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1992

새 지휘자 맞이한 KBS향과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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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1992
새 지휘자 맞이한 KBS향과 서울시향

1992년 12월, ‘객석’은 공연예술계를 총결산하며 한 해의 가장 큰 사건으로 수도권 네 개의 교향악단이 새 지휘자를 맞이한 사실을 꼽았다. KBS교향악단의 오트마 마가, 서울시향의 박은성, 수원시향의 금난새, 그리고 인천시향의 김중석이 그 주인공들이다

1992년 4월호, 서울시향 박은성 인터뷰
지휘계가 정말 발전하려면, 그리고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이 땅에서 나오려면 행정적인 뒷받침과 시민의 문화 인식도 있어야 한다고 박은성은 믿고 있다. 대학에 지휘과가 하나도 개설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휘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도 지휘자를 키워줘야 한다. 초년병 지휘자가 어떻게 수십 년 된 단원들만큼이야 하겠는가. 그러니 장래성 있는 젊은 지휘자들한테는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뒷받침을 해줘야 국내에서도 좋은 지휘자가 나올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오케스트라도 질적·양적으로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1992년 10월호, KBS교향악단 오트마 마가 인터뷰
독일인 지휘자 오트마 마가는 올해부터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KBS교향악단을 이끌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런 건강상의 문제(심장의 혈관이 막혀 거동이 힘들었으나 자연적으로 치유되었다)로 지난 8월 31일에야 비로소 상임지휘자로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는 벌써 KBS교향악단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포르테 부분에서는 좋은 편이지만, 피아노 부분에서는 융화가 다소 안 되는 편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 중점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향악단의 고질병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관악 파트의 열세에 대해 “세계 어느 교향악단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좋은 지휘자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도 고질병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며 관악 파트의 희망찬 미래를 낙관했다.
그의 계약 기간은 만 2년. 한국 체류 기간은 6주가 기본 단위로 잡혀 있는데, 올해는 세 번, 내년에는 네 번, 그리고 1994년에는 한 번 한국을 방문해 총 48주 동안 KBS교향악단을 지도하게 된다.

1992년 서울시향은 박은성을, KBS교향악단은 오트마 마가를 상임지휘자로 세웠다. 취임을 기념해 ‘객석’은 당시 양대 산맥을 이루는 두 오케스트라의 청사진을 그려보기 위해 두 명의 지휘자를 인터뷰했다. 그들의 원대한 계획은 얼마나 실현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기여는 두 오케스트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향후 20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지금, 그들의 포부는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지휘자 박은성은 이듬해 사의를 표명했고, 오트마 마가는 1996년을 임기로 한국을 떠났다. 이후 서울시향은 1994년 원경수 상임지휘자, 2003년 곽승 음악감독을 거쳐 2005년 정명훈과 함께 재단법인으로 새 출발했다. KBS교향악단은 1998년 정명훈을 상임지휘자로 올렸으나 3개월 만에 사임하는 사태를 맞이하고, 1999년 드미트리 키타옌코를 제6대 상임지휘자로 세웠다. KBS교향악단은 2004년 키타옌코의 사임 이후 상임지휘자를 따로 두지 않다가 2010년 함신익을 상임지휘자로 맞이했으나 단원들과의 불화로 논란을 낳은 이후 결국 2012년 사퇴에 이르렀고, 올해 새 상임지휘자 요엘 레비가 취임 후 첫해를 보낸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국내 9개 단체장들이 모여 1992년을 ‘춤의 해’로 정했다. 2월 29일 무용가 국수호가 연출한 개막식이 열렸고, 이후 기업 후원과 무용계 내부 단결을 위한 다양한 공연·세미나·축제를 가졌다.


▲ 4월,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지휘자 정명훈은 “음악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로 그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 작곡가이자 전위예술가·화가·예술철학자였던 존 케이지가 8월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무용가 홍신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12년 헌정 공연 ‘네 개의 벽’을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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