두다멜만의 역동적인 말러 해석으로 이미 호평을 받았고,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와 작업한 교향곡 5번은 CD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
이제 두다멜은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고 이립(而立)을 넘겼다. 스스로 서고 또한 성찰하기도 해야 하는 인생의 황금기에 두다멜이 LA 필과 드디어 첫 음반을 냈다. 이별과 죽음의 노래로 점철된,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심오하고 철학적인 9번은 자신의 삶의 중간 기착지에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푯대와도 같았을 터이다. 라이브로 녹음된 이 연주는 LA 필의 보금자리인 월트 디즈니 홀이 이토록 음향이 출중했나 싶을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과 디테일이 살아 숨 쉰다.
지독스레 난해하고 신비로운 1악장 도입부를 살펴보자. 의외로 두다멜은 담담하다. 불규칙한 첼로의 리듬감에 이어 둔중한 종소리로 울리는 하프와 맹맹한 호른, 비꼬는 듯한 비올라가 어우러지며 난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1악장은 핵융합을 거듭하며 진군한다. 놀라운 것은 두다멜의 템포다. 교향곡 1번과 5번에서도 감지되었지만 자칫 젊은 혈기로 감정에 들떠 빨라질 수도 있는 1악장을 도처에서 붙들고 있다. 그 결과 콘드라신보다는 무려 6분, 시노폴리에 비해서도 1분 이상 느리게 진행하고 있다. 얼마나 감정을 삭이며 음악 본연에 충실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코다에서 ‘대지의 노래’ 중 ‘가을에 쓸쓸한 자’를 노래하는 첼로 독주는 처연하다. 오보에의 영원할 것만 같은 지속음 또한 두다멜의 지휘봉 아래 끊어질 듯 이어지며 겸손한 종지로 이끌어간다. 2악장은 두다멜의 장기인 렌틀러다. 교향곡 1번에서 속도 변화로 절묘하게 표현되었던 렌틀러가 또다시 꿈틀댄다. 말러의 부친이 운영했던 이글라우의 선술집 분위기 바로 그것이다. 3악장에서 푸가토를 풀어가는 두다멜의 솜씨는 치밀하다. 그리고 익살스러운 론도는 다소 거칠다고 느껴질 만큼 격하다. 마침내 4악장 아다지오. 제1주제부에서 일렁이는 현악기의 노래는 비장하다. 두다멜은 두텁고 꽉 찬 보잉을 요구한다. 제2주제부에서 초고역 바이올린과 대립하는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이윽고 절정부의 마지막 단말마가 휩쓸고 지나가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편린으로 아다지시모의 경미한 약음이 이별을 고한다. 코다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템포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그려내는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두다멜이 말하고자 하는 ‘안녕히(Lebe Wohl)’는 어쩌면 살고자 하는 죽음인지도 모른다. 이 베네수엘라의 특출한 지휘자가 해석한 말러 9번은 생의 황혼기에서 바라보는 죽음이 아니다. 딱 서른 즈음에서 바라보는 걸출한 명연이다. 30년 뒤의 두다멜은 또 어떤 모습으로 이 곡을 그려낼까.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 구스타보 두다멜(지휘)/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4790924 (DDD)
★★★★☆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