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디 사발이 2011년 7월 프랑스 남부 나르본의 퐁트프루아드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바흐 ‘B단조 미사’가 발매됐다. 2장의 SACD, 두툼한 브클릿 외에 실황 DVD와 연주자 인터뷰, 리허설 등을 담은 51분짜리 DVD를 보너스로 제공해 럭셔리한 패키지를 자랑한다. 레코딩이 200종에 육박하는 시대악기 연주의 대가가 일흔이 돼서야 처음 바흐 ‘B단조 미사’를 녹음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여태껏 사발의 바흐는 ‘푸가의 기법’ ‘음악의 헌정’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개의 관현악 모음곡,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이상 알리아 복스) 등 극소수 기악에 한정됐다. 그는 “바흐 녹음이 왜 적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장에 음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동안 바로크 이전 르네상스와 이베리아 반도의 고대음악에 천착했기 때문에 팬들은 사발에게 특별히 바흐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비올라 다 감바 전에 바로크 성악을 먼저 배운 사발이 바흐의 성악 작품을 등한시했을 리는 없다. 실제로 1987년 카탈루냐 왕립 카펠라와 1989년 르 콩세르 나시옹을 창단한 이유는 큰 규모의 바로크 합창곡을 연주하기 위해서였고, 그 중심엔 ‘B단조 미사’가 있었다. 그렇다면 사발의 70년 인생이 녹아든 ‘B단조 미사’는 무엇이 다른가.
우선 성악과 기악의 이상적인 밸런스를 앞세웠다. 사발은 합창 부분에 대해 27명의 중급 규모 합창단을 사용했다. 하지만 관현악 반주에 3개 이하의 악기가 사용되는 부분, 즉 ‘글로리아’의 ‘퀴 톨리스’, ‘크레도’의 첫 부분과 ‘엣 인카르나투스’ 등 5개 악장에선 5~10명 규모의 ‘지지 합창(Choeur favori)’을 사용했다. 리프킨 학설에 따른 ‘성부당 한 명 목소리’ 연주 방식을 절충한 것이다. 바(非)리프킨 방식의 시대악기 녹음이 위에 언급된 악장들에서 밸런스 조절에 적잖이 실패했음을 감안하면 사발의 ‘전략’은 매우 탁월하다. 두 번째 차별성은 젊은 음성이다. 사발은 기존 카탈루냐 왕립 카펠라 멤버에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12개 국적의 젊은 성악도를 새로 포함시켰다. 신구가 어우러진 합창은 밝고 싱그러움, 무게감과 깊이 등 바로크 합창이 요구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청감은 신선한 반면 해석은 매우 전통적이다. 빠르기와 다이내믹은 어느 곳에서도 부당하다고 느낄 수 없다. ‘키리에’는 자연스럽게 노래하되 품격을 잃지 않았고, ‘글로리아’의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은 들뜨지 않은 채 화려하고 당당하다. ‘엣 인 테라 팍스’의 고양감은 일품이며 ‘크레도’는 악장마다 적절한 기복으로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젊은 소프라노 셀린 신과 스즈키 마사아키의 바흐 시리즈(BIS)에서 검증된 일본인 테너 사쿠라다 마코토의 천상의 2중창, 베테랑 카운터테너 파스칼 베르탱의 가슴 시린 ‘퀴 세데스’, 신성 스테판 매클라우드 와 강건한 ‘쿠오니암’ 등 솔리스트 수준이 고르게 높다. 프랑수아 페르난데스(바이올린), 마르크 앙타이(플루트) 등 관록 있는 오블리가토로 흠잡을 데 없다.
아직도 디스코그래피 최상위를 차지하는 레온하르트(DHM)에 비해 지나치게 반듯해 일부 악장이 피상적으로 흐른 점이 흠이다. 최근 녹음 중에서는 리프킨 방식의 존 버트(Linn)와 함께 가장 호소력 짙은 연주로 꼽고 싶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