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도는 떠났으나 200여 종이 넘는 그의 음반은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객석’의 필진이 가슴속에 뚜렷이 남은 한 장의 음반을 통해 그를 추모해본다
클라우디오, 방랑자 _ 송준규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고원들을 방랑한 여행자였다. 대부분의 위대한 음악가가 그러하듯 그는 결코 대기만성형의 지휘자가 아니었다. 경력 시작점부터 특출 난 천재로 여겨진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세계 최고의 무대들을 섭렵했다. 고향 밀라노를 시작으로 빈·런던·시카고·베를린, 그리고 말년에는 루체른과 볼로냐가 그를 초청했지만, 그는 충분히 머물지 않고 곧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방랑자는 어제와 오늘의 변화, 그리고 곧 다가올 내일의 사소한 차이를 사랑하는, 아니 사랑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자다. 아바도는 방랑자로 살았으며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방랑하는 이탈리아인이 머문 자리에는 기념할 만한 유적들이 남았다. 그 어느 곳보다도 사연 많은 베를린은 영광과 좌절, 그리고 부활의 드라마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마지막으로 모차르트 오케스트라가 그의 아이들로 남았다. 한 곳에 정착하고 새로운 열매를 키워낼 소임은 이제 아바도의 손을 떠났다.
그는 바흐에서 노노에 이르는 매우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진 음악가였으나 푸치니를 연주할 시간에 드뷔시를 공부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호불호가 분명했다. 시벨리우스·쇼스타코비치처럼 평생 거의 다룬 적이 없던 작곡가들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베토벤 지휘자였음에도 그는 ‘장엄 미사’를 단 한 번도 무대에 올린 적이 없었다. 일곱 살 때 드뷔시의 녹턴을 듣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바다’는 70대가 되어서야 처음 지휘했을 정도였다. 그는 모든 것을 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다루었다. 그런 그에게도 예외가 있었다면 그와 같은 방랑자적 감성을 공유했던 슈베르트와 말러였다. 그의 베토벤과 베르디, 심지어 무소륵스키마저 거부하는 격렬한 반대파들에게도 그의 슈베르트와 말러가 가진 권위는 인정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조금은 엉뚱한 음반을 골랐다. 그와의 첫 만남이었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그의 음반과 영상물 대부분을 가지고 있으나 개인적인 의미만을 따진다면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충분히 인상적이지도 않았으며 커다란 감동을 받았던 음반도 아니지만, 이 음반을 처음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를 추모하며 동시에 그와의 새로운 방랑길을 기대한다.
나의 영원한 슈베르트 맨 _ 박성수
나의 영원한 슈베르트 맨, 아바도가 떠났다. 벌써 2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건만, 1980년대 후반 그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슈베르트의 교향곡 전곡 녹음은 지금도 나의 영원한 슈베르트 레퍼런스다. 우중충한 관념주의로 채색된 슈베르트를 접해왔던 당시의 나에게 슈베르트는 그런 작곡가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던 사나이가 바로 아바도였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해맑은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작곡가가 슈베르트라고 일러주었던 그. 그의 슈베르트를 들으면서, 그가 지휘하는 ‘싱그러운’ 9번 교향곡을 감상하면서 나는 베토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말러가 구축한 만화경의 세계를 꿰뚫는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통해 10년 넘게 치성을 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던 ‘기나긴’ 브루크너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열쇠를 얻었다. 이제 그는 떠났고, 내 마음 한 곳에는 슈베르트의 ‘음악에(An die Musik)’가 남았다.
“그대가 만들어내는 달콤하고 성스러운 화음은 내게 하늘나라를 열어주었네…. 아! 성스러운 예술이여, 그대에게 감사….”
아! 슈베르트라는 소중한 선물을 내게 전해준 아바도! 당신에게 감사!
나의 아바도, 나의 베토벤 _ 최은규
아바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음반은 내게 베토벤 교향곡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 음반이자 그를 좋아하게 한 음반이다. 아마도 유난히 힘들었던 시기에 새벽 지하철 안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기에 더더욱 정이 가는지도 모른다. 지하철의 소음을 뚫고 한 음 한 음 귀 기울이며 음반을 듣는 그 시간 동안 산뜻하고 날렵하게 지휘하는 아바도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베토벤 음악에 가해졌던 과대 포장을 벗겨낸 그의 연주 덕분에 베토벤 교향곡은 으레 웅장하고 다소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던 오랜 오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까지 한번에 풀어지는 듯했다. 이후 아바도의 여러 명반들을 접하며 감탄했지만 내겐 아직도 아바도의 베토벤 음반이 가장 값지다.
내가 사랑하는 그의 수줍은 조력 _ 김주영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음악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필자의 전공인 피아노 작품이 아닌 경우는 그 기억이 더욱 강렬한데, 이 음반은 지금껏 ‘좋은 선입견’만으로 작용하고 있다. LP 원판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던 1970년대, 원판에 준하는 ‘원테이프’로 들었던 연주 중 뇌리에 생생한 연주는 나탄 밀스타인의 협주곡집이다. 그의 연주 중 차이콥스키와 멘델스존의 작품은 소위 ‘결정반’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짱짱하고 거칠게 들리는 운궁이 그 이유인데, 일견 날카롭게 들리는 음상의 향연은 거대한 비르투오시즘을 은유하고 있기도 하다.
빈 필을 지휘하는 아바도의 조력이 탁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협주곡 음반들에서 나타나는 아바도 특유의 ‘수줍음’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는 아고긱으로 모든 공을 강한 표현력의 솔리스트에게 돌리지만, 작품의 핵심을 모두 섭렵한 후에만 만들 수 있는 분위기 연출이 연주의 균형을 맞춘다. 이 음반에서도 이지적인 뒷마무리가 어떤 음반보다 완벽에 가깝다. 농염한 표정이 과도하지 않게 흐르는 부드러운 음상의 차이콥스키, 단정하면서도 폭넓은 사운드가 작품의 스케일을 자연스레 키우는 멘델스존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바도와 하루키가 안겨준 위안 _ 하종욱
내게 1994년의 가을은 모든 것이 낯설고 무기력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학교를 복학하며 앓아야 했던 어색함과 불안감을 달래주던 책과 음악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 그리고 이 4부작 연작소설의 1편에 표제로 사용되었던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까치 서곡’이었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도둑까치 서곡’을 스파게티를 삶는 데 안성맞춤인 곡이라고 지목하며 아바도와 런던 심포니의 연주를 “생기발랄하고 현대적이며 유려한 연주”라고 묘사했다. 그는 아바도의 연주를 토스카니니의 것과 비교했다. 하루키의 안내대로 아바도와 런던 심포니의 연주를 찾아다녔고, 그렇게 모셔왔던 것이 당시 7천 원에 구입한 ‘로시니 서곡집’의 중고 LP였다. 말러·베토벤·브람스·모차르트가 아닌 오페라 서곡집으로 아바도를 추억함은 이것이 처음으로 아바도를 경청했던 음반이었으며, 동시에 그 무렵 이 음악이 내게 안겨준 따스한 위로 때문이다.
노노의 음악에 담긴 휴머니즘 _ 이영진
루이지 노노는 생전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친밀한 사이였던 이탈리아 작곡가다. 아바도는 그의 작품을 콘서트 프로그램에 자주 채택하며 음반도 만들었다. 그중 단연 걸출한 건 ‘중단된 노래’.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파시즘의 희생양이 된 청년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이 처형당하기 직전에 쓴 편지를 텍스트로 채택한 작품이다. 동서 통일 후 인종 차별과 같은 반동적 분위기에 맞서 아바도는 1992년 12월 ‘중단된 노래’를 공연했다. 곡을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 명의 내레이터로 하여금 편지 전체를 낭독하도록 하여 회장에 참석한 관객들에게 휴머니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핏자국 선연한 음악이 기계적인 현대음악을 넘어서는 호소력을 담보하고 있다.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이 커플링 됐다.
화려하게 부활한 로시니의 걸작 _ 유형종
오페라 지휘자로서 아바도는 베르디 다음으로 로시니를 선호했다. 특히 ‘랭스로의 여행’을 세상에 알린 것은 중요한 공적이다. 이 오페라는 1825년 랭스에서 열린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의 대관식 축하용으로 단 4회만 공연되고 오리지널 스코어가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전체 악보가 발견되었는데, 아바도는 1984년 로시니의 고향 페사로 페스티벌에서 159년 만에 원래 악보를 부활시키고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음반으로 내놓았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14중창이 나오는가 하면, 기승전결 구조도 없이 온천장에 모여든 각국 귀족들이 대관식에 참석하지도 못한다는 희한한 줄거리를 가졌지만 작품 자체만은 천재적인 걸작이다. 아바도의 노력 덕분에 ‘랭스로의 여행’은 물론 로시니의 모든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신생 페스티벌이 세상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아바도는 이 오페라를 좋아해서 베를린 필을 이끌던 1992년에도 필하모니 홀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수차례 공연했고, 이 또한 소니 클래시컬에서 출반되어 있다. 두 음반 모두 아바도가 아니면 모을 수 없었을 14명의 로시니 주역급 가수들이 엄청난 노래를 들려준다. 샴페인이 터지는 듯한 로시니 오케스트레이션의 묘미를 살린 아바도의 지휘 또한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