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포화 상태로 범람에 가깝다. 브루크너 음악 레코드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디오파일용 레퍼토리로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음악이 인기이므로 실력이 채 검증이 되지 않은 지휘자들마저 너나 할 것 없이 스튜디오에서 브루크너나 말러 교향곡 녹음을 해 내놓고 있다. 옥석이 뒤섞여 나오는 요즈음 그래도 믿음직스러운 브루크너 시리즈가 펜타톤 레이블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세 차례 방문하여 잊지 못할 인상을 심어줬던 74세 노장 마레크 야노프스키의 사이클이 그것이다.
야노프스키가 이 레이블에서 만든 음반들 중 돋보이는 곡은 크게 세 개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2007년 피츠버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전곡, 두 번째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바그너 오페라 시리즈다. 2010년 11월 13일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상연한 악극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필두로 총 열 편의 악극을 실황 녹음한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는 무난히 이루어져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24일 공연된 악극 ‘발퀴레’, 올해 3월 1일 공연된 악극 ‘지크프리트’와 15일 공연된 ‘신들의 황혼’만 발매되면 완결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줄기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브루크너 사이클이다. 2007년 5월 레코딩된 교향곡 9번 앨범을 시작으로 한 점씩 차곡차곡 출시돼 현재 교향곡 1·5·6·7·8·9번 음반이 낱장으로 유통 중이다.
2011년 10월 만들어진 이번 교향곡 3번 녹음에서 야노프스키는 응축도 높은 1889년 곡을 텍스트로 채택했다. 명징한 울림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지휘자의 성향은 현의 하강 음형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트럼펫의 제1주제 부분부터 확실하게 드러난다. 꾸밈없고 비교적 빠른 인 템포, 겹겹이 악기들이 중첩되는 중에서도 절대 혼탁해지지 않은 투티 음향과 게네랄파우제의 함정을 사뿐히 건너뛰어 어색함 없이 접합되는 프레이즈가 터질 때는 호쾌하고, 낮아질 때는 차분하다. 묻히기 쉬운 악기들의 음색이 이 음반에서는 귀에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러니 간결하고 절제되며 밀도 있는 야노프스키의 이 연주는 카를 슈리히트(EMI)나 조지 셀(Sony)의 현대판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니, 질질 끄는 감상성을 배제한 아다지오 악장은 그들보다 더 담백하며, 스케르초 악장은 대단히 타이트하여 날 선 리듬이 한결 예각적이다. 4악장에서는 스케일을 늘려 전곡을 웅장하게 마무리 짓는다. 오케스트라 특유의 밝은 음색이 의외로 곡상과 잘 어울린다. 후기 교향곡보다 나은 듯하다.
음질도 매우 선명해 브루크너 교향곡 3번 입문자에게도 권할 수 있는 음반이다. 하지만 이 사이클이 무사히 완성될까. 야노프스키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의 계약이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종결됐기 때문이다. 교향곡 4번의 경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지휘한 1990년 레코딩(Virgin)이 있긴 하지만 절판된 지 오래다. 교향곡 2번 레코딩은 아예 없다. 발매 예정으로 내정된 차기 타이틀이 교향곡이 아닌 F단조 미사라고 하니,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부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나머지 두 편의 교향곡을 녹음했기를 바란다.
글 이영진(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