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1995

상처 입은 용, 윤이상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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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1995
상처 입은 용, 윤이상 타계

1995년 11월 3일, 작곡가 윤이상은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 하고 타지에서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창간호 첫 특집에서부터 윤이상을 집중 취재한 ‘객석’은 부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1984년 3월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객석’은 올곧은 목소리로 우리시대 작곡가를 지켜왔다. 창간호에서 그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정리하며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통신원을 통해 그의 베를린 활동을 꾸준히 국내에 알렸다. 1992년 윤이상이 75세 생일을 맞이했을 때도, 1994년 윤이상국제음악제 개최를 앞두고 꿈에 그리던 내한을 기대할 때도 ‘객석’은 베를린과 파리로 통신원을 보내 그를 직접 만났다. 1994년 ‘객석’의 창간 10주년엔 직접 쓴 축하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38년 만의 귀국은 결국 무산됐고, 이듬해 윤이상은 세상을 떠났다. 1990년 바흐로 시작한 30쪽 분량의 작곡가 집중탐구 시리즈는 1993년 12월 마지막 회의 주인공으로 윤이상을 선정했다. 그리고 베를린에 거주 중인 윤이상을 직접 만나 그의 생각을 들었다.

1993년 12월호, 베를린 현지 인터뷰
우리나라의 정치적 변화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리라 생각됩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
국민 화합을 위한 정책이 차차 실현되어서 통일로 이어지는 온 민족의 화해·화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오늘날까지 분단 되어 살아가지만, 이러한 대립은 해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도 통일 문제가 세계정치 범주에서 일방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는데, 하루 빨리 우리 민족 단체의 독자적인 입장에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 동안 군사정부로부터 박해당한 계기였던 오길남 사건에 대해 명예회복을 요구한다면 어떤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원하십니까?
그 사건들은 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민족을 너무나 사랑한 일, 애국의 정열에 차서 예술 행위를 해온 일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다른 많은 작품들은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가집니다. 음악과 정치의 관계, 넓게는 순수음악과 음악 외적 요소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예술가는 모름지기 전 인간성과 자기의 양심, 그리고 모든 미학을 동원해서 폭 넓은 세계를 표출하는 것이 보통이고, 나 역시 한 부분에만 치중한 협소한 창작 생활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순수 미학적인 곡, 낭만적인 곡, 시대를 느끼고 투쟁하는 혁신적 작품을 모두 썼습니다. 나는 예술과 사회는 분리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예속된 예술을 나는 대단히 배격합니다. 그러나 순수한 예술가의 양심에서 솟아오르는 정열이 표출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유럽으로 오기 이전에 작곡한 곡들을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유럽에 와서 자연이 가지고 있는 폭 넓은 음양의 세계를 생각하고 나서부터야 남겨질 만한 작품을 썼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상당히 기술적인 작곡을 한 이후 오늘날까지, 점차적으로 인간성과 우주의 관계와 도교 철학에 따라 작품을 써왔습니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 내 음악성을 표현했기 때문에 나의 음악은 중간을 잘라내도 되고 가다가 멈출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예술작품은 우선 기술이 완전무결하게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서양음악의 지배적인 사고에 비추어볼 때, 저의 음악관은 새로운 방식이지요.

선생님 삶에서 음악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평생을 음악으로 일관해 살아왔기 때문에 음악 없는 삶이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음악을 생활의 수단이나 명예·권력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음악과 더불어 진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했고, 이제까지 그것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 있을 때에도, 병에 시달릴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음악은 내 생명의 원천이요, 삶의 전부라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 1995년 1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해 상임지휘자 박범훈의 지휘로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지정자인 국창 만정 김소희 선생이 4월 간암으로 타계했다.


▲ 8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잠실 주경기장에서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이 열렸다. 정경화·정명화·강동석·조수미·사라 장 등 스타 연주자들이 정명훈의 지휘로 호흡을 맞췄다. 국가적인 행사에 국악이 빠진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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