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의 노거장이 바라보는 음악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1875년 파리에서 태어난 피에르 몽퇴는 1961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3년 뒤 타계할 때까지 요람이자 무덤이 되었던 지휘대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활활 불태웠다.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에만 머무르지 않고 독일·러시아 작곡가의 작품들도 숱한 명연으로 남겼던 그이지만 역시 베를리오즈 라벨·드뷔시에 이르는 프랑스 음악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본령이었다. 몽퇴는 발레가 사라져버린 프랑스에서 다시금 불씨를 되살리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되살린 ‘발레 부활’의 상징인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의 지휘를 1911년부터 도맡으면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페트루슈카’,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등을 초연해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약 반세기가 지난 1959년, 몽퇴는 세계 초연했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LSO를 통해 곱씹었다.
프라하 레이블에서 몽퇴의 라벨 음악을 LSO라는 최상의 조합으로 내놓았다. 몽퇴가 LSO의 상임지휘자로 포디움에 선 1961년 12월에 녹음한 ‘스페인 랩소디’는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와 뉘앙스는 기본이요,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백발의 노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게 철철 넘치는 에너지와 불꽃으로 완전 연소하고 있다. ‘밤의 전주곡’의 상징인 네 개의 음표 동기는 무한한 반복 속에서도 천의 얼굴을 가지고 변화한다. 야릇하다. ‘말라게냐’의 생기발랄한 춤판은 나 역시 대단히 이국적이다. 타악기와 금관군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농염한 ‘하바네라’를 거쳐 ‘축제’에서 가히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순간순간 ‘밤의 전주곡’의 동기가 등장할 때면 몽유병 환자처럼, 말 그대로 환상의 세계를 걷는 기분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은 끈질기게 부여잡는 템포감각이 일품이다. 손에 잡힐 듯 선명한 목관 악기의 지저귐은 몽퇴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드디어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등장한다. 춤은 ‘발레 뤼스’를 위한 것이었으되 적어도 음악만큼은 몽퇴를 위한 몽퇴의 것이 틀림없다. 1부에 들어서자마자 1912년 6월 8일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할 때의 분위기가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미하일 포킨의 안무에 따라 다프니스를 연기하는 니진스키와 클로에를 추는 칼사나바의 아득한 전설은 100년을 뛰어넘어 현실이 된다. 몽퇴는 디아길레프와 무던히도 음악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을 터, 서주의 3개의 주제를 지나 ‘종교적인 춤’에 이르면 마침내 로열 오페라하우스 합창단의 광폭한 합창이 추가된 악기로 합세한다. 이어지는 ‘전원의 춤’은 상냥하다. 도르콘의 ‘그로테스크한 춤’은 절로 어깨춤을 유발한다. 2부의 서주는 음산한 합창이 해적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게르에리의 춤’의 광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3부의 글리산도는 역시 몽퇴의 것이 명불허전임을 인정하게 된다. ‘양치기의 피리’는 또 어떠한가? 라벨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일깨운다. ‘판과 시링크스의 사랑’ 부분에서 판이 부는 갈대 피리 소리는 고혹적이다. 드디어 피날레, 님프의 제단 앞에서 모든 출연진이 어우러져 대춤판을 벌이는 장면이 확 들어온다. 과거 데카 레이블의 오리지널 음반에 비해 더욱 정교하고 음장감이 향상된 라벨의 관현악 작품은 이것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다.
글 유혁준(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