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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예의 코렐리는 비온디처럼 경박하지 않고 반키니처럼
느린 템포로 부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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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창단 이래 앙상블 리 인코니티는 콘서트홀 혹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선택할 때 유명 작곡가의 상징적인 작품들(바흐 협주곡이나 비발디 ‘사계’)과 덜 알려진 작곡가의 명작들(마테이스·로젠뮐러)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18세기 음악사가인 로저 노스가 ‘모든 음악인들의 삶의 양식’이라고 이미 표현한 작곡가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바로 아르칸젤로 코렐리다. 바로크 전문 음악가들이 완벽한 영양 섭취를 위한 이 필수 요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리 인코니티의 지휘자인 아망딘 베예는 신보인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 Op.6(Zig-Zag)의 해설지 서문을 위와 같이 시작했다.
베예의 평가와 ‘사명감’대로 코렐리의 12개의 합주 협주곡 Op.6은 부정할 수 없는 명작이다. 하지만 ‘삶의 양식’이라고 하기엔 의아스럽게도 녹음이 턱없이 적다. 2000년 이후 발매된 음반은 국내 배급 기준으로 신보를 포함해 3~4종에 불과하다. 시대악기 연주만 따지면 다시 반으로 준다. 바흐 ‘브란덴부르크’나 비발디 ‘사계’와 같은 초히트작과 비교하지 않아도 기대 밖의 적은 수치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중성을 띠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같은 이탈리아 바로크 레퍼토리 중 비발디식의 강렬한 멜로디와 화성이 더 선호된다는 수용자 측면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도 작품의 진면목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12개 세트엔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 양식이 혼재돼 통일성을 유지하기 까다롭고, 멜로디-화성-박자에 파격이 적어 웬만큼 돋보이는 음형을 꾸미기가 어렵다.
녹음 시도가 적은 만큼 일단 시장에 나온 음반은 저마다 개성을 지닌 호연이다. 그중에서도 피녹(Archiv)이 여전히 레퍼런스 레코딩으로 유효한 가운데 지난해 나온 파블로 베즈노슈크와 아비슨 앙상블(Linn)의 연주가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걸작으로 꼽을 수 있다. 베예의 신보를 듣기 전 1992년에 나온 키아라 반키니와 앙상블 415의 연주(HMF)를 떠올렸다. 반키니는 베예의 스승이고 앙상블 415는 베예가 몸담던 친정이다. 반키니의 연주는 지금 들어도 파격적이다. 교회 소나타 양식의 8편에서 다른 시대악기 연주의 두 배에 육박하는 연주자를 기용한 동시에 콘티누오 반주 악기의 수를 늘려 웅장한 멋을 더했다. 느린 악장에선 감상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져 바로크와 고전의 경계를 줄타기했다.
베예의 해석은 그와 유사성이 전혀 없다. 1992년엔 베예가 파리 음악원 학생이었고 반키니를 만나기 한참 전이었으니 영향이 전혀 없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베예가 반키니와 같은 점이 있다면 리더가 고정 독주자로 나서고 나머지 한 대의 독주 바이올린(1곡은 첼로)을 멤버 4명에게 돌아가면서 맡긴 것이다. 나머지는 피녹과 베즈노슈크의 ‘전통적인’ 정공법 연주와 궤를 같이한다. 베예의 해석은 ‘더 이상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족함과 과장을 느낄 수 없다. 비온디처럼 경박하지 않고 반키니처럼 느린 템포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8번 ‘크리스마스’ 2악장의 질주감이나 마지막 고즈넉한 목가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서 전 악장에 걸쳐 에너지 넘치면서 악상이 극명하게 부각된다. 여기선 피녹과 베즈노슈크 역시 뒤지지 않지만, 리 인코니티의 합주엔 앞의 두 음반에는 부족한 볼륨감과 세련미, 탄력 있는 박자감이 넘친다. 베예는 여기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했다. 2번 1악장에서 유명한 도입구로부터 독주, 합주로 서서히 악상을 넓혀가는 과정은 더 이상 완벽한 조형이 나오기 힘들 정도로 발군이다. 격렬하면서 중심을 잃지 않는 4번 마지막 악장과 11번의 알망드 등 실내 소나타 양식의 특징을 이처럼 설득력 있게 전달한 연주도 드물다. 독주 악기의 활약 역시 차별점을 갖는 지점이다. 멜로디를 선명하게 양각으로 아로새긴 베예의 독주는 물론 4번과 7번 1악장의 바이올린 두 대의 아라베스크 음형은 화려하기 그지없으면서 합주와의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녹음 장소인 프랑스 아스날 드 메츠의 음장감을 완벽하게 담은 녹음 역시 청각적인 쾌감을 주는 데 큰 몫을 했다.
피녹의 고전은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교과서적이다. 베즈노슈크의 작년 앨범은 피녹 풍의 명확한 조형미는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적인 활력을 더해 감동을 줬다. 베예와 베즈노슈크를 가르는 차이는 아주 크지 않다. 다만 신보에서 순간순간 드러나는 해석의 과단성, 즉 단호하고 명쾌한 패시지나 뜻하지 않은 페이소스 등이 작품의 풍미를 더한다. 12곡 외에 사후 출판된 신포니아와 4성 소나타를 더해 코렐리 합주 협주곡 전집을 표방한 구성도 가산점이다. 2009년에 발매한 마테이스의 합주 협주곡집(Zig-Zag)과 함께 베예와 리 인코니티의 최고 걸작으로 꼽고 싶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