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강병운

나처럼 노래하는 즐거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국내에 바그너 가수로 알려진 강병운은 사실 베르디와 인연이 더 깊다. 그의 ‘필립’이라는 이름도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에 나오는 필리포 2세에서 가져왔다. 동양인으로는 처음 바이로이트에 입성한 베이스 강병운이 국립오페라단 ‘돈 카를로’ 무대에 오른다. 4월 25~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올해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감회가 남다른 성악가가 있다면 바로 베이스 강병운(필립 강)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전 세계의 바그네리안들은 1988년에 바그너 오페라의 메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동양인으로는 처음 주역 가수로 데뷔해 2004년까지 활약한 필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에만 10년 연속 출연해 다니엘 바렌보임·주세페 시노폴리 등 세계적인 거장과 호흡을 맞췄다.
1995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부임해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유럽 무대에 출연하고 있는 그가 늦깎이로 국내 무대에 데뷔한다. 4월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돈 카를로’에서 그는 필리포 2세 역을 맡았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베르디의 ‘팔스타프’(3월)·바그너의 ‘파르지팔’(11월)과 함께 의욕적으로 준비한 작품이다. 강병운은 국내에서 일부 바그너 팬들에겐 익숙한 이름이지만, 일반 음악 팬들에게는 클라라 주미 강의 아버지로 더 알려져 있다. 클라라 주미 강은 2009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다. ‘돈 카를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강병운을 만났다.

딸 클라라 주미 강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것을 용서해달라. 성악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언니는 피아노, 오빠는 첼로를 전공했다. 성악가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노래도 곧잘 했다. 특별히 권한 것은 아니지만 성악을 해도 될 뻔했다. 바이올린 연습할 때도 선율을 곧잘 노래로 부른다. 소위 ‘딸바보’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클라라는 어릴 때부터 모든 일을 자기가 척척 알아서 했다. 어릴 때는 분더킨트(신동)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도러시 딜레이에게 배울 때 브람스 협주곡 3악장을 일주일 만에 외웠다. 지금도 뮌헨에 혼자 살면서 전 세계를 누비고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 성격도 활달하고 사람들도 잘 사귀는 편이다.
선배 음악가로서 평소 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음악적으로 특별히 해준 말은 없다. 그저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하라고 했다. 요즘엔 떨어져 지낼 때가 많기 때문에 건강 챙기라는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또 평소 살아가는 태도와 생각이 무대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에 음악인으로서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한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성악가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대에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으려면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 중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필립’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바그너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베르디와의 인연이 더 깊다. 필립이라는 이름은 ‘돈 카를로’에 나오는 스페인 국왕 필리포 2세를 독일식으로 쓴 것이다. 나의 존재를 유럽 무대에 알린 출세작인 셈이다. 4막에 나오는 아리아 ‘그녀는 날 사랑한 적이 없어’는 제9회 동아음악콩쿠르 남자 최초로 대상을 받을 때 본선 곡으로 부른 아리아인데 연주 시간이 10분이나 걸리는 대곡이다. 2년 후 베를린 도이치 오퍼 오디션 때도 불렀다. 1981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본선에서 불렀고, 같은 해 트레비소 시립극장에서 필리포 2세로 데뷔했다.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이미 바이로이트 극장 오디션을 통과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탈리아로 안 가길 잘 했다. 필리포 2세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배역인데 이탈리아어로 하면 ‘필리포 세콘도’라고 발음된다. ‘필리포’라고 하면 스페인 사람 같기도 해서 ‘필립’으로 정했다.
굳이 외국식 이름을 정한 이유가 있나.
강병운(Byung-Woon Kang)은 외국인들이 읽기도 어렵거니와 독일식 발음이 ‘병분’이다. 강(Kang)은 이탈리아에서 개라는 뜻의 단어 ‘cane’와 발음이 비슷하다. 어디까지나 내 이름을 부르는 상대방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뿐이다. 독일 여권에는 본명 외에 예명을 적는 난이 따로 있다.
유학을 떠나 줄곧 독일에서 생활했다.
당시 국가고시에 합격하거나 외국 대학의 교수가 초청장을 보내지 않으면 외국 유학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에서 베를린 국립음대 성악과장이 내한 독창회를 하고 몇몇 대학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했다. 동아음악콩쿠르 대상 수상 직후였다. 초청장을 보내겠다고 했으나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서울대 3학년 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요즘처럼 병역 면제 혜택을 주지 않았다. 제대한 후 그분이 다시 내한 연주 때 서울을 방문해 나를 찾았고 1974년 4월에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 국립음대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도 하기 전에 극장에서 활동했다.
1974년 11월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젊은 목소리의 베이스를 찾았다. 1차 오디션과 6개월간의 훈련을 거친 뒤 2차 오디션에 합격해 이듬해 정식 계약을 맺었다. 신인이어서 주로 단역만 했다. 주역 가수로 무대에 서기 위해 1년 6개월 만에 다른 극장으로 옮겼다. 사실 학교보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배운 게 더 많다.
이번이 국내 첫 데뷔 무대인가.
유학을 떠나기 전 김자경오페라단이 제작한 오페라 ‘아이다’(람피스 역)와 ‘라 보엠’(콜리네 역)으로 무대에 섰다. 그때는 아직 덜 익은 신인이었다. 독일에 있을 때 국립오페라단에서 ‘돈 조반니’ 등으로 여러 차례 출연을 제의해왔다. 정말 오고 싶었지만 공연 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짬을 내기가 어려웠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전속 가수로 있던 만하임 극장에서 소화해야 할 배역이 많았고 틈틈이 파리·런던·취리히·드레스덴·빈 무대에서 객원으로 출연했다.
만하임 극장에 대해 소개해달라.
독일 레퍼토리로 유명한 극장이다. 연간 50여 편의 상연작 중 바그너의 비중이 가장 높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1년에 두 차례나 상연한다. 여기서 많이 배웠다. 만하임 극장 오케스트라 악장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악장을 겸하고 있다. 뮌헨 슈타츠오퍼도 바그너로 유명한데 주역 가수 대부분이 객원이다. 이에 반해 만하임은 출연진 전체가 전속 가수들이다.
베이스는 테너·바리톤에 비해 비인기 종목이다.
베이스에는 코믹 베이스(바소 부포)·캐릭터 베이스·시리어스 베이스가 있는데 시리어스 베이스가 베이스의 꽃이다. 음역도 넓고 외국에서는 테너·바리톤 못지않게 인기다. ‘마술피리’에 나오는 자라스트로가 대표적이다. 베이스 가수는 바리톤·테너보다 더 귀한 편이다. 특히 독일 레퍼토리에서 베이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베르디로 데뷔했는데 바그너 가수로 이름이 알려졌다.
베르디 가수와 바그너 가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988년 바이로이트 데뷔 당시 베를린 모르겐포스트 등 언론에서 “벨칸토 발성으로 바그너를 부르는 가수”라고 평했다. 누구든지 바그너에 도전할 수 있다. 바그너 창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바그너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무엇보다도 독일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해야 한다. 가사의 속뜻을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몸에서 우러나오는 발성을 해야 한다. 바이로이트 극장에 서는 가수들은 특유의 훈련 과정을 거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 작품을 올릴 때 바이로이트 출신을 선호한다.
서울대에서 베이스 전승현·바리톤 공병우 등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들에게 평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르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것 생각하라고 말한다. 유럽에서 공연을 많이 할 때는 식당에 가서도 목소리를 아끼려고 메모지에 적어 메뉴를 주문했다. 총연습 후에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무대에 서면 확실히 소리가 다르다.
‘돈 카를로’는 어떤 작품인가.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비중 있는 레퍼토리다. 주역 가수들이 빠짐없이 중요한 아리아를 하나씩 부른다. 유럽에서도 신축 오페라 극장 개관 기념 공연에서 자주 상연된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팔스타프’에 이어 ‘돈 카를로’를 상연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작품들이다.
국립오페라단 ‘돈 카를로’ 4월 25~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본지 118쪽 참고).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사진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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