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에서 필립 글래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피아노 장면은 음악과 영상의 두 거장이 만났을 때 얼마나 위대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박찬욱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느끼시나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홍상수ㆍ김기덕ㆍ봉준호ㆍ김지운까지…. 그 덕에 외롭지도 않았어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 영화를 많이들 알고 좋아해주는 게 실감이 안 날 때도 많아요.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들이 나를 존경한다고 하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죠.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나이 많은 선배급 감독에 속하는데, 예술가로 치면 일반적으로 젊은 측이라 할 수 있지요. 아직은 스스로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가야 하는 젊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준다고 하면 수줍은 느낌이 들고, 부족한 것 같고 그래요. 칭찬 듣는 데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곡들을 들으시나요?
글 쓸 때나 산책할 때,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특히 말러. 말러 교향곡 전곡을 다 좋아해요. 말러는 물론 브루크너ㆍ베토벤ㆍ브람스ㆍ시벨리우스ㆍ쇼스타코비치 등등의 교향곡을 좋아합니다. 작업하는 방에 오디오는 없고, 글 쓸 때는 헤드폰을 쓰고 들어요. 고음악도 제가 영화에 자주 사용했는데, 조르디 사발의 연주들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의 영화감독을 만나봤어요. 지난해 돌아가신 알랭 코르노 감독이요. ‘공동경비구역 JSA’로 도빌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때 그분이 심사위원장이었어요. 내가 ‘세상의 모든 아침’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더니, 당신은 사발이 직접 그린 악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셨어요. 제 영화에는 바로크 음악을 많이 썼지만, 평소엔 교향곡을 많이 듣고, 지휘는 딱히 가리지 않아요. 불레즈ㆍ아바도ㆍ번스타인… 다양하게 좋아하고, 특히 하이팅크를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가 하이팅크예요. 쇼스타코비치는 하이팅크의 연주만 듣습니다.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의 베토벤도 좋아해요. 하이팅크와 이세르슈테트 두 분 모두 쇼맨십과 스타성이 강한 분들은 아니죠. 대중 스타가 아닌 명장, 장인이랄까. 하이팅크는 레퍼토리의 폭이 넓고 순수하게 음악을 섬기고요. 브루크너는 역시 첼리비다케가 가장 압권이에요.
지휘자와 감독, 음악과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휘자들도 무대에 서는 순간 긴장을 할까요? 왠지 등을 지고 있고 관객들을 마주하지는 않으니까 연주자에 비해 덜 긴장하지 않을까, 여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외국의 영화제나 프로모션을 하러 가면 가급적이면 거기에서 시간이 날 때 콘서트를 가려고 애쓰죠. 가끔씩 운 좋으면 좋은 공연을 볼 수도 있어요. 에셴바흐 지휘랑 길 샤함 연주도 봤었고, 이번에 스페인 빌바오에 다녀왔는데 마리오 카스텔누오보 테데스코의 기타 5중주를 들었어요. 굉장히 좋았어요.
필립 글래스와의 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평소 현대음악도 관심 있게 들으시나요?
필립 글래스ㆍ존 애덤스ㆍ볼프강 림 정도는 종종 들어요. 선호도를 따진다면 미요나 풀랑크를 더 선호하고, 리게티도 좋아해요. 영화에도 많이 사용되었죠. 미국에서는 편집하고 영화가 완성되기 전,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프리뷰를 합니다. 반응을 보고 설문조사를 해서 편집에 반영하는 건데, 그럼 음악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시기에는 영화음악이 완성되어있을 때가 아니라, 임시 음악을 넣어요. 그냥 기성 음악이죠. 상업적 목적의 공개가 아니니까 판권을 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영화음악을 갖다 쓰기도 하고요. ‘스토커’에서 볼프강 림을 한 군데 사용했어요. ‘스토커’ 각본이 처음 왔을 때, 피아노 듀엣 장면에 에릭 사티 풍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내가 에릭 사티 풍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각본을 다 고쳤어요. 고치면서 거기에 필립 글래스 풍이라고 쓰고. 한번 필립 글래스한테 작곡을 의뢰해봤으면 싶었지만, 기대는 안 했어요. 어차피 안 될 테니 다른 영화음악 작곡가한테 필립 글래스 풍으로 해달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시도를 해봤는데 필립 글래스가 내 영화를 좋아한다며, 하겠다는 거예요.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이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를 하는 맛이구나 싶었죠. 뉴욕에서 만나보니 굉장한 장난꾸러기에 쾌활한 사람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읽으면 피아노 듀엣 장면에 에로틱한 느낌이 전해져요. 필립이 나더러 이 곡을 통해 무엇을 원하느냐고 해서 “이건 말이 피아노 듀엣 연주이지 사실은 섹스예요”라고 답했어요. 필립도 각본을 다 읽고 왔으니까, 정말 그렇다며 좋아하더라고요. 예전에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썼을 때, 초연했던 연주자들이 친구 부부였다고 해요. 연습을 해와서 보여주는데, 남편이 “그런데 이거 아세요?”라면서 자기 아내 어깨의 바깥으로 팔을 뻗어 아내를 끌어안은 채 연주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더래요. 이거 좀 에로틱하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거다, 싶어서 밤에 시나리오를 고쳐서 그렇게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피아노 신이 완성되었죠. 나는 촬영지였던 내슈빌이랑 프로덕션이 있는 LA에 있는데, 자주 못 만나니까 뉴욕에 있는 필립과 전화나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곡을 굉장히 빨리, 칼 같이 마감을 지켜서 쓰시더군요. 워낙 다작을 하는 분이지만 정말 프로페셔널이었어요. 정확히 마감을 지키는 건 물론이고 나처럼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런저런 요구를 해도 다 이해하고, 영화감독으로서 구체적인 요구가 있는 게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런 대가한테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만큼, 요구를 많이 했어요. 내 영화고 내가 감독이고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원하는 지점이 있으니 도리가 없잖아요. 다른 영화음악 작곡가에게 하듯이, 필립 글래스에게 이런저런 걸 시키고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래 놓고 속으로 떨었어요. 통역이 있어서 다행이더라고요. 직접 말했으면 더 떨렸을 거예요. 그런데 필립은 화 한번 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냈어요. 결국 마지막에 내가 이만한 대가한테, 나이 있는 분한테 이러기도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용서하시라 했는데도 감독으로서 네가 뭘 원하는지 알고 두루뭉술하지 않은 게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피아노 신이 영화 전체의 핵심인데, 음악으로 인해 완성이 된 장면이죠. 음악과 만나기 이전에도, 영화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촬영이 가장 잘 되었고 그만큼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장면이에요. 그동안 많은 영화에 악기 연주하는 장면들은 가끔 나오지만 이렇게 감정이 농밀하게 전달되는 건 드물지 않나 싶어요. 다만 내가 악보를 볼 줄 알고 악기를 할 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어요.
뛰어난 심미안이나 미장센에서 엿보이는 감각은 타고난 건가요?
건축가인 아버지도 아마추어 화가이고, 나는 어렸을 때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동생(미술가 박찬경)이 너무 뛰어났기에 안 했어요. 집안 전체가 미술과 친근한 편이지만 실제 생활에서 까다롭게 따지지는 않아요. 다만 영화는 내 이름을 걸고 완성되는 세계인 만큼, 신경 써야겠죠. 그냥 예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공허하게 멋있자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영화 내용과 인물의 성격, 그때그때의 감정을 잘 전달하려는 수단이 미장센이에요. 시각적인 스타일ㆍ공간적 장치ㆍ음악ㆍ소리와 음향 효과…. 그냥 멋있는 음악, 보기 좋은 화면을 위해 공을 들이는 게 아니에요. 그게 주가 아니죠. 감각적인 스타일은 이야기, 인물의 성격과 상황 속에서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에요.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효과적으로 잘 해내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어요. 배경 음악, 찻잔 하나, 사소한 소품도 그냥 아무렇게나 할 수 없어요. 다 의도가 있고, 큰 디자인 속에서 하나하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연출의 방식이에요. 물론 자연스럽게 사실적인 연출을 하고, 그걸 중요시하는 감독도 있지만 나는 공들인 미장센을 하는 쪽이에요. ‘모든 것은 의도 속에서 존재하며, 의도를 담고 디자인되어야 한다.’ 이게 내 철학이에요.
그런 철학적인 시각과 접근은 본인이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하는 작가주의적 시네아스트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요?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도 그랬듯이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것은 물론, 감독 활동 이전에 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셨는데요.
아무래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니까 그런 경향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히치콕이나 하워드 등 가장 위대한 거장들은 자기가 시나리오를 안 썼어요. 다른 사람이 각본을 썼죠. 다만 그들의 크레딧이 각본으로 올라가지 않았을 뿐, 수정을 계속 요구하면서 쓴 거니까 사실 공동 각본이나 다름없어요. 나는 직접 쓰거나 다른 사람이 쓴 걸 내가 전면적으로 고치거나 해요. 그러니까 ‘내 이야기’이고, 내가 만든 영화는 아무래도 그런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걸 너무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요. 만들 때 재미있는 이야기, 관객들이 감동과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면 그만이지. 어떤 이성적인 생각을 드러내놓고 강요하기 보다는 감각적으로 자극을 주고 은유적으로 남기고 싶어요. 미술이나 음악, 음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야기예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감각에 굉장히 강한 자극을 주면 관객들은 강렬한 체험을 하죠. 심지어 촉감이나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오감을 자극받고… 그 다음에 뭔가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왜 저 인물은 이토록 잔인한 행동을 할까, 그런 잔인성과 당하는 이의 고통에 대해 몸서리치게 느끼고, 나아가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용서와 복수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어요. 복수극에서 복수의 행위가 통쾌할 수도 있잖아요. 관객들은 저런 잔인한 행동을 보면서 내가 왜 통쾌하지, 내가 악한 걸까, 잘못됐을까, 이런 선악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고요. 영화를 통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중요히 생각하지만, 그걸 대놓고 말로 표현하거나 날것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감각을 통해서 철학적인 질문을 유발하고 싶어요. 가장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감각에 실어서 전달하고 싶은 거죠.
영화는 실현화를 위해 필수적인 제반 조건들이 많은… 덩치가 큰 예술이지요. 감독으로서 예술적인 욕구를 타협해야만 하는 제약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예술가로서 완벽함이라는 지점, 영화감독으로서는 어떻게 도달하나요.
어렵죠. 제약이 많은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죠. 지휘자도 객원지휘하러 갔는데 리허설을 넉넉하게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상임으로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더 좋은 단원으로 바꾸고 싶고, 연습 환경도, 공연장도 더 개선하고, 협연자를 일류 수준으로 데려오고 싶어도 다 할 수는 없어요. 프로그램 선정할 때 현대음악이나 새로운 실험적 시도를 하고 싶어도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반대에 부딪힐 수 있고요. 이런 제약은 영화ㆍ오페라ㆍ오케스트라ㆍ뮤지컬처럼 큰 돈이 들어가는 장르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영화감독의 일은 끝없는 타협과 절충이에요. 굉장히 극단적인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 할지라도 끝없이 절충을 할 수밖에 없죠. 우리는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적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어요. 그게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지휘자에 비하면 영화감독은 불만스러운 상황을 훨씬 더 많이 겪어야 하니 익숙해져야 해요. 영화 속에서 캐릭터와 장면에 더 어울리는 찻잔을 찾고 싶은데 그 찻잔이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어느 선까지는 최선을 향해서 노력하지만 또 적당히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없죠. 최상의 것을 못하면 그 다음을 택하면 되고. 감독 입장에서는 촬영을 많이 할수록 좋아요. ‘스토커’는 촬영이 40회였는데, 한 60회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럴 여유가 없으니 촬영 회차부터 모든 게 다 타협이었죠. 40회다, 줄여야만 한다. 그럼 최종 편집에서 안 쓸 것으로 예상되는 처음부터 안 찍는 거죠. 좀더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연구를 해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촬영을 하는 거예요. 찻잔이 필요할 때에는 내가 원하는 게 최상은 이것이지만 그게 아니면 이거, 다음은 이거, 이렇게요. 영화는 그래서 어려운 예술이에요. 원 없이 예산을 쓰려면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를 하면 되겠지만, 그건 또 나름의 제약이 있으니까요. 차라리 내가 원하는 영화를 하면서 가난하게 하는 게 낫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려면요.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 같은 블록버스터 하는 걸 좋아한다면 그걸 하는 게 맞지만, 추구하는 영화가 그게 아니라면 엄청난 예산이 의미가 없어요. 차라리 타협해가면서 진짜 하고 싶은 영화를 해야지.
감독님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면 될까요.
“철저했다.” 완벽주의자와는 약간 다른 뜻인데요. 대충 한다거나 우왕좌왕하면서 여기도 넘보고 저기도 넘보지 않고, 작품 하나하나 그 안에서만큼은 한번 세운 방향을 철저하게 끝까지 추구하려고 노력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서사의 측면에서 한눈 팔지 않고, 시각적인 면이나 음악이나 스타일의 면에서 철저히 그 내용과 드라마와 감정에 충실한 그런 감독이었다고요. 다시 지휘자 하이팅크가 떠오르는군요. 평생을 바쳐 그런 순도 높은 음악을 빚어내는 명장처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너무 과한 바람일까요. 서사가 강한 것보다 신화적인, 근본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그럼 이제 바그너를 들어야 하나. 엄두가 안 나지만 또 모르는 일이죠. 어떤 영감들을 가져다 줄지.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