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김보라는 제6회 천차만별콘서트에서 참가자들과 관객으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이다. 경기민요를 전공했고, 강권순으로부터 정가를 사사한 경기민요 이수자. 남들이 전통소리의 ‘외적인 것’에 눈독을 들일 때, 그는 ‘내적인 것’에 집중한다. 그는 이렇듯 전통소리의 지층을 탐색하는 척후병 같은 존재다. 10월 10~11일, 북촌창우극장.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나승열
소리꾼 김보라가 참으로 훌륭해보인다. 전통소리가 쌓아온 역사의 지층을 수직으로 파고들어가며 탐침을 부지런히 들이댄다. 정가와 경기민요를 합쳐 묘한 레이어를 소유하고, 그 양날의 칼을 지닌 젊은이로서의 당연한 ‘끼’도 부릴 줄 안다. 즉 ‘전통’을 중심으로 ‘전통 아닌 것’을 솎아내는 야금술과, ‘전통’의 이름으로 ‘전통 아닌 것’을 긁어모아 ’전통‘이 될 때까지 밀고나가는 연금술을 행하는 소리꾼인 것이다.
이날의 공연으로 가본다. 첫 곡, 가곡 ‘우조우락 바람은’은 무반주로 진행되었다. 숨결조차 선명하게 들리는 소극장에 본인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내밀 줄 아는 정직함과 자신감이 돋보였다. 힘차고 격한 창법을 앞세운 민요의 복식호흡으로 단련되었는지 가느다란 모음의 굴곡선에서 꿈틀대는 소리의 육질은 두텁고 안정되어 있었다. 객석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리코더(최세나)를 부니, 두 번째 곡 ‘섬’이 시작되었다. 시인 정현종의 유명한 시 ‘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이날의 여섯 번째 순서에서도 ‘섬’은 반주 악기만을 바꾼 채 기타(이일우)와 함께 연주되었다. 세 번째 곡인 ‘너머’는 개인적으로 가장 호감이 가는 순서였다. 곡은 메나리의 ‘정선 아리랑’에서 경토리의 ‘태평가’로 넘어가는 민요를 중심으로, 정가의 창법을 드레싱한 곡이었다. 곡의 초반에 김보라의 음악적 근간이 되는 민요가 시원하게 청공을 울렸다. 이때 거문고 반주를 맡은 전우석은 정악의 중심 괘인 4괘를 중심으로 한 가곡 반주로 묘한 길항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문고의 술대질을 타고 슬그머니 ‘태평가’로 넘어가자 전우석은 민속악을 연주할 때 쓰는 5괘로 옮겨 김보라의 소리와 조우하며 흥을 돋웠다. 후반에 가서 김보라는 악기의 구음을 입으로 흉내 낸 듯한 소리로 전우석과 한판 신 나게 논다(전우석은 불세출의 멤버이다. 내년 천차만별콘서트에서 전우석의 독무대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민요부터 정가까지, 혹은 민요 위에 정가까지. 만약 이 곡의 제목을 청탁받았다면 ‘김보라 음악사 방랑기’라고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보라의 ‘방랑’은 ‘노스(North)’와 ‘고스트’로 이어졌다. ‘노스’는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진다. 전반에서는 몽골 민속음악에 사용되는 후미 창법이 사용된 듯했지만, 사실은 몽고의 초원을 이미지로 상상해볼 수 있게끔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를 모아 후미 창법처럼 낸 소리였다. 후반에는 동해안별신굿의 장단(장구 조종훈)을 타고 구음이 흘렀는데, 전반과 후반이 보다 명확히 나눠지기보다는 음악적 연관성을 느끼게끔 좀더 진하게 포개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고스트’는 제주 민요 ‘너영나영’ ‘은실타령’ 등을 녹음하여 어느 한 음을 잡아당기고 억지스러운 음향 효과를 가미하여 관객에게 웃음을 제공한 인터미션 대체곡이었다. 사실 이 곡부터는 김보라의 매력이 전반부처럼 물씬 묻어나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 기타와 함께 한 ‘섬’에 이어 일곱 번째 곡인 ‘해가 진 직후 서쪽하늘’에서도 그녀의 목소리가 갖춘 세련미를 엿볼 수 있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노래를 엮는 문학성이 돋보였으나, 이 날 무대의 힘은 전반부에 실린 듯했다.
이번 무대는 천차만별콘서트의 일환이었다. 여기에 ‘2013전통예술실험무대’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실험이라는 것이 타 장르와의 무비판적인 교접보다는 자신의 소리가 갖고 있는 수직적 깊이로 들어갔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김보라는 천차만별콘서트에서 좋은 예를 보여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