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탄생 200주년 맞은 바르샤바 표정 수많은 유명 연주자들이 바르샤바로 향하는 데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흥미롭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좋은 연주를 많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 애호가들과 음악 전공 학생들의 표정은 밝다. 하지만 라파우 블레하치를 제외하면 초청된 연주자 대부분이 폴란드 출신이 아니라는 점은 일부 음악 관계자들에게 실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바르샤바 쇼팽 음악대학(2008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 학생들에게 쇼팽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200주년은 어떻게 특별한지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것이 없다고 답했다. 쇼팽은 늘 함께하는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피아노과 학생의 경우 졸업 전 반드시 쇼팽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을 연주해야 한다. 현재 바르샤바 쇼팽 음악대학에는 10명 정도의 동양인 학생이 재학 중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에 출연한 플라시도 도밍고 바리톤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도밍고가 지난 1월과 2월, 다시금 바리톤 역할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섰다. 도밍고는 이 무대를 통해 바리톤을 위한 보카네그라 역을 테너의 역할로 자연스럽게 승회시키며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갔다. 도밍고는 ‘시간의 도전’을 극복했다. 그의 커리어는 ‘도밍고의 후임자’로 지명되어왔던 가수들의 그것보다 더 길다. 회의적인 생각일랑 차치하고, 그의 뛰어난 예술성을 그저 즐기자. 이러한 예술가를 만난 것은 우리시대의 기적이기에.
베르나르 쿠타즈 2월 26일 타계 아르모니아 문디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베르나르 쿠타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아르모니아 문디 파리 오피스는 그의 부고를 알리며 2007년 7월 쿠타즈가 직접 쓴 글을 보내왔다. “음반사 창립 초기부터 오늘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신조는 아주 간단하다. 첫째, 항상 출반에 대한 기쁨을 갖고 음반사 자본의 독립성을 간수할 것(이 자본은 집을 저당 잡혀 마련했음). 둘째, 이익이 남았을 경우 주주들에게 그 이익을 나누어주는 대신 재투자하며 이렇게 얻어진 재정의 기반을 자유로운 출반 정책을 세우는 데 이용할 것. 아르모니아 문디 창립 50주년을 맞는 지금, 나는 여전히 나의 신조가 옳다고 믿는다. 지난 4년간의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적인 음반사들의 판매량이 40퍼센트나 줄어든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판매량은 3~5퍼센트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내가 유신론자였다면, 분명 신에게 감사했으리라.”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말러 사이클 게르기예프와 런던 심포니의 말러 사이클은 증오와 찬사를 동시에 받아왔다. 이러한 간극은 런던 심포니 탓이라기보다 게르기예프의 개인적 기질과 상황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루머인지 몰라도, 너무 바쁜 스케줄 탓에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1990년대 음반산업의 스타가 된 게르기예프는 현재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 중 한 명이지만, 너무 많은 자리를 겸임하는 탓에 자주 스캔들에 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몇 해 전 바스티유에서 공연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몇몇 오페라로 파리 시민들을 경악케 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지난 12월 파리 현지 언론들은 ‘연주가 별로일 수도 있다’라는 본능적인 의심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중독된 듯 게르기예프가 들려줄 환각의 순간을 찾아 살 플레옐을 찾았다. 결론은, 이날의 청중은 뱃속에서부터 울부짖는 삶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페터 슈타인은 유럽의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러시아 배우들은 “캐릭터 그 자체”가 된다고 쓴 적이 있다. 오래된 극음악의 전통에 익숙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말러적 비감을 그들이 아는 연극적이고 감정적인 표정을 통해 ‘실체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