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교향곡 3번 앨범을 리뷰하면서 필자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폴란드 태생 독일 지휘자 마레크 야노프스키(1939~)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이 제대로 완결될까 걱정한 것.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연주를 맡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의 계약이 종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2년 10월 녹음된 이번 음반의 등장으로 레코딩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7년 녹음된 교향곡 9번을 출발점으로 하는 야노프스키 브루크너 사이클 제9탄이다. 이 브루크너 교향곡 2번 레코딩의 가장 큰 특징은 지휘자가 채택한 판본에 있다. 저명한 브루크너 연구학자 윌리엄 캐러건이 편집한 1877년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 작곡가의 다른 교향곡도 마찬가지지만, 브루크너 교향곡 2번의 스코어 종류는 무척이나 복잡하다. 애초에 1872년 곡을 초연하려 펠릭스 오토 데소프가 빈 필하모닉과 리허설을 하고 난 뒤 “너무 길다”고 불평했으니. 하지만 윌리엄 캐러건이 편집한 1872년 오리지널 콘셉트 버전은 오늘날 상당수 지휘자들에 의해 녹음되고 공연되고 있다. 스케르초 반복부를 생략하고 마지막 악장 56소절을 덜어낸 1893년 초연 형태 버전도 존재한다. 가장 보편적인 텍스트는 브루크너 자신이 1877년 개정한 스코어를 바탕으로 한 하스 에디션, 그리고 1877년 스코어를 기본으로 삼되 1872년 스코어를 절충한 노바크 에디션이다. 그러므로 본 1877년 캐러건 버전은 작곡가의 최종 결론에 중점을 두고 있는 판본이라 하겠다. 원작과 차이가 심한 1892년 도블링거 에디션은 논외로 치자.
텍스트 문제는 이만 접어두고 음악에 대해서 평한다. 연주는 한마디로 빠르고 담백하며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동일한 판본을 채용한 다니엘 바렌보임/베를린 필하모닉의 1997년 레코딩(Teldec)에 비해서 극과 극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장장 71분대로 러닝 타임을 길게 늘어뜨리는 아사히나 다카시/오사카 필하모닉(Canyon Classics)만큼은 아니지만, 항시 두꺼운 근육과 갈색 피부를 자랑하는 바렌보임은 그의 바그너 악극과 유사한 관현악 사운드를 지향한다. 반면 장식적 부풀림을 일체 거부하고 명석한 역학으로 작품의 구조적 건축미를 조명하는 야노프스키의 브루크너는 올곧고 간결하다. 그렇다고 해서 딱딱하다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와 주제 사이 엮음새가 대단히 촘촘한 1악장을 들어 보라. ‘쉼표 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곡 전개가 유려하다. 안단테 악장은 목가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며, 스케르초 악장과 피날레 악장은 넉넉하고 위엄 있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밝은 소노리티가 음악에 화사한 색깔을 덧입힌다. 단, 이것이 청자에 따라서는 연주에 중후한 맛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 소지가 된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오디오파일에 인기 있는 레이블답게 사운드 퀄리티가 우수하다. 포커싱이 약간 흐릿하여 모든 소리가 둥글둥글하게 들리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랄까. 앞으로 남은 야노프스키 브루크너 사이클의 과제는 교향곡 4번. 모쪼록 별 탈 없이 레코딩되어 폐반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지휘한 1990년 동곡 반(Virgin Classics)을 대체하길 소망한다.
글 이영진(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