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레나 코제나의 평소 목소리는 노래할 때만큼이나 깊고 넓고 여유로웠다.
우연과 모험, 새로운 시도가 가져다 주는 흥분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디바보다는 자연인에 가까웠다. 11월 내한 공연을 앞둔 코제나를 전화로 만났다.
바로크 레퍼토리, 바흐의 칸타타를 포함한 음반으로 데뷔했다. 당신의 목소리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음악, 바로크 음악이 특별히 잘 맞는 이유가 있나.
내가 노래를 시작한 브르노의 음악원에서 제대로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저 소리를 아름답게 만들어내기 이전에 가사를 전달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두는 방식이었다. 나는 믿음이 아주 깊거나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연주를 통해 바로크 음악 특유의 신성한 느낌이 전해지고 가사의 의미가 고스란히 전달됐다면 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겠는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바로크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더 많은 자유와 모험, 우연이 불러일으키는 기적 같은 순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악가에게 주어진 운신의 폭이 더 큰 장르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다 하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을 배우는 동안 특히 여성 성악가들에게는 레퍼토리들이 뻔해지기 쉽다. 다들 부르는 곡들을 또 부른다. 나름의 영토에서 나만의 것을 해낸다는 점은 바로크 음악이 가지고 있는 묘미이다. 물론 바로크에도 엄격한 원칙들은 여전하지만 해석은 물론 어떤 지휘자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같은 곡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창조(creation)를 이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곡이라도 아르농쿠르와 민코프스키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벨칸토 창법을 써서 가장 영롱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 노래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가사의 의미를 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내겐 최우선이다.
이미 1992년 다른 동유럽 성악가들과 함께 내한 공연을 펼쳤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가.
오래전이지만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십대 소녀였고, 일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아시아에 갔으니 얼마나 설레고 들떴겠는가. 서울에서 놀랐던 점은 성악 장르에 대한 관객들의 특별한 열정이었다. 이웃나라인 일본이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바이올린 등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 사람들은 ‘인성’에 특별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한국 성악가들의 세계적인 활약이 눈부신 요즘,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유난히 좋아하고 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노래를 잘하는 데 뭔가 숨겨진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언어 탓인지 아니면 신체적인 특성 탓인지 모르겠다. 당시 한국 청중은 특별한 집중력으로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슴 한구석이 아주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열아홉의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아시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악에 대한 관심이 좀더 생기기를 바란다. 성악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성악계에 침체의 그늘이 드리워진 지 오래다. 팝·재즈·록 등 클래식 음악이 아닌 다른 장르와의 경쟁은 물론 클래식 시장 내부에서도 주류가 아니게 된 것 같다. 오페라의 황금시대는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당신은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프리마돈나로 주목받아왔다.
물론 우리는 비주얼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구의 성악가들을 무대에서 볼 수 없다. 위장을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출산 후에도 다들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한다. 남자들 역시 근육질의 날렵한 몸매로 무대를 누빈다. 영상 매체의 발달로 라이브 중계와 실황 DVD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오페라 연출가들이 원하는 성악가들의 외모 기준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 역시 금발이기 때문에 어쩌면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따른 반대 급부도 만만치 않았다. 목소리 전에 이미 얼굴로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식의 이야기들…. 평론가들도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외모에 관한 걸 빼놓지 않았으니까. 실력도 갖추지 못했는데 외모 덕에 주역을 맡으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나의 외모가 마냥 장점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들이 내 노래를 들으며 덤으로 시각적 즐거움까지 느낀다면, 그건 찬사라 생각한다. 외모는 어쨌든 청중을 본능적으로 무대에 집중하게 하는 요소니까. 인위적인 시술을 하면서 세월에 역행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다.
막달레나 코제나, 동시에 ‘레이디 래틀’로도 불린다. 남편의 지휘로 함께 한 음반 혹은 영상물들로 큰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삶을 공유하는 사람과 본업인 음악을 함께 해나간다는 것은 어떤가.
사이먼과 함께 작업을 하는 건 여러 면에서 장점이 더 많다. 우선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니 그게 가장 좋다. 사랑하는 사람, 일상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음악을 한다는 건 꿈같은 행운이다. 효율 면에서도 더 좋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과 작업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도 있지만 사이먼은 절제와 균형을 아는 사람이다. 서로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주저하지 않고 나누면서,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시도들을 할 수 있다. 클래식 레퍼토리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행해졌는가. 그렇다고 클래식 음악을 고루한 답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움의 추구가 나의 음악적 목표이기 때문에 사이먼과의 작업은 흥분과 설렘을 가져온다. 물론 그럴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게 아니지만.
세계적인 성악가이자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건 어떤가. 특히 여성 성악가들이 커리어와 개인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한다.
물론 쉽지 않다. 엄마가 된다는 건 엄청난 희생과 헌신, 노력을 요구한다. 누구든지 인생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다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오페라 프로덕션 대부분을 거절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하는데 두 달 넘게 집과 가족을 떠나 있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꿈꾸던 무대에 거의 다 서봤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리어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간다 해서 모두가 그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연습을 열심히 해도 모든 것이 늪에 빠지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스스로의 연습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이, 아무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고, 스스로가 고장 난 시계처럼 쓸모 없는 존재로 느껴지는 어두운 날들이 있다. 그런 날 만약 혼자라면 나는 무사히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힘들고 어깨가 축 처지다가도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사과처럼 붉은 얼굴, 반짝이는 눈과 나만을 향하는 미소를 보면 그래도 다시 삶을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난다. 장담컨대, 인생에는 엄마가 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아이의 따뜻한 몸을 품에 안을 때, 잠든 얼굴을 바라볼 때에만 느껴지는 감정의 결들이 있다.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깊고 진한 무엇이다. 나는 아이들로 인해 내 목소리에 더 다양한 감정의 결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대중이 나에게 보내는 찬사는 달콤하고 환상적이지만, 한편으론 일시적이다. 다음 공연에서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대중은 쉽게 손가락질하거나 등을 돌릴 것이다. 명성과 인기가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가. 하지만 가족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자 지원군이다. 공연을 망치거나 노래 실력이 예전 같지 않게 되더라도.
음역이 상당히 넓다. 소프라노 레퍼토리도 수월하게 소화해내는데, 메조소프라노로서 소프라노를 부른다는 건 일종의 도전인가?
몇몇 무대에서 사실 조바꿈을 하지 않고 소프라노 레퍼토리를 부르고는 했다. 하지만 곡 전체를 소프라노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은 없다. 단지 일반적인 메조소프라노보다 고음역을 더 수월하게 낼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수의 오페라에서 음역에 따라 역할이 제한되기 쉽다. 메조소프라노는 주역이 될 수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프로덕션으로 진행되는 전막 오페라에서는 불가능한 도전이지만, 콘서트에서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부르는 것은 나에게도 청중에게도 좋은 경험이다.
성악가들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체감하는가. 당신도 이제 마흔이 되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삶을 더 살았고, 경험도 더 많이 쌓여서 더 좋은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테크닉이나 기교뿐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팔레트에 비유한다면 나는 더 다채로운 색깔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예전과 같지 않다. 몸을 사용하는 무용수들만큼은 아니지만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 역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분명하다. 지휘자는 아마 죽기 전까지는 계속할 수 있겠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그만큼 앞으로 부지런히 시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들이 있다. 모국어가 아니라면 결코 쉽지 않은 삼중모음의 체코어 음반을 내거나, 영감을 주는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의 흥미로운 작업이라거나.
무대 위에서 마치 여배우처럼 순식간에 인물에 몰입한다.
오페라와는 달리 콘서트에서는 연출·분장·의상처럼 극의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부르는 아리아의 인물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한 빨리 감정 이입을 통해 그 인물로 화해야 한다. 가사를 전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치 연기를 하는 듯 그 순간을 노래로 살아내게 된다. 노래로 삶을 살아내는 순간은 내 영혼이 목소리를 따라 승천하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것이 거의 느껴질 정도니까. 한국에서 노래할 레퍼토리들은 엄숙한 바로크 음악이라기보다는 거리의 노래, 중세 시대 류트에 맞춰 음유시인들이 불렀을 법한, 우리 삶에 가까이 있었던 노래들이다.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으나 음악으로, 내 노래로 아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성악에 남다른 조예를 갖춘 한국의 청중을 얼른 만나고 싶다.
막달레나 코제나 내한 공연 | 11월 19일 에술의전당 콘서트홀 | 비탈리·딘디아·카치니·산스·몬테베르디 등 ‘사랑의 편지’ 수록곡들. 연주 프리바테 무지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