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함을 위한 축제 단상 (1)
닷새 동안 이어질 축제보다는 개막공연만을 설명하기 위한 듯한 기자회견이 오전에 열렸다. 개막공연을 위한 음악을 만든 이들은 하나같이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매번 강조했다. 박칼린 집행위원장은 아리랑을 세계 각국의 소리꾼들과 함께 하는 것이 꿈이었다 설명했다. 3년 전 개막공연의 부분 연출을 맡았던 박재천이 올해 개막공연의 총연출을 맡았다. 기자들을 향한 그의 말 속에서도 ‘아리랑’이 “우리의 소리”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는 것이 되풀이 강조되었다.
10월 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있었던 개막공연은 화려했다. 배경에는 스크린과 화려한 조명이 설치되었고, 무대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총 13명의 여성 소리꾼이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아래로는 바이올린·첼로·트럼펫·장구·가야금·아쟁·대금·해금 등이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네 명의 보컬과 피아니스트 미연도 함께 자리했다. 총지휘는 이번 축제의 프로그래머이자 총연출을 담당한 박재천이 맡았다.
박채천의 손짓에 따라 음악의 지구본이 돌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온 인디라 나익은 타지마할이 비추는 영상을 배경으로 인도의 전통성악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인도인들의 ‘아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곡이다. 캐나다에서 온 엘렌 위저는 프랑스 뮤지컬 ‘스타마니아’의 주제가를 불렀다. 정가의 명인 강권순은 ‘긴 아리랑’을 불렀다. 사실, 그녀의 전공 분야인 정가풍의 아리랑을 기대했으나 무대 위의 그는 달랐다. 고음으로 치닫는 그의 소리는 마치 일렉트릭기타와도 같았다. 그의 소리가 가진 힘이 셌는지 기분 좋은 기선 제압을 당한 무대 위의 가수들과 관객은 박수를 보냈다. 이어진 강효주의 ‘구 아리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리랑’ 가락. ‘아리아리랑 소리소리랑’이라 이름 붙은 개막공연에 주인공 격으로 등장한 ‘아리랑’은 의외로 초라해보였다. 일본의 사가 유키는 벚꽃이 날리는 영상을 배경으로 자신의 자작곡을 불렀다. 재즈 가수 웅산은 4분의 5박자로 된 ‘테이크 파이브’의 엇갈린 리듬과 싱커페이션 사이에 “아리랑”이라는 노랫말을 껴 넣었다. 네 명의 코러스가 “아리랑”을 가사의 휴지부에 넣었다. ‘테이크 파이브’가 아리랑과 닿아 있다는 음악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듯했다. 가수 알리는 ‘여인’을 불렀다. 총연출을 맡은 박재천이 작곡한 곡으로 드라마 주제가였다. 미국에서 온 앙투아네트 몬테규는 ‘오! 해피데이’를 불렀다. 웅산의 ‘테이크 파이브’와 마찬가지로 그녀와 코러스에 의해 “아리랑”이라는 소리가 외삽(外揷)되었다. 방수미는 ‘상주 아리랑’을 불렀고, 마지막에 이르자 13명의 가수들은 전주·군산시립합창단과 함께 ‘We Are The Arirang’을 제창했다. 이 진풍경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한없이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반대로 부정적으로 본다면 이 역시 한없이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아리랑을 ‘오늘의 음악’으로, 그리고 전 세계의 소리꾼들과 호흡하고자 하는 욕심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보존과 전파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짙어졌고, 행동과 실천의 가속도는 빨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오늘의 음악’은 이제 제도와 정책, 자본의 합작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공연이었다. 외국의 소리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것, ‘아리랑’ 하나로 입을 모으게 하는 것은 음악이 가진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전통음악계에 ‘제트 플라잉’ 음악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말 그대로 비행기 타고 이 나라, 저 나라 날아다닌다. 대부분 이들이 그린 궤적은 사실 그들의 음악적 힘이 일군 궤적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 차원의 국제교류에 대한 투자가 있고, 운 좋게 그것과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여러 제도들은 말한다. 음악의, 우리 문화의 힘이라고.
‘오늘의 음악’은 제도 및 정책에 기대어 있고, 그러한 의존 구도를 가리는 것 또한 제도 및 정책이다. 물론 명품 같은 문학작품은 번역되어야 그 우수성이 알려진다. 하지만 많이 번역되기에, 그것을 수입한 나라마다의 정확한 독자의 파악 없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의…’라는 슬로건은 위험하다. ‘오늘의 음악’을 좀더 자연으로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제도와 정책과 자본의 조율이 조금은 느슨한… 음악이 제도의 촉수보다는 인간의 가슴을 두드리는 일이 많아졌으면 한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