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셸/헤레베헤/로열 플랑드르 필의 후고 볼프 가곡집

작품성·기획성·대중성 모두 만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후고 볼프(1860~1904)는 독일 리트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보수파 작곡가들에 의한 리트의 흐름이 브람스를 끝으로 끊어질 뻔했을 때 브람스 공격파의 선봉이요, 바그너 숭배자였던 볼프가 그 자리를 채웠던 것이다. 역시 후기 낭만주의자인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중요한 리트 작곡가이지만 음악학자들은 리트에만 집중한 볼프를 더 높이 평가한다. 볼프만큼 예민하게 시와 음악이 일치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 독일어권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약점으로 작용하여 볼프는 말러나 슈트라우스보다도 인기가 없다.
이 음반은 볼프에 대한 관심도를 크게 높일 만한 창의적인 기획과 훌륭한 연주를 담고 있다. 우선 관현악 반주로 대중성을 크게 높였다. 슈트라우스 리트의 인기 비결도 관현악 반주에 있지 않은가? 또 볼프 리트 중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뫼리케 가곡집을 중심으로 선곡했다. 작곡자가 전체 53곡의 뫼리케 가곡 중 직접 관현악으로 편곡한 12곡이 온전히 이 음반에 담겼다. 여기에 뫼리케의 시도 아니고 편곡도 스트라빈스키의 것이지만, 스페인 가곡집에서 두 곡이 추가되었다.
에두아르트 뫼리케는 목사이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인의 재능을 발휘했지만 1834년에는 정식으로 루터파 교회를 맡았다. 그러나 평생 심인성 질환에 시달린 심약한 성품이었고, 목사를 선택한 것 자체가 아버지를 대신한 삼촌의 바람에 따른 결과다. 그래서 목사로서 굳건하지 못한 신앙과 가슴속에서 이글거리는 세속적 욕망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에 격렬한 사랑을 경험했다. 그러나 누이의 반대로 접었다가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된다. 정식 목사가 되기 이전에 쓴 유명한 소설 ‘화가 놀텐’(1832)의 주인공은 집시 여인의 간계로 약혼녀 아그네스를 버리고 백작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놀텐의 친구인 배우 라르켄스는 놀텐의 이름으로 아그네스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놀텐이 아그네스에게 돌아가자 라르켄스는 자살하고, 아그네스도 지금까지의 편지가 라르켄스의 것임을 알고는 미쳐버린다. 놀테가 그 충격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아그네스는 시체로 발견된다. 이 소설이야말로 뫼리케를 괴롭힌 트라우마의 반영일 수 있다. 볼프는 어떤가? 그는 십대에 매독에 걸렸고 그것 때문에 여생을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 보냈다. 그래서 뫼리케의 시에 담긴 종교적 경건함과 에로틱한 욕망의 이중성, 죄의식을 자신의 얘기인 양 절절하게 악보에 옮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음반은 CD와 DVD 각각 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DVD는 홍보용 부록이 아니고 무려 56분에 달하는 작은 영화다. 주인공으로 바리톤 디트리히 헨셸이 직접 출연하여 목회자이면서 한 소녀에 대한 애욕으로 갈등하는 뫼리케의 모습을 상징화하고 있다. 이 영화는 대사가 없는 대신 음반에 실린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현실과 환상이 왔다 갔다 하는, 쉽지 않은 영화지만 필자는 이 영상을 통해 뫼리케와 볼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들의 예술에 훨씬 가까이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헨셸의 노래는 음성의 아름다움과 표현력 모두 완벽에 가깝고 배우로서도 합격점 이상이다. 볼프의 관현악 편곡 솜씨는 ‘이탈리안 세레나데’로 입증한 바 있듯이 슈트라우스 못지않다. DVD 규격으로 포장하여 CD 가격을 붙였다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끌지 않을까 싶은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디트리히 헨셸(바리톤)/
필리프 헤레베헤(지휘)/
로열 플랑드르 필하모닉
EPR Classic 2013 EPRC 014
(1CD+1DVD,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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