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굴곡 많았던 인생을 살다간 쇼스타코비치는,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기구한 삶과 많이도 닮았다. 쇼스타코비치가 양차 대전 속에서 당국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예술을 지켜나갔다면, 얀손스는 어린 시절부터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운명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리가의 게토에서 비참하게 처형되었고 어머니는 얀손스를 몰래 낳았다. 더구나 여섯 살의 어린 얀손스는 목전에서 KGB에게 납치돼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이모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면면에서 얀손스는 므라빈스키나 콘드라신이 아니라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관한 한 현재 최고의 권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을 이끌고 쇼스타코비치의 첫 삽을 뜬 얀손스는 런던 필·베를린 필·빈 필·오슬로 필뿐 아니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피츠버그 심포니 등 미국 오케스트라를 거쳐 자신의 악기가 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O)에 의해 전곡 사이클의 위대한 과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BRO와 함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RCO)와 또 다른 쇼스타코비치 여정을 떠나고 있다. 200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맞아 RCO 라이브로 발매된 교향곡 7번은 실황임에도 오히려 스튜디오 녹음을 능가하는 디테일과 스토리텔링이 극대화된 최고의 명연주로 기록됐다.
이번에 그 후속타로 2009년 1월 29일과 2월 1일, 나흘에 걸쳐 연주한 교향곡 10번이 4년의 동면에서 깨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열 살의 꼬마 얀손스가 1953년 12월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홀에서 므라빈스키가 초연하는 것을 직접 목도한 교향곡 10번은 그야말로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얀손스는 1994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처음 이 곡을 녹음했다. 당시 매끈한 ‘필라델피아 사운드’에 얀손스의 대륙적인 기운이 덧입혀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 명연이 됐다.
이후 15년이 지난 거장의 새로운 담금질은 어떨까. 우선 내용은 동일하되 그 형식은 다소 이완됐다. 얀손스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던 템포는 총 연주 시간 53분으로 2분 이상 늘어났다. 1976년 므라빈스키의 동곡 녹음에 비해서는 무려 4분이나 지연된다. 그만큼 황혼기에 접어든 얀손스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의 깊이가 해탈의 경지에 근접했다는 뜻이다. 1악장 도입부, 저현군의 침침한 음형은 놀랍도록 치밀하고 촘촘하다. 기능적인 면은 역시 RCO의 전매특허답게 완벽을 자랑한다. 클라리넷의 서정미는 발군이다. 2악장의 성급한 목관은 또 어떤가! 3악장의 야릇한 페이소스는 얀손스에 의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진다. 4악장의 빛나는 피날레는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면서도 RCO는 세련미를 잃지 않는다.
“남편도 항상 체포의 위협 속에 살아야만 했어요. 주위 사람들도 모두 잡혀가던 상황이었답니다. 그의 친구들이며 친척들이며 모두 말입니다. 삶 자체가 힘든 시기였지요.” 꼭 10년 전인 2003년 겨울 모스크바 자택에서 만났던 쇼스타코비치의 미망인 이리나 여사의 고백이 자연스레 들려온다. 암울했던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이 음반은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