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1998

그녀는 CD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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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1998
그녀는 CD 스타!

1990년 열 살 나이에 한국 무대에 데뷔한 사라 장. 까치발을 세우고 지휘자와 눈을 맞추던 꼬마가
‘음반 스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1998년 1월호 커버 스토리에서 발췌
한국인 연주가로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과 녹음한 멘델스존·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이 발매를 앞두고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사라 장은 버르토크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1999년에는 자발리슈의 피아노 반주와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소나타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하며, 2000년에는 브루크너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한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는 2001년에는 빈 필과 모차르트 협주곡 녹음에 들어간다.
“기대가 되는 것은 2001년의 모차르트 녹음입니다. 모차르트는 제가 가장 흠모하는 작곡가로, 스무 살이 되는 해에 모차르트를 가장 모차르트답게 연주하는 빈 필과 녹음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돼요. 2000년에 녹음하는 브루크너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를린 필과 논의가 되고 있는데 아직 확정된 상태는 아닙니다. 어느 한 시대 음악을 잘 연주하는 연주자보다는 멀티 캐릭터를 지향하는 편이에요. 몇 년 전부터 버르토크와 프로코피예프 등을 레퍼토리에 포함시킨 것도 레퍼토리의 다양화를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동안 저를 위해 작곡된 현대곡들도 꽤 있는데 앞으로는 독주회 프로그램에 그런 곡들도 포함시킬 예정입니다.”

사라 장의 첫 예술의전당 데뷔는 1990년 1월 30일로 기록된다. 그녀의 국내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이날 공연은 마침 신년음악회였다. 일반적인 열 살 소녀라면 무서우리만큼 거대한 무대였지만 사라 장은 그저 즐거워보였다. 무대 위의 꼬마 숙녀는 진지하게 눈을 내리깔고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연주했다. 이미 보름 전, 뉴욕 필의 신년음악회에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공연하고 지휘자 주빈 메타의 손에 이끌려 여섯 차례의 커튼 콜에 응했던 소녀에게 거대한 무대는 그저 거대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까치발 꼬마숙녀는 성숙한 18세 숙녀가 됐다. ‘객석’의 커버 스토리를 통해 사라 장은 세계적인 지휘자들과의 짱짱한 녹음 계획을 공개했다.
그로부터 또 8년이 지나 다시 표지에 등장했을 때도, 사라 장은 당시 최고상한가에 오른 지휘자·오케스트라와의 음반 발매를 앞둔 상태였다.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에 맞춰 발매된 신보는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과의 실황을 담았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 병창 기능 보유자로 서편소리 전통을 이어온 판소리 명인 장월중선이 4월 타계했다.


▲ 부지휘자 초빙 문제로 KBS와 갈등을 빚어온 정명훈이 KBS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임명 4개월 만인 5월에 사임했다.

7월 프랑스 아비뇽 축제 ‘한국의 밤’ 행사에서 국립국악원의 ‘수제천’, 안숙선의 판소리 ‘춘향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무대가 이어져 우리 전통 춤과 소리를 세계에 알렸다.

11월에 평양에서 열린 윤이상통일음악회에서는 남북한 음악인이 함께 모여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함께 연주함으로써 음악을 통한 남북 화합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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