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더럼 ‘동양음악페스티벌’

더럼성을 울린 아시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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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영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더럼에서 ‘동양음악 페스티벌(Musicon Festival of East Asian Music)’이 열렸다. 한국 음악으로는 문현의 가곡과 이주은의 판소리가 무대에 올랐다.


▲ 문현과 슬로우시티

영국 더럼 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더럼 대성당은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해리와 론이 걷고 있는 호그와트의 복도와 빗자루를 타고 나르는 연습을 했던 뒤뜰은 관광객들의 촬영 포인트이며, 더럼 대성당과 더럼 성은 노르만 건축 양식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더럼 성은 1840년부터 더럼 대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더럼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예쁜 마을로 대학가의 활기참이 느껴진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앙증맞은 골목과 고풍스런 집들이 가득한 이곳은 도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45분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600년이 넘은 더럼 대학은 도시 중앙에 있어 어느 길을 선택해도 대학으로 연결된다. 시의 규모에 비해 대학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고, 영국대학의 랭킹 5위 정도의 서열에 해당한다. 물론 순위는 해마다 변동이 있지만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 이어서 더럼 대학이 중요한 이유는 기숙학교의 전통을 잇는 대학이라는 점이다.
2013 동양음악 페스티벌은 영국 더럼 대학교 음악대학 주최로 3월 12일부터 13일까지 더럼대학교 음악대학 콘서트홀에서 개최되었으며, 한국을 비롯해 몽골과 일본 팀이 초청됐다.


▲ 우르나 차하르 툭치

‘이별가’ 이후의 내용은 어떻게 되는데요?
키스 프랫 교수는 3월 12일 이주은의 만정제 ‘춘향가’ 공연이 끝나자 터져 나온 박수와 현지 영국인들의 판소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25년 전 자신이 소개한 고(故) 김소희의 그것과 같았다며 화색을 감추지 않았다. 1979년에 김소희 명창을 영국 더럼 대학에 초청해 판소리를 소개한 프랫 교수는 만정제의 3세대인 이주은의 성공적 공연에 김소희 명창과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수석단원 이주은은 만정제 판소리 ‘춘향가’의 일부를 영어 자막과 함께 35분 정도 공연했다. 처음부터 시작해 ‘사랑가’에서 ‘이별가’까지를 김인수의 북반주로 진행했다.
공연 직후 객석에서 나온 첫 번째 질문은 ‘이별가 이후 춘향이는 어떻게 되었는데요?’였다. ‘몇 살부터 배웠느냐, 판소리를 얼마나 배워야 이렇게 공연할 수 있느냐’ ‘정해진 선율과 대본으로 노래하느냐, 즉흥적인 요소는 얼마나 가능한가’ ‘배우는 과정이 궁금하다’ ‘서편제 영화를 봤는데 이주은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느냐’ ‘판소리의 현대적인 변용과 변이가 어떠하느냐’ 등 영국 관객의 심도 있는 질문이 판소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대변했다.
이번 공연에 동행한 이화여대 국제대학의 윌러비 판소리 교수가 답변을 하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특히 영화 ‘서편제’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에 이주은은 “소리를 훈련하는 영화 속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같았고, 스승이 많이 떠올랐다”는 대답을 했다.
문현이 이끄는 국악프로젝트 그룹 ‘문현과 슬로우시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가곡을 노래했다.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양반기침으로 관객을 주목시킨 가객 문현은 전통의 모습 그대로 앉아 공연을 진행했다. 중국·일본과 차별되는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세심한 배려를 영국 관객들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거문고 독주로 시작되는 가곡의 전주(대여음)에서 ‘여백의 미’와 긴 호흡의 명상적인 아름다움, 음을 떨고 흔들고 끌어 올리는 다양한 시김새에서 번져 나오는 한국 음악의 에너지는 노련한 가객 문현의 공력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문현의 영어로, 먼저 짧게 시조에 관련된 음악적인 설명이 있었던 13일의 시조 워크숍에서는 한국 선비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시조창을 함께 배우는 시간이 마련됐다. 시조의 다양한 시김새 속의 미분음은 영국 음악계에 신선하고 지극히 한국적인 특징의 체험으로 충분히 전달됐다.

한국 음악 시리즈
영국 더럼 대학은 1978년 이래 ‘아시아음악 페스티벌’을 3회(1978년·1979년·1982년)째 개최해 영국에서는 최초로 아시아 음악문화를 영국과 유럽 등지에 정식 소개한 바 있다. 약 30년의 공백기 이후 예전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동양음악 페스티벌을 부활시켜 해마다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의 무속음악’이라는 주제로 동해안 별신굿 보존회 연주자 다섯 명을 초청해 2회의 공연과 워크숍, 세미나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그 후 더럼시 관객들의 성원과 더럼대학교 음악대학 산하 콘서트 ‘뮤지콘(Musicon)’의 후원으로 매 해 의미 있는 콘서트와 특별강연을 기획하고 있다. 2010년에는 ‘중국·일본·한국의 현악’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금교류회’의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가 있었고, 2012년에는 ‘일본·중국·한국의 대나무(bamboo) 음악’이라는 주제 아래 한국에서는 ‘정가악회’의 연주자 여덟 명이 공연한 바 있다.
올해 2013년은 ‘한·중·일의 노래’라는 공연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성악 장르와 발성법·장단·음색 등의 한국 성악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가 마련됐다.


▲ 아베아

몽골과 일본의 노래
우르나 차하르 툭치는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로 공연을 다니는 몽골 음악가다. 자기 자신을 ‘방랑인’이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공연 프로그램을 따로 정해놓지 않고 그날 순간의 기분에 따라 자유스럽게 곡목을 바꾸고 선택해 노래한다고 말했다.
3월 13일 오후 1시에 열린 공연에 그녀는 진눈깨비와 바람과 햇빛이 교차하는 날씨에 어울리는, 오래되고 작은 더럼이라는 도시에 맞는 노래들을 선택해 열창했다. 그녀의 공연은 영화 ‘징기즈칸의 말 두 마리(Two Horses Of Genghiskhan)’에 삽입된 자신의 노래 몇 곡과 초원을 노래한 곡, 몽골 동요, 그리고 자장가 등의 노래로 50분 동안 무대를 이끌었다. 간단한 곡목 설명을 곁들인 우르나의 공연은 청중을 단숨에 무대로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싱어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의 노래로 청중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가 하면, 높은 톤의 소리로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을 섞어 소리를 시원스럽게 질러내는 등 다양한 소리의 구사가 가능한 매력적인 가수다.
사십대 중반인 우르나는 몽고 서남쪽의 가축 농사를 하는 오르도스 지방에서 태어나 열 여덟 살까지 가족을 도와 가축 농사를 했으며, 학교에 갈 때는 말을 타고 가는 등의 평범한 몽골 시골의 생활을 했다. 할머니에게 배운 노래는 그녀에게 빼놓을 없는 생활의 일부 였으며, 중국 양금을 배우기 위해 몽고를 떠나 중국 상해 음악원에서 공부를 했고, 몽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잠시 활동했다. 이후 가수를 위한 집중적인 수련으로 발성법과 작곡을 공부해 지금은 몽골의 대표적인 현대 음악인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어서 샤미센 두 대와 샤쿠하치의 연주로 전주가 흐르는 사이 ‘아베야’의 메인 싱어가 노래를 하면서 입장했다. 일본 팀의 공연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서민적이며 친근하다’로 표현할 수 있다. 일본 엔가(뽕짝 혹은 트로트라고 하면 바로 전달이 되는 노래)의 진한 냄새를 담고 있는 일본 민요는 관객들에게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전 소아스 런던대의 교수이자 일본의 음악학자 데이비드 휴스의 영어 번역으로 노래한 빠른 민요에 이어서 자장가와 축원가를 샤미센 연주자의 남자 민요에 맞춰 관객도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동작을 배워가며 휴식 없이 2시간을 이어서 공연해도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구성이 다채로웠다.
따라 부르기 쉬운 민요의 특징을 살려 외국인 청중들에게 민요의 후렴부분을 가르치고, 쉬운 민요에 맞춰 함께 율동을 하거나 형제의 샤미센 즉흥연주를 경쟁 시켜 청중들 반응을 보는 등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영국으로의 가교, 박성희·사이먼 밀스 부부
사이먼 밀스는 소아스 런던대학에서 동해안 무속음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전문가이다. 박성희 역시 한국 근현대 음악 전문가로 소아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부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이 갖고 있는 독창적인 음악의 특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고, 매년 보물창고에서 하나씩 새로운 것을 꺼내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는 이 부부가 아시아 음악을 소개할 충분한 학문적인 배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럼의 동양음악페스티벌은 이 부부의 전폭적인 노력으로 부활됐으며, 해를 거듭하면서 유럽에 아시아 음악을 소개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계속 될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고, 한국의 어떤 음악가가 다음 페스티벌에 선정되어 유럽예술계에 소개될지 기대된다.

글·사진 현경채(음악평론가) 사진 영국 더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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