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돌체 볼타’에서 발매된 멘델스존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집 음반이다. 앨범 그 자체를, 그리고 커버 자체를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음반사의 디자인 전략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음반 제목조차 탈착이 가능한 띠지에 인쇄되어 있어서 이를 벗기고 나면(CD를 꺼내려면 벗길 수밖에 없다) 온전히 사진 한 장이다. 정겨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남겨두고 간 빈 의자를 비추는 것처럼 보이는 커버 사진(두 연주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해도 과하다 싶을 만큼 함축적이다), 의자의 초록빛을 콘셉트 컬러로 활용한 세련된 타이포그래피, 연주자들의 클로즈업 사진들과 인터뷰를 담은 매거진 스타일의 내지 등 클래식 음반 디자인이 다다른 한계 지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멘델스존의 음악이 이와 같이 모던하고 세련된 시각 디자인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는다면, ‘엄친아’라 불러도 좋을 멘델스존의 고급스러운 개인사적 이미지가 동원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선입견적 이미지보다는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음악적 짜임새에서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트랙에서 연주되는 첼로 소나타 2번의 첫 악장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렇듯 거두절미한 채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주제로 진입한다. 확실히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동기의 절약과 변화무쌍한 주제의 발전은 특유의 경쾌함이 곁들여져 거침이 없다. 마치 낭만주의의 거품을 털어내며 ‘모던한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멘델스존이 남긴 두 곡의 첼로 소나타 가운데 2번을 첫 곡으로 내세운 것은 이 곡이 더 유명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녹음에서 첼리스트 게리 호프먼이 쓰고 있는 1662년산 아마티 첼로가 멘델스존에게서 이 곡을 헌정받은 어느 러시아 귀족의 손을 거친 악기이기 때문이다. 헌정받은 곡을 그 귀족(첼리스트로서 여러 악기를 가지고 있었을 법한)이 하필 이 악기로 연주했으리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악기에 새겨진 역사적 사실이 이 녹음에 특별한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리 호프먼의 탁월한 연주가 이러한 아우라를 더욱 빛낸다. 첼로 특유의 저음역은 물론, 고음역과 중음역에서는 각각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음색이 느껴져 순간순간 피아노 3중주나 4중주를 듣는 듯한 체험을 안겨주는데, 이 때문에 멘델스존의 짜임새 있는 악곡 구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호프먼이 1986년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 반주자로 인연을 맺은 데이비드 셀리그의 피아노 연주 또한 절묘하게 주제를 이끈다. 흔히 멘델스존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되는 낭만주의적 파토스와 무게를 더해주면서도 선율선을 흐리지 않는다. 테크닉과 호흡 양면에서 첼로와 피아노 연주가 정상급이며 두 악기로부터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음색을 재현해낸 녹음 또한 훌륭하다. 첫 곡과 마지막 곡으로 배치된 두 곡의 첼로 소나타 사이에 첼로를 위한 합주적 변주곡, 그리고 멘델스존의 첼로곡으로는 비교적 유명한 ‘무언가’ Op.109 등의 소품들이 담겨 있다. 새로 발굴했다고 할 수 있는 ‘음악노트’ Op.117이 짤막한 연주 분량으로나마 곁들여져 있어 이채롭다. 전반적으로 템포의 변화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드라마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수준 높은 연주가 담긴 음반이다.
글 최유준(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