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공연기획 자문을 맡은 마이클 파인은 지금까지 나온 여섯 개 앨범을 총괄하며 직접 에디팅을 마쳤다. 1월 8일,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슈’ 녹음을 하루 앞두고 그를 만났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음반 녹음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음악을 배우는 것이다. 지휘자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최종 결과물에 대한 나만의 그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녹음에 돌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슨 결과물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2005년부터 서울시향과 함께 해왔기 때문에 단원들을 잘 아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리코딩 세션에 들어갈 땐 늘 긴장된다. 지휘자와 내 머릿속에 각기 들어 있는 음악적 이상을 실체가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시향의 공연기획 자문 역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는가?
내가 도이치 그라모폰의 A&R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 정명훈이 DG의 아티스트였다. 우리는 깊은 친분을 수년간 유지해왔다. 어느 날 정 선생이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라고 물어온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수준의 도움이었다. 이들에게 어울리는 객원지휘자와 협연자를 데려오기 위해 경영진을 설득하고,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시향이 발전하면서 점차 역할이 확장됐다. “투어는 언제할 건데?” “녹음은 언제 시작할 건데?” 하며 내게 물어오면서 일이 많아졌다. 성장 가도에 있는 오케스트라와 일하는 건 엄청난 행복이다.
여러 차례 녹음된 연주를 편집한 음반이 과연 ‘실황’을 담았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당신은 사진 찍을 때 한 장만 찍는가? 아니지 않나. 30장, 100장씩 찍고 잘 나온 걸 골라서 포토샵 처리까지 한다. 음반은 실황과 엄연히 다르다. 흘러가버리는 공연과 달리 음반에 실수가 있으면 수십 번, 수백 번 괴로워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공연과 똑같은 환경에서 리허설을 수차례 진행한 후 믹싱과 편집을 하는 것이다. ‘진짜’ 실황 녹음을 듣고 싶다면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어야 한다. 하물며 라디오 방송도 때때로 편집한다. 실황 연주를 보고 싶으면 콘서트홀로 가면 된다.
하나의 음반을 위해 몇 번 정도 녹음하나?
런던에서는 모든 일이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 평균적으로 3시간 녹음 세션을 위해 20분 정도 준비한다.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모르는 채 리허설도 없이 의자에 앉자마자 녹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에 비해 서울시향은 호화로운 리허설 환경을 자랑한다. 공연 전날 세 번, 당일 두 번의 리허설에 실황 공연까지 총 여섯 회 연주를 녹음한다.
녹음 후 작업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나?
팝 음악계에서는 세팅하고 다듬는 데 몇 달 가량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믹싱 하는 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다. 잠시 멈추고 생각한 다음에 다시 들어보고는 ‘내일 생각해야겠다’ 하고 제쳐둘 여유가 없다. 이건 오로지 예산 문제다. 요즘 모든 교향악단들이 ‘러시 릴리스’를 주문한다. 우리는 지금 일곱 번째 ‘러시 릴리스’를 제작 중인데, 오늘 녹음하면 내일, 아니면 다음 날이라도 달라 이런 식이다.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내가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작업할 때 우리는 몇 시간이고 녹음하다 점심도 먹고 오고, 산책도 하고, 녹음한 걸 두고 대화도 했다. 지금은 시계에 매여 있다. 우리는 말러 교향곡 2번을 예술의전당에서 녹음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다. 한 주의 시간만 더 주어졌더라도 우리는 원하는 바를 정확히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녹음 후 편집 작업은 집에서 이루어진다. 20시간, 22시간 동안 자지도 쉬지도 못 하고 밤새도록 작업해야 한다. 카라바트키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 충분히 의견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결과물이 훨씬 좋아진다. 몇 달만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우리의 결과물은 훌륭하다. 특히 차이콥스키 ‘비창’과 말러 1번 음반이 우수하다.
가공 과정에 대한 정명훈의 입장은 어떠한가?
솔직히 말하자면, 리코딩 세션에선 내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솔로 오보에의 선율이 정말 좋았다 하더라도 현의 음정이 나갔다면 나는 즉각 “다시 연주해달라”고 지시한다. 정명훈은 음악계에서 가장 일하기 편한 지휘자다. 실황 연주에선 오로지 지휘자에게 권한이 일임되지만, 음반을 만들 땐 작곡가의 의도가 더 위에 놓인다. 리코딩 세션에선 나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듀서들이 지휘자에게 어떤 부분이 잘 되고 있고, 어떤 부분이 좋지 않은지 말해준다. 그들은 마이크로폰이 듣는 걸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가장 좋지 않은 자리는 포디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휘자가 아무리 좋다고 생각해도 “죄송하지만 마이크로폰에는 좋게 안 들리는데요. 다시 갑시다”라고 말해야 한다. 정 선생은 녹음 경험이 많아 이러한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지휘자다. 정 선생은 음반을 듣지 않기 때문에 사실 스튜디오 녹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오케스트라의 성장이다.
편집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편집 과정에선 좋지 않은 부분을 숨기고, 밸런스를 새로 조정하고, 음색을 윤기 나게 하는 등 모든 게 가능하다. 연주가 끝나면 리허설을 포함해 총 6~7개의 테이크를 가지고 무엇이 좋은지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오보에는 잘 했는데 현이 좋지 않은 녹음, 현은 잘 맞았으나 오보에 솔로가 좋지 않은 녹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많은 프로듀서들이 “나는 여기부터 81마디까지 사용하겠다”라고 말하며 엔지니어에게 편집하라고 넘긴다. 나는 그렇게 작업하지 않는다. 전체를 다 들으며 다른 부분을 찾아내려고 한다. 나는 스코어에 표시도 하지 않는다.
오보에 따로, 현 파트 따로 떼내어 합칠 순 없나?
팝 음악에서는 그렇게 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모든 파트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클라리넷 주자는 맥락 없이 자기 파트의 선율만 부르는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에 반응하며 연주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전체도 보고, 부분별로도 봐야 하는 게 클래식 음악 녹음의 어려움이다.
현장성과 완전무결함 사이의 고민은 없는가.
어려운 문제다. 수많은 레코드 마니아들이 내게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해오는데, 그들은 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레코드 마니아가 전혀 아니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다. 음반을 두고 여러 평들이 쏟아지는데 실제의 질과 전혀 다른 평들도 정말 많다. 예를 들면 여건이 안 되어 하프를 한 대만 사용했는데, 하프 두 대의 조화가 맞지 않는다는 식의 비판이다. 심지어는 트럼펫 연주에 대한 비판을 녹음팀에 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25번이나 다시 해봤는데도 그가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단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라이브의 생생함을 원하고,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데, 막상 깨끗하지 않고 실수투성이인 날것 그대로를 내놓으면 요즘 사람들은 미쳐버릴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실황 녹음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산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실황 음반은 스튜디오 대여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이 사적으로는 당신에게 스튜디오 리코딩이 훨씬 좋다고 말할 것이다. 녹음 과정이 잔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콘서트홀을 ‘신병교육대(boot camp)’라고 부른다. 이번에 우리는 여덟 번째 녹음 만에 처음으로 스튜디오 리코딩을 한다. 우리 스튜디오, 우리 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