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 사진 유니버설뮤직

백건우의 슈베르트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했다. 한숨이 나올 것 같은 아름다움, 선율 너머에 숨은 비감,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순간 엇갈리는 빛과 어둠이 있었다. 피아노는 노래했고, 꿈처럼 시로 화하고 있었다. 인간이 어떤 경지에 오르면 과연 저렇게 음악을 빚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라 로크 당테롱에 모여든 사람들은 발걸음을 조심히 옮겼고 부채질을 멈추었으며,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의 슈베르트에 집중했다. 귀와 마음과 영혼이 황홀해지는 경지였고, 영혼을 실은 연습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완벽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어딘가로 떠돌고 싶어 했던 슈베르트의 방랑자적 마음마저 얼핏 엿보였다. 비록 그의 육체는 지옥에 있을지라도 영혼은 천상을 향해 갈 것이다. 흑과 백처럼 선명한 천국과 지옥이 서로 섞이지 않고 공존하는 순간, 즉흥곡 2번에서 피아노 소곡으로 넘어가는 순간, 백건우가 슈베르트의 세계에서 살고, 숨 쉬고 노래하다가 그대로 걸어 나와 슈베르트의 초상을 그려내는 화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적인 만큼 여백이 있기에 자칫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 모든 것이 지나치게 단순해질 수 있는 슈베르트는 결코 쉽지 않은 레퍼토리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은 관객들에게 가장 음악적인 ‘음악의 순간’을 선사했다. 천둥 같은 포르테부터 수정처럼 영롱한 음표들이 여름날 햇빛처럼 눈부시게 쏟아졌다. 슬픔을 등에 가득 지고 걸어가지만 그의 그림자에는 찬란한 빛이 숨어 있었다. 이토록 찬란하고도 눈부신 슬픔이라니. 슈베르트의 초상화에 섬세한 필치로 빛과 어둠을 화폭에 담아낸 반다이크나 렘브란트의 그림들이 겹쳤다.
그림에 압도되는 이유는 그것이 시대를 지나왔음에도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품에 안고 거듭나며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거인처럼 피아노 앞에 앉은 백건우는 마법처럼 슈베르트를 불러냈다.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지닌 생득적인 몽상과 우울이 선득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꿈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한탄을 쏟아내고 허무와 비통함을 노래하며 백건우는 내면의 노랫소리를 따라 더 멀리, 더 멀리 가고 있었다. 이토록 현현하고 선연하게, 슈베르트의 얼굴을 마주쳤으므로 음표들이 심장 속으로 깊숙이 박혀왔다. 느린 2악장에서는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한 순간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매혹시키는 것, 시와 음악의 공통분모이다. 시어를 조탁해낸 시인처럼 음표 하나하나 색채와 깊이를 불어넣는 백건우가 빚어낸 나직한 한 음은 속삭임과도 같았고,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순간에는 모두가 생의 상처에 몸을 기댄 채,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슈베르트는 다시는 오지 않을 인간의 유한한 삶이 지닌 생득적인 슬픔을 알고 있었다. 닿고자 했던 영원을 향한 열망,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 존재의 슬픔과 남루함이 깊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백건우의 피아노는 이 어둠을 뚫고 지나가면 빛이 있을 것이라고, 지친 우리의 영혼을 껴안고 찬란한 슬픔을 오롯이 마주하게 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다운 슈베르트를 시의 언어로 빚어낸 백건우를 라 로크 당테롱에서 만났다.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9월 14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899, ?악흥의 순간’ D780 중 2·4·6번, 3개의 피아노 소곡 D946

이제 33회를 맞은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 4회부터 지금까지 벌써 아홉 번째 초청입니다. 페스티벌 총 기획을 맡은 르네 마르탱은 “백건우는 듣는 이를 숙연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거쳐간 이 페스티벌에 백건우는 그만의 놀라운 집중력으로 청중에게 영적이고 초월적인 경험을 선사한다”고 평했습니다. 라 로크 당테롱은 물론 엑상프로방스·콜마르·베를린 축제주간·두브로니크·라비니아·BBC 프롬스…. 유럽에서 활동을 막 시작한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최고의 명성을 지닌 여러 페스티벌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복 없이 연주자로서 꾸준한 커리어를 유지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인데요. 파리의 청중은 발음하기 어려운 백건우의 이름을 모두들 알고 있고요. 무려 40년이 넘도록 늘 정상에 있을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꾸준한 연습만이 그 답일까요?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0년 동안 저는 그저 피아니스트일 뿐이에요. 피아노를 통해 드넓은 음악의 세계를 아직도 탐구하느라 하루가 부족합니다. 늘 시계를 차고 있는데,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개념이 흐려질 때가 종종 있는 탓입니다. 매일 여섯 시간의 연습도 무척 빨리 지나가고, 짧게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혼자 고민할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할 때부터 누구에게 레슨을 받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듣고 혼자 고민하고 파고들었으니까요.
단 하나의 프레이즈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로 다른 연주가 될 수 있으니 음악이란 얼마나 깊고 넓은 세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연습을 하고 악보를 들여다보는 건 제 일상이고 매일, 매 번의 연습마다 한음 한음이 늘 새로우며 여전히 음악의 세계에 들어갈 때마다 경이로운 경험을 합니다. 지루할 틈이 전혀 없습니다.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처럼 음악을 탐구하는 만큼, 테크닉적 기량을 유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하게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는 건 없습니다.

무소륵스키·리스트·라벨·포레·쇼팽·베토벤·라흐마니노프·스크랴빈·프로코피예프… ‘피아니스트 백건우’ 하면 전곡 연주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한 작곡가에 이렇게 깊이 파고들다 보면 작곡가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을 지니게 되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왠지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작곡가를 마치 가까운 존재처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무소륵스키를 준비할 때, 작곡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를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냉전시대였고, 게다가 미국에 살고 있는 저에게는 불가능한 꿈이었어요. 대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러시아를 느끼고자 했습니다. 거의 러시아인이 되고자 했어요. 뉴욕에 있는 러시아인 커뮤니티를 찾아가 러시아 정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러시아 음식을 먹고, 러시아 차를 마셨고, 시네마테크에서 러시아 영화들을 한없이 봤어요. 러시아어의 발음과 인토네이션을 알아야만 곡을 제대로 연주해낼 수 있다는 걸 악보를 연구하다가 깨달았습니다. 당장 러시아어를 배울 수는 없어서 녹음된 희곡과 소설들을 반복해 들었어요. 러시아어의 발음에 귀 기울이며 음악적 아이디어를 얻고, 무소륵스키 특유의 언어를 제 것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모든 작곡가들이 빠짐없이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굳이 꼽아야 한다면 베토벤 전곡 연주를 통해 연주자로서 한 페이지를 넘겼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을 연주하면서 저 스스로도 연주자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슈베르트에 빠져 있지요. 이번의 슈베르트 역시 가장 슈베르트적인 순서를 위해 고민을 오래했습니다. 어떤 순서로 관객들에게 슈베르트를 펼쳐보일지, 고민하는 것 역시 연주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자기만의 것을 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가져야 할 정체성이지요.

한 작곡가의 세계 안에서 ‘살아내는’ 경험을 하시는군요. 요즘에는 악보에는 그저 음표만 있을 뿐이니 굳이 배경에 대해 알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악보만 연주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연주자들을 더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비평가들이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언급해온 “백건우의 피아니즘 ; 모든 것을 이해한 듯한 비르투오소, 심도 있는 깊이와 음악적 진정성이 돋보이는 연주” 혹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보다 더 러시아적인 라흐마니노프, 프랑스 음악의 정통성을 지닌 라벨의 진정한 해석”이란 평을 들어왔습니다. 특유의 진지한 접근 덕분일까요?
연주를 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저는 그렇게 온전히 알고 이해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왠지 마음을 다해 섬기는 신성한 음악에 대해 합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느낌이랄까. 매번 그 작곡가에 푹 빠져서 완전히 그 사람의 내면에서 살아야 온전히 작곡가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걸 무대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리스트는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오해를 받았죠. 저 역시 그를 잘못 알고 있었어요. 화려한 비르투오소였고 인기 절정의 콘서트 피아니스트였지만 그건 리스트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그는 음악의 외연을 확장해 바그너를 위시한 신음악의 탄생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리스트로 인해 피아노 음악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이지요. 리스트는 음악 이외의 장르를 음악에 가져오는 데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연주를 통해 콘서트 홀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곡을 썼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알아가야 할 음악을 위해, 그 재현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에요. 이런 접근이 아니라면 연주가 음악의 본질을 실어 나르는 게 아니라, 표피만 흉내 내는 연극적 제스처에 그칠 겁니다.


▲ 라 로크 당테롱의 백건우

연주자라는 외길에 40년 넘게 집중하는 동안 다룬 레퍼토리들이 무척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연주되는 고전과 낭만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펜데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스페인 초연과 강석희의 피아노 협주곡 세계 초연을 맡으셨던 점이 눈에 띄는데요.
연주 때문에 내가 빈에 있었을 때 펜데레츠키가 팩스를 먼저 보내왔어요. 예전에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걸 들었다며, 오래전부터 작업을 함께 하고 싶었다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스페인뿐 아니라 이탈리아·한국·몬테카를로 초연을 내가 했는데 첫 연주는 마드리드에서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마드리드에 도착하고 보니 남부 유럽답게 에어컨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리허설 하나가 당일에 취소되었더군요. 곡의 난이도며, 게다가 초연이니 리허설 한 번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예요. 많이 당황스러워서 오케스트라 없이 혼자라도 연습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펜데레츠키가 연습하는 걸 바로 옆에서 듣고 싶다는 거예요. 작곡가가 바로 내 옆에 앉아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더 긴장이 되더라고요. 펜데레츠키는 내 연주를 듣기만 한 게 아니라 내 견해를 물어오며 쉬지 않고 말을 걸어왔어요. 내 해석에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이런 부분은 새로운 발견이다, 참 아름답다는 코멘트도 해주고요.
이 협주곡은 9.11과 부활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 내가 아무리 해도 연주가 불가능한 패시지가 있어서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펜데레츠키가 악보를 들여다보고는 “내 머릿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이 패시지를 쓸 때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더니 나더러 “이 패시지는 네 마음대로 연주하라” 했어요. 그 후에도 자꾸 자신의 곡에 대해 물어왔어요. 어떻게 생각하느냐,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있었겠냐고요.
곡에 삽입된 코랄이 참 아름다운데 뭐랄까, 종교적인 느낌도 들고 고풍스럽고… 천상의 음악 같았어요. 옛 폴란드의 선율 같기도 해서 혹시 예로부터 전래되는 음악이냐고 물었어요. 그건 아니고 그런 느낌이 나도록 자신이 직접 쓴 거래요. 내 생각에 만약 곡이 이 코랄로 끝나도 좋겠다고 했어요. 곡의 종결부에 약간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리허설이 끝나고, 펜데레츠키와 헤어졌어요. 저녁에 다시 만났을 때, 오후 내내 호텔에서 엔딩 부분을 다시 썼다는 거예요. 물론 이번에는 수정한 부분을 반영하지 않겠지만 다음 연주부터는 엔딩을 개작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연주할 거라면서요. 조금도 스스럼없이 “더 나은 곡이 될 거”라며 기대에 찬 그의 얼굴을 보면서 놀랐어요. 연주자로서 나는 그저 작곡가의 음악을 현실에 가져오는 사람이니까요. 펜데레츠키와 같은 거장이 그렇게 열려 있고 겸손하고, 자기 작품에 충실한 모습을 보는데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음악의 진실을 향한 마음은 연주자나 작곡가나 다르지 않은 거니까요. 펜데레츠키는 명성과 지위를 얻으면 흔히 빠지기 쉬운 아집이나 독선이 전혀 없는 작곡가였어요. 그래서 늘 훌륭한 곡을 쓰고 작품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작곡가에 의해 쓰인 작품이 연주자의 손을 거쳐야만, 작품이 지닌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작곡가였지요.
강석희 선생님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저를 위해 곡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내 생각에 연주의 규모나 수준을 생각하면 피아노 솔로곡보다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을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피아노 협주곡이 작곡되었습니다.
강석희 선생님은 곡을 쓰시면서 이게 과연 피아노로 가능할까라는 의문과 자주 맞닥뜨리셨던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오선지에 써서 보내주시면 연주를 해보고 피아니스트로서 약간의 제안을 하겠다고 했어요. 내가 곡을 쓸 수는 없지만, 옥타브를 바꾼다거나 좀더 선율을 피아노적으로 한다거나 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 당시는 팩스로 모든 게 왔다 갔다 할 때라, 팩스가 수없이 오가면서 한 쪽 한 쪽… 그렇게 수년에 걸쳐 나에게 곡이 도착했어요.
화가나 소설가나 작품 하나를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을 거예요. 복잡하고 어려운 곡이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결실을 본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창작의 과정에 내가 한몫을 한다는 재미와 뿌듯함이 있었어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브뤼노 페랑디스의 지휘로 세계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감동과 뿌듯함은 현존하는 작곡가와의 작업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감정이겠지요. 작곡가와 연주자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호흡이 맞출 때에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집중력으로 몰두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인생에 혹시 음악과 피아노 외에 다른 애정을 쏟는 대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화적으로 풍성했던 1960년대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미술 시간에 자화상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과감하게 색을 사용해 그린 제 자화상을 미술 선생님이 학교 대표로 전시회에 보냈습니다. 어떤 신사가 꽤 큰 돈을 주고 사갔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림·사진·영상 등 시각적 장르에 깊이 마음을 빼앗기고 매혹되고는 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장르 가리지 않고 즐깁니다.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음악 외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의 프로그램을 듣고 작곡가의 초상화가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섬세한 세밀화의 붓 놀림으로, 한 순간에는 강한 스트로크로 과감한 색채를 사용한 인상파의 그림 같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음악으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연주자로서, 인상적이었던 청중 혹은 팬이 있었는지요. 공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길게 선 청중 중 한 사람은 “백건우는 황금의 손을 가진 놀라운 피아니스트”라고 하는 등 사람들의 얼굴에는 음악으로 인한 흥분과 열기가 묻어 있었습니다.
파리 성당 앞에서 당신의 음악에 감사한다면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속삭이고 간 분의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열렬한 팬이라며 한 화가가 직접 자화상을 그려 선물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삶은 음악 그 자체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 다시 태어나도 피아니스트가 되어 음악을 하실 건가요?
다시 태어나도 피아노를 칠 겁니다.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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