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2007

처절한 탄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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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2007
처절한 탄생의 기록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초연한 2007년, 진은숙은 ‘객석’의 얼굴을 장식했다. 그로부터 22년 전, 24세의 진은숙은 직접 쓴 가우데아무스 콩쿠르 우승 후기를 편집부로 보내왔다

1984년 4월, 국제음악협회 주최의 세계음악제에서 입선한 여대생 진은숙은 ‘객석’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이듬해 자신의 경력에 큰 방점을 찍은 가우데아무스 콩쿠르에서 우승하자 그녀는 고군분투의 콩쿠르 참가기를 편집부에 보내왔다. 이후 ‘객석’은 도쿄 작곡 콩쿠르 우승, 파리에서의 작품 발표회 등 그녀의 크고 작은 소식에 늘 관심을 갖고 국내에 소식을 전했다.
2007년 6월, 뮌헨에서 초연된 진은숙의 첫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발 빠르게 ‘객석’ 독자들을 만났고, 세 달 후 진은숙은 처음으로 ‘객석’의 표지에 등장했다.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통영국제음악제 상주작곡가로서의 국내 활동을 꾸준히 조명한 것은 물론이다. 올해 루체른 페스티벌의 상주작곡가로 위촉된 데 이어 2019년 코번트 가든에서 ‘거울 뒤의 앨리스’를 초연할 예정인 진은숙. 젊은 패기가 느껴지는 그녀의 1985년 기고문을 꺼내 읽어본다.

1985년 12월호, ‘암스테르담에서의 회고’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상을 한번 타본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상하리라 상상도 안 했었고, 이 작품을 쓸 때 유달리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기쁨이 더하다. 사실 난 8명의 입상자 중 나이도 제일 어리고 경험도 적기 때문에 내 작품이 가장 형편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민했고, 내 곡이 연주되는 동안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러나 연주회 후 많은 작곡가들과 평론가들이 내게 와 작품이 좋다고 했을 때, 또 그 다음 날 신문에서 “조개 속의 진주와 같은 작품” “끝없이 놀라움을 주는 작품”과 같은 호평을 읽었을 때, 그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고통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사실 모든 작곡가들이 이런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뼈와 살을 깎는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세 대의 첼로를 위한 ‘분광(Spektra)’은 올해 1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기 한 달 전 서울에서 쓴 것이다. 사실 난 이 작품을 벌써 지난해 12월에 시작했어야 했는데 평소의 습관대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1월 10일에야 쓰기 시작했다. 가우데아무스 콩쿠르의 제출 마감은 매년 1월 31일로, 난 2주일 내에 작품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무모한 처지에 빠져 있었다.
1·2악장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1악장은 프리즘에서 착상을 얻었는데, 빛이 프리즘을 통해 변형되는 과정을 소리로 표현해보았다. 2악장은 빠른 악장인데 세 대의 첼로가 각기 다른 요소, 즉 빠른 패시지·점적인 요소·멜로디 라인을 동시에 연주한다. 3악장은 전체가 피치카토로만 되어 있고, 4악장은 앞의 세 악장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던 선율만을 다루고 있다. 이 4악장은 하나의 악장으로서의 성격은 뚜렷하지 않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5악장의 프렐류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3악장 중간쯤 쓰다가 난 이 작품을 포기해야만 했다. 거의 12일 동안 한잠도 못 자 죽도록 피곤하기도 했지만, 더욱 괴로운 것은 작품에 대한 확신 없이 망설이며 써나가는 것이었다. 방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결심했다. 이 작품을 포기하리라고. 앞으로 절대로 곡 같은 건 안 쓰리라고. 실컷 자고 실컷 먹고 내일은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내 인생을 즐기리라고. 12시간쯤 단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책상 위에는 미완성된 작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운명이야.’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써나가기 시작했다.
곡이 완성된 날은 1월 26일. 우편으로 부치는 것은 이미 늦었다. 그래서 마침 26일 오후 6시에 독일로 떠나는 강석희 선생님께 부탁드리기로 했다. 26일 오후 4시에 곡을 끝마치고는 세수도 안 한 채 동네 복사집으로 달려갔다. 아! 하나밖에 없는 복사집의 복사기가 고장 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절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때 일을 생각해보면 작품 쓰는 과정이나 악보가 네덜란드까지 간 모든 것이 서커스의 줄타기 같이 아슬아슬하게 생각된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접수된 407개의 작품 중 입선작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또 10월 13일 1등 수상작으로 발표됐을 때 한없이 기뻤다. 그러나 그 작품 안에 얼마나 많은 허점이 들어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1등 입상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 소프라노 홍혜경과 테너 김우경이 2007년 1월 초연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서울을 중심으로 현대무용·연극·미술·음악·영화·퍼포먼스 등 현대예술 전 장르 간의 상호 교류를 근간으로 하는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초대 예술감독 김성희에 이어 2014년 이승효가 취임했다.


▲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이 3월 27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극장에서 카머텐처린(궁중무용수) 수상자로 선정됐다.

 


▲ 1996년 출범 이후 이듬해 외환 위기로 중단됐던 동아국제음악콩쿠르가 10년 만에 서울국제음악콩쿠르로 명칭을 바꾸고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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