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1991

서구문화의 유입,국악계에 요구된 더욱 강력한 신념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1991
서구문화의 유입,국악계에 요구된 더욱 강력한 신념

88올림픽 이후 서구문화는 위태로울 만큼 빠르게 유입됐다. 그 회오리 속에서 국악계의 대중스타인 안숙선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그때 안숙선은 20대의 방황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1991년 2월호에서
남원의 아기 명창으로 소문났던 안숙선에게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이 그의 운명을 크게 뒤바꾸어놓을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10년 전 청운의 뜻을 간직하고 상경한 이후부터 어렴풋하게나마 국악을 살아가는 방편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결론이 서지 않는 공부만 계속되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20대는 참으로 마음고생이 컸습니다. 소리를 계속할 것인지, 이대로 가정에 묻힐 것인지… 당시만 해도 판소리 무대가 열려 있지 않았고, 예술로서 민속음악에 대한 인식이 미처 형성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확고한 신념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슬픔과 기쁨,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이 소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20대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1년 커버 스토리에서 자신의 20대를 두고 “참으로 마음고생이 컸다”라고 했습니다.
음악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운명적으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릴 때 바라봤던 음악에 대한 편견이 내 20대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어요. 어느 순간엔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이 있을 때 감정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지요. 그런데 20대의 나는 발을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으니, 신념 없는 소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소리, 넓게는 국악을 공부하는 오늘의 2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먼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내 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마음고생을 하며 방황했을 적에, 그래도 선생님들이 나를 우리 음악의 재목으로 키워야겠다 생각하시고 여러 가지로 보살펴주셨습니다. 음악을 제대로 전수시키려 하셨어요. 그 덕에 지금의 안숙선이 있습니다. 요즘은 세상에 너무 많은 문화가 혼재되어 있어 청년들이 우리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을 지켜내기가 더 힘들 겁니다. 과거에 비해 애호가층을 많이 빼앗기기도 했고, 진득이 오래 해야 이뤄지는 게 우리 음악인데 요즘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하지요. 사실 나의 20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지만,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았던 건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택하고,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수하는 식으로 국악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여러 장르 혹은 대중문화와의 선을 넘나들어보는 것… 다 괜찮습니다. 다만 ‘전통’을 공부할 수 있는 최대치만큼 파고들어야 한다고 조언하겠습니다.

30년 전의 안숙선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지난 세월을 다 잊고 살고, 앞으로 올 것도 예견하지 않으며 삽니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했나만 되돌아보며 살고 있어요. 목표는 있지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세상이니까요. 30년 전의 나는 창극단에 들어가서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우리 음악에 매달리기 시작한 해입니다.

지난 30년 음악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기뻤던 것은 처음으로 완창을 올렸을 때. 여성의 소리로, 게다가 아직은 어린데 힘센 남자들이나 하는 ‘적벽가’를 완창했다며 “판소리 할 수 있는 싹이 보인다”라고 여러 선생님들이 힘을 보내주셨을 때입니다. 고수 김동준 선생님께서 첫 발표회를 보시고는 “판소리가 죽지 않으려고 안숙선 같은 사람이 나왔나 보다”라고 하셨는데, 평생의 큰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반면 그렇게 안숙선이라는 사람이 알려져 그 위치에서 후퇴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앞으로 끌고 가야만 했던 순간순간은 힘들었습니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여성 지휘자 박순덕이 이끄는 민간 교향악단 월드심포니오케스트라가 1991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베토벤 교향곡 1번이 연주됐다.

예술의전당이 개관 3년 만인 5월, 관람객수 1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남사당놀이·청소년 음악회를 무료로 개최했다.


▲ 공연장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방송공사가 세운 KBS 홀이 9월 개관했다. 1,600석 규모로 다목적 공연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으며, 금난새/KBS교향악단과 백건우 협연으로 개관 기념 공연을 가졌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