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오페라의 트리샤 브라운 페스티벌

균형과 즉흥, 그곳에 춤이 있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지난 2월, 리옹 오페라는 트리샤 브라운의 작품세계를 살필 수 있는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기간 중 공연된 총 여섯 개의 작품들은 환상적인 묘미와 지적 탐구의 시간을 선사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올해 트리샤 브라운이 은퇴 선언을 하면서 이번 페스티벌은 그녀의 고별 무대가 됐다.


▲ 수직과 수평, 가시성과 비가사성의 형식과 즉흥성을 동시에 보여준 ‘셋 앤 리셋(Set And Reset)’ ⓒJulieta Cervantes

리옹 오페라는 지난 2월 9일부터 17일까지 트리샤 브라운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총 여섯 개의 프로그램을 8일간 리옹 오페라 발레와 트리샤 브라운 컴퍼니가 나누어 진행했다. 트리샤 브라운의 이번 리옹 오페라 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리옹 오페라는 레몬·커닝햄·브라운 미국 안무가 기획 공연을 선보인 바 있고, 2010년 리옹 댄스 비엔날레에서는 트리샤 브라운 앙코르 공연과 더불어 그녀에게 헌정된 대규모 전시회가 리옹 시립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페스티벌은 1970년대부터 2011년까지 트리샤 브라운이 선보인 다양한 작품들의 경향을 엿볼 수 있게 구성됐다. 트리샤 브라운 컴퍼니의 리허설 감독인 다이안 메이든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트리샤 브라운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그녀가 살아온 시간에 따라 청중에게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페스티벌의 취지를 전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페스티벌은 트리샤 브라운의 고별 무대가 되었다. 올해 77세인 그녀가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여러 차례 겪은 뇌출혈로 인한 언어 장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스티벌 기간 중에는 2월 9~13일에 리옹 오페라 발레가 공연한 ‘뉴어크(Newark)’ ‘포 M.G. : 더 무비(For M.G.: The Movie)’와 2월 15~17일에 트리샤 브라운 댄스컴퍼니가 선보인 ‘워터모터(Watermotor)’ ‘눈과 영혼(Les Yeux De L’ame)’ ‘셋 앤 리셋(Set And Reset)’ ‘내 팔들을 뻗겠다;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 것이다(I’m Going To Toss My Arms ; If You Catch Them, They´re Yours)’ 총 여섯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그중 2월 16일에 있었던 트리샤 브라운 컴퍼니의 공연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 트리샤 브라운은 ‘눈과 영혼(Les Yeux De L’?me)’에서 안무 뿐 아니라 무대 미술까지 맡아 푸른색 커튼 위에 그려진 데생을 보여줬다 ⓒVan Meer

균형과 비균형, 즉흥성의 조화
트리샤 브라운의 ‘셋 앤 리셋(Set And Reset)’(1938)은 미국 출신의 전위예술가 로버트 라우션버그가 무대장치 및 의상과 조명을 맡았다. 여덟 명의 무용수들은 듀엣·트리오·5인무·7인무를 연속해 보여준다. 작품의 관건은 계속된 움직임 가운데 트리샤 브라운이 요구하는 수직과 수평, 가시성과 비가사성을 상징하는 네 개의 주된 형식을 지키면서 즉흥성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었다.
라우션버그는 무대 장식을 매우 부드럽게 고안했다. 먼저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위에 영화 장면이 투사된 삼각형 구조물을 보게 된다. 이것은 동일한 영화 장면이 프린트된 하늘하늘한 튜닉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할 때 공중으로 올라간다. 이어서 쇠줄에 달린 여러 개의 커튼이 회랑처럼 무대 양쪽으로 장식된다. 커튼 장식은 무대 안과 밖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경계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동작을 볼 수 있게 고안됐다.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훌륭한 장치였다. 무용수들이 서로의 몸을 타고 기울어질 때 발생하는 균형과 비균형의 서스펜스, 도약하거나 회전할 때 뒤틀리는 팔의 형태, 움직임의 궤도를 갑자기 변형시키는 모습에서 수평성과 수직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일명 ‘클락(clock)’이라 불리는 패시지가 돋보였다. 로리 앤더슨의 노래와 전자음향으로 구성된 ‘롱 타임 노 시(Long Time No See)’의 한 패시지는 마치 시계태엽이 째깍거리는 느낌을 주었는데, 이때의 안무는 시계의 움직임과 매우 흡사해보였다. 이 부분에서 무용수들은 수직을 이루는 동선을 취하는데, 그 주위로 또 다른 동선들이 얽혀 마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 동작의 즉흥성을 보여주었다. 2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물처럼 투명한 트리샤 브라운적인 움직임과 뇌쇄적인 로리 앤더슨의 음악은 환상적인 묘미를 만들어내며 청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눈과 영혼(Les Yeux De L’ame)’은 2011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라모의 오페라 ‘피그말리온’에 등장하는 안무로 독립된 작품처럼 발췌되어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트리샤 브라운은 안무뿐 아니라 무대 미술까지 맡아 푸른색 커튼 위에 그려진 데생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데생을 두고 “날고 싶은 욕망의 타협이다”라고 말했다.
라모의 오페라에는 고대 신화 속 여러 신들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트리샤 브라운은 하늘에 사는 신들의 캐릭터를 땅에 사는 인간과 대립시키며 수직성을 중점적으로 보여줬다. 베르사유 궁전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속 천사들처럼 투명한 줄에 매달린 무용수들의 공간은 공중, 즉 천상이다. 이어진 2부에서는 아홉 명의 무용수들이 땅에 두 발을 디딘 채 안무를 펼친다. 무대와 무용수 사이의 거리는 1부보다 더 긴밀하다. 무용수들은 그리스 시대 의상처럼 하늘거리는 회색 튜닉 차림으로 즉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춤과 공간 사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육체적인 한계에 대한 사색을 요구하는 지적인 탐구의 현장이었다.
2011년 작 ‘내 팔들을 뻗겠다;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 것이다(I’m Going To Toss My Arms ; If You Catch Them, They’re Yours)’는 제목처럼 아주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트리샤 브라운이 리허설 도중 어느 댄서에게 팔 동작을 설명하던 코멘트 중에서 가져왔다. 무대에는 소품 겸 음향 효과를 위한 거대한 선풍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피아노 한 대가 등장하는데, 녹음된 음악이 나왔던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작곡가 앨빈 커런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다.


▲ 레아 모리슨이 선보인 3분짜리 솔로작 ‘워터모터(Watermotor)’ ⓒJulieta Cervantes

무대 미술을 맡은 버트 바르의 선풍기들은 청중석에서 볼 때 무대 오른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무용수들은 무대 끝까지 밀려나갔다가 다시 바람을 거슬러 올라온다. 즉흥을 중심으로 유희적인 동작들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특징적인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무용수들은 뒷걸음질을 치다 허리를 돌리고 이어서 온몸을 돌리며 곡선을 만든다. 이것은 작품이 시작된 후 9분여간 반복되고 발전된 형태로 표현된다. 이후 무용수 중 일부가 멀리 뛰어나가면, 다른 무용수가 그를 따라잡는 식으로 발전되는데, 일종의 다방향적인 안무로 무용수들은 이것을 모티브로 듀엣·트리오로 변화시켜 나간다. 음악은 안무와 별도로 만들어졌는데, 이후에 트리샤 브라운과 작곡가가 의논하여 작품 초반에 선풍기 소음만을 넣게 됐다고 한다. 공연은 피아노가 G음을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단순한 화음을 적용해 3도음이나 5도음을 반복하며 변화를 준다. 음악 자체에 거대한 구조가 있지는 않았지만 미세한 요소들로 구성되는 이번 안무와 매우 잘 어울렸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1978년 이후 트리샤 브라운만이 선보였던 3분짜리 솔로작 ‘워터모터(Watermotor)’를 레아 모리슨이 선보였다. 이 작품은 러닝타임이 짧지만, 긴장과 이완의 개념을 신체 전체를 통해 표현해야 하기에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레아 모리슨의 안무는 신체적으로 트리샤 브라운과 다를 수도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그녀의 미학을 전승하고 있기에 이 공연은 제2의 트리샤 브라운의 탄생이기도 했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Opera de Lyon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