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메디아’

비극의 여인으로부터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7월 1일 12:00 오전

국립창극단
‘메디아’

2013년 5월 22~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작곡 및 작창 황호준ㆍ지휘 진성수ㆍ연출 서재형
극본 및 작사 한아름

박애리ㆍ정은혜(메디아)ㆍ김준수(이아손)ㆍ김금미
이연주(도창)ㆍ윤석안(크레온)ㆍ민은경(크레우사)

국립창극단 기악부

국립창극단이 새로운 창극을 무대에 올렸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가족과 자식을 죽이는 여인 ‘메디아’.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메디아’의 악령은 실로 잔인하게 묘사된다. 극본 및 작사 한아름, 연출 서재형, 작사 및 작창 황호준, 지휘 진성수, 무대 디자인 여신동, 안무는 이경은이 맡았다. 무대는 여 감독의 말대로 “천장을 막아 공간에 맺혀 있는 느낌”이 자아난다. 그 속에 맺힌 한과 소리. 우리는 지금 ‘메디아’를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창극의 원 역사는 100년이 조금 넘는다. 1902년 ‘어극 40년 칭경예식(稱慶禮式)’을 그 기원으로 두는 설이 유력한데,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해 명창들이 대극을 준비하면서 창극은 시작됐다. 그 즈음 콜레라가 성행하여 기념행사는 연기되었지만, 이후 극장을 중심으로 창극은 발전해나갔다. 1962년 국립극장에 국립창극단으로 둥지를 틀면서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다채로운 작품의 시도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의 주 서사는 ‘비극’에 가깝다. 지난해부터 국립창극단을 이끌고 있는 김성녀 예술감독이 주창하는 “창극의 세계화”에 겨냥한 움직임이다. ‘장화홍련’ ‘서편제’를 필두로 현대의 서사를 비롯해 희랍 비극까지 창극으로 풀어내는 시도는 또 한 번 창극사에 기록될 일이 된 것 같다.
“내 본성은 고통 속에서 자란 것뿐 나도 평범한 아녀자였다.”
창극 ‘메디아’에 있는 대사다. 올여름 창극 ‘메디아’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그녀의 목소리다. ‘메디아’ 공연이 끝나자 음악계에서는 긍정과 부정의 많은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창극의 본질’부터 시작해 최근 성행하고 있는 뮤지컬의 대세에 따라 ‘넘버가 없다’ ‘송스루(Song-through)의 형식이 적절했다, 하지 않았다’ ‘파격적이다’ ‘감동적이다’ 등 창극 역사상 유례없이 음악계 전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각 장의 인상과 기억에 남는 노래를 기록하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한다.

1장 탄식(歎息)-소리로 시작하는 서곡
“비탄으로 가득 찬 고통의 신음소리”
붉은 옷을 입은 메디아가 등장해 입을 막고 울음을 운다. 흐느끼지만 음정이 있다. 도창자들(코러스)이 양 옆으로 등장해 메디아 이야기를 개괄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아손이 등장하자 가야금 선율이 함께 나온다. 이아손이 잠깐 나왔다 사라지자 메디아는 사방을 헤매며 자신의 심경을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가사 가운데 이 극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의미인 ‘신의’가 등장한다. 도창자가 ‘신의’를 이야기했다.

2장 약혼(約婚)-하지만 기쁨과 불안은 동시에 오는 법
“축배, 축배, 축배, 영광의 축배”
슬픔의 도식을 사그라트린 남자들의 “축배”의 노래가 시작된다. 메디아를 상징하던 붉은 조명도 사라지고, 푸른색이 무대를 감돈다. 메디아와 함께 망명한 코린토스 땅의 왕녀 크레우사와 다시 결혼하기를 꿈꾸는 이아손의 야심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러나 크레온 왕의 딸 크레우사는 왠지 모를 불안을 예견하듯, 생경한 음정으로 불안을 노래한다. 여자 도창들이 “축배”를 외치며 춤을 추는 것으로 1장과의 분위기는 반전됐다. 메디아가 이아손에게 구해준 황금 양피는 크레온의 왕궁에 있다. 왕은 묻는다 “당신이 메디아인가”

3장 추방(追放)-더러운 역사를 만드는 남자들의 욕심
“다정한 말들을 쏟아내시던 입에서 어쩌다 이러다 비난의 말들이 나오나요.”
“그렇소”라는 대답과 함께 3장이 시작되고, 무대의 전체적인 조명 역시 메디아를 상징하는 붉은 색으로 바뀐다. 사선의 구조로 불안감을 고조. 중모리의 계면조 음악이 끝나자 우조의 느낌이 나면서도 새로운 선법이 돋보이는 음악이 생기며, 메디아가 크레온 왕에게 항변한다. 이아손이 나타나 메디아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메디아의 상황은 코러스의 노래로 설명되는데, 이 사이에서 메디아의 마임이나 연기력이 중요해보인다. 그는 절제된 태도로 슬픔을 연기했다. 이아손과 메디아의 감정 대립 신이 인상적이다. 이아손이 휘두르던 칼을, 메디아가 쥐었다. 메디아가 음율이 섞인 대사를 한다. “내 남편이 나를 더한 불행으로 밀어 넣는구나.”

4장 진실(眞實)-모든 거짓 뒤에는 진실이 있는 법
“울지 마라, 어려울 때일수록 눈물을 아껴야 되는 법”
어머니의 수모를 지켜보는 자식들 앞에 메디아가 해줄 수 있는 말, “울지 마라.” 그러나 메디아는 울고 있다. 코린토스의 땅에서 내일이면 추방당하는 메디아를 찾아온 이아손과 시숙부가 죽은 날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시숙부를 살해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이 애타게 원하는 왕좌를 위해.” 시숙부의 눈을 보며 칼을 휘두르던 메디아의 노래다.

5장 결심(決心)-현실을 직시해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법
“약한 여자는 잊고, 착한 딸의 옷을 벗어던지고, 유혹의 손을 잡고 떠나자”
어쩌면 극의 전반을 뼈대처럼 잡아주던 노래 “약한 여자는 잊고, 착한 딸의 옷을 벗어던지고, 유혹의 손을 잡고 떠나자.” 메디아는 이아손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결심한다. 이아손의 손으로 죽은 자신의 동생과 절망해 자살한 아버지. 그가 말했다. “권력에 대한 남자들의 욕망, 처절할 정도로 집요하다. 그 야망, 이기, 모든 권력은 숨겨진 범죄를 딛고 자란다. 아무리 더러운 과정일지라도 성공으로 이르는 그 길은 남자에게는 정당함으로 포장된 도로. 그러니 내 딸아, 잊지 말거라. 너와 함께 일어서려는 남자에게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동행하고, 너를 밟고 일어서려는 남자에게는 명예를 걸고서라도 반드시 복수해라, 잊지 마라.” 회상 속 아버지의 독백 후에 메디아는 현실을 직시했다. 악에 받친 정은혜의 열연이 돋보인다.

6장 복수(復讐)-아비를 만나 형제를 얻고 남편을 만나 아이를 얻고 이것이 과연 인간에게 이득인가?
눈에 띄는 노래 없음, 그러나 “신비한 능력의 소리”는 있음
메디아는 자신에게 있는 ‘신비한 능력’을 사용해 크레우사와 그의 아버지를 죽인다. 죽음을 맞이하는 크레우사 역을 맡은 민은경의 마임은 일품이다. ‘신비한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멀리서 들리는 기계음은 분명, ‘인성(人聲)’이다. 인성의 사용으로 창극은 한계가 없음이 분명하게 발견됐다.

7장 이별(離別)-바라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바라지 않던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
“신이여 막아주소서. 제 자식을 살해하러 들어가는 저 여인을 보소서”
도창자들이 울며 노래했다. 도창자들이 모두 메디아가 되어 메디아의 감성을 잡자,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린다. 이제 두 아들들을 죽이러 들어가는 메디아에게는 표독을 넘어서 되레 따뜻함이 스며있다. “이 어미는 절망의 심연에 떨어져 있구나.” 코러스의 갈급한 주목과 몸짓, 그리고 구도가 극을 더욱 긴장시킨다. 욕실에서 샤워를 시키다 두 아들을 살해한 메디아는 진성의 소리를 내며 아들들을 상징하는 인형을 끌어안고 운다. 그것은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한(恨)…, 한이다.

8장 회기(回期)-내 본성은 고통 속에서 자란 것뿐
메디아가 말을 하듯 노래한다.
“내 본성은 고통 속에서 자란 것뿐, 나도 평범한 아녀자였다.”

글 정우정 기자(wjj@)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