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킬·카자드쥐의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베토벤 협주곡 5번

최고의 해석, 차선의 연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전전(戰前) 세대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클라라 하스킬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K466 협주곡 녹음은 10여 종에 달한다. 그녀와 협연한 지휘자는 유명한 DG 녹음(1960)을 지휘한 마르케비치에서 시작하여, 힌데미트·뮌슈·파움가르트너·프리처이·이세르슈테트·스보보다 그리고 클렘페러에 이르기까지 총 여덟 명에 이른다. 이만하면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을 제외하고 전전 세대 거장들을 거의 모두 아울렀다고 할 만한데, 이번에 오디테 레이블에서 발매한 클렘페러와의 협연은 최고의 해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1959년 9월 8일 스위스 루체른의 쿤스트하우스에서 있었던 연주회를 담고 있는 이 라이브 녹음은 상반된 음악 스타일의 화학 통합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려주는 시금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절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른 견고한 형식미를 강조하는 클렘페러의 느린 음악과 유려한 선율미를 추구하는 하스킬의 전아함은 언뜻 서로 융합하기 어려운 상반된 스타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거장은 능소능대한 음향 조형과 우아한 선율미로 이러한 의구심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 이 연주에서 클렘페러는 절묘한 완급 조절로 하스킬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와 동시에 텍스트에 담긴 세부 표정을 생동감 넘치는 선율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도대체 전혀 무리하지 않고, 음악에 담긴 감정의 진폭을 적확하게 살려내는 다이내믹은 모차르트의 품격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놓고 있다. 그러나 하스킬의 연주는 최고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라이브 연주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간혹 불안정한 면모 – 예를 들어 첫째 악장의 9분 근처와 카덴차 – 를 보인다. 그러나 이 대목을 제외하고 보면, 클렘페러와 호흡을 맞춘 그녀의 모차르트는 전아함과 명료함, 유려함과 절도가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최고의 해석이라고 할 만하다. 한 마디로 스페셜리스트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음반에 함께 담겨 있는 카자드쥐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에 대해서는 그리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 것 같다. 1957년 9월 1일 루체른에서 있었던 연주회를 담고 있는 이 라이브 녹음에서 그는 미트로폴로스와 빈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프랑스 스타일의 베토벤을 구사하는 카자드쥐와 긴박한 선율미로 강력한 추진력을 이끌어내는 미트로폴로스의 만남은 라이브 특유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한 듯하지만, 프랑스 스타일의 베토벤 해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롱한 음색과 미려한 선율미, 그리고 음향 저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는 듯한 여백의 미학을 그 대가로 지불한 듯하다. 그리고 군데군데 나타나는 카자드쥐의 불안정한 모습 – 예를 들어 피날레 악장 도입부 – 을 보고 있노라면, ‘무작정 숨 가쁘게 달려가서 얻고자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처럼 불행한 만남을 위로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트로폴로스의 예리한 지휘에 거의 완벽하게 대응하는 빈 필하모닉의 화려하고 기민한 음향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카자드쥐가 연주하는 최고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원한다면, 한스 로스바우트/로열 콘세르트헤보와 함께 한 1961년 녹음(Philps)을 권하고 싶다.

글 박성수(음악 칼럼니스트)


▲ 클라라 하스킬·로베르 카자드쥐*(피아노)/오토 클렘페러·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
Audite 95.623 (A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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