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예프/게르기예프의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차르’와 ‘천하장사’의 믿고 듣는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현재 러시아 음악계 최고의 셀러브리티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 두 사람의 한계는 어디일까. 러시아 내외의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페스티벌, 국가적 사업과 각종 공익적 사회 활동까지, 나이를 넘어 단짝 궁합인 두 사람의 행보는 지칠 줄 모른다. 지난 소치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 게르기예프는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다. 보로딘·스트라빈스키 등의 행사 음악에 그의 손길이 닿았음은 말할 것도 없는데, 거의 반나절 단위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리허설과 콘서트를 병행하는 숨 막히는 일정의 지휘자가 보여준 또 하나의 ‘서프라이즈’였다. 마린스키의 지배자이자 런던 심포니·빈 필 등의 가장 가까운 동료인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며 미세하게 흔드는 손가락 하나하나는 이제 마법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추예프 역시 30대 피아니스트의 범위를 훌쩍 벗어나는 활동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내 영재 음악가들을 위한 뉴 네임스 후원재단의 회장이며,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재단의 예술감독으로 작곡가의 미공개 작품을 발굴해내고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석권과 함께 일찌감치 정부로부터 ‘국민 예술가’ 칭호를 받은 그는 최근 러시아 대통령 직속 문화예술위원회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다. 모든 것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협연과 독주회를 치르는 음악가의 경이적인 에너지 덕분이다.
2009년 시작된 마린스키 레이블은 아직 많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중한 레퍼토리 선택, 과장 없이 균형 잡힌 음질로 ‘믿고 듣는’ 러시아 음악 레이블이 되기에 충분하다. 천하장사 피아니스트 마추예프와 함께 한 차이콥스키 협주곡 1·2번 앨범은 예상대로 터질 듯한 박력과 짜릿한 속도감이 특징이다. 여기서 그치면 단순한 블록버스터 앨범이 될 뻔했는데, 마추예프의 차이콥스키는 특유의 우수와 충동이 불규칙하게 흘러넘치는 즉흥적 표정을 명확하게 감지해내고 있다. 묵직하고 흔들림 없는 타건은 작곡가 자신도 조절할 수 없었던 감성의 무게를 적절한 금속성 울림으로 대변한다. 다소 무뚝뚝하고 차갑게 마무리되는 프레이징은 매너리즘이 아니라 마추예프만의 깔끔함이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응원도 만족 이상의 수준이며, 독주자와 지나치게 밀착돼 전반적인 음색이 드라이하게 마무리된 2번보다는 1번의 세련미가 인상적이다.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3번은 마추예프가 차이콥스키보다 더 애정을 갖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 앨범의 연주도 치밀한 계획과 연출이 악장을 넘어가며 펼쳐지는 흥미로운 해석이다. 타건을 가볍게 조절하여 상큼한 배음을 뽑아낸 1악장, 다양하고 흥겨운 리듬을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2악장의 변주들을 거쳐, 갑작스레 거대해진 음향을 거칠게 뿜어내듯 연주하는 3악장 등에서 점진적으로 흥분을 고조시키는 솜씨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휘된 호연이다. 2012년 게르기예프가 감독을 맡고 있는 모스크바 부활절 축제에서 연주된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역시 매끄러운 진행과 노련미가 안팎으로 발휘된 연주다. 과거 여러 가지 음반상을 받은 런던 심포니와의 교향곡 전집과 비교해보면, 전작이 리듬의 예리함과 차가운 서정성이 두드러졌던 데 반해 이번 녹음은 연주자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교묘하게 독려한다. 빠른 템포 설정이 지나쳐 균형이 살짝 무너지는 부분이 있는 4악장보다 밝고 명랑한 2악장의 스케르초와 농염한 매력이 전면에 부각되는 3악장이 훌륭하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 데니스 마추예프(피아노)/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SACD MARO 548
SACD MARO 549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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