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나탈리 드세 파리 현지 인터뷰

샹송을 사랑한 오페라 디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영화음악 작곡가 미셸 르그랑과 함께 음반을 발매한 나탈리 드세는 새로운 터닝 포인트에 놓여 있다


▲ ⓒSimon Fowler

얼마 전 나탈리 드세는 오페라 무대를 떠나 색다른 보컬 세계를 추구하고 싶다고 선포했다. 그래선지 지난해 9월 툴루즈 카피톨 극장에서 공연된 마스네의 ‘마농’은 남달랐다. 그녀의 마지막 오페라 무대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드세가 오페라 무대에서 완전히 은퇴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마음은 오랫동안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해볼 수 없었던 연극과 새로운 음악 프로젝트들로 풍만해져 있었다. 그 첫걸음으로 그녀는 영화음악의 거장 미셸 르그랑과 함께 파리 시내의 생 라자르 전철역 복도에서 미니 콘서트를 가졌다.
“전 세계 오페라극장에 이어 끝내는 전철역에 섰노라!”라는 드세 자신의 말처럼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녀는 또 미셸 르그랑과 함께 ‘그와 그녀 사이에’라는 음반(Erato)을 출반했다. 이번 앨범은 그녀의 터닝 포인트를 시사하는 예일까?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각광받는 나탈리 드세가 영화음악과 샹송으로 알려진 르그랑의 작품을 음반화하기까지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지난 1월 19일 몹시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그녀의 최근 심정을 정리해본다.

샹송으로 풀어내는 영화에 대한 사랑

미셸 르그랑의 작품을 노래하게 된 것은 2008년부터인가요?

맞아요. 툴루즈의 미디 피레네 극장 무대에서 제게 카르트 블랑슈(백지수표, 공연과 관련한 전권을 부여)를 주었던 로랑 펠리 덕분입니다. 카르트 블랑슈를 받았지만 정작 뭘 노래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불가능하겠지만,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미셸 르그랑의 샹송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심정을 토로했지요. 그러자 로랑 펠리는 “불가능할 것은 하나도 없다”라며 용기를 주었어요. 그 후 2008년부터 저는 미셸과 함께 50여 회의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로랑 펠리가 준 카르트 블랑슈 프로그램에는 르그랑의 샹송에 로랑 펠리가 연출한 버전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2회 공연으로 기획되어 더 이상 무대에서 공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르그랑과 함께 음반으로 만들게 된 겁니다.

르그랑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그의 집에서 만났어요. 사실 우리는 함께 작업한 적은 없었지만, 1990년대 말에 이미 서로 인사를 나눈 적 있는 사이였죠. 제가 그의 샹송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아주 기뻐하며 50여 곡을 제 앞에서 연주했고, 저는 그중 20곡을 선정했습니다.

오페라 디바인 당신에게 이번 음반 출반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음반은 제 경력의 터닝 포인트를 시사합니다. 저는 그간 오페라에서 할 수 있는 역들은 차례로 다 불러봤죠. 이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보고 싶습니다. 따라서 이번 음반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죠. (그녀는 ‘피가로’ 지와의 인터뷰에서 르그랑을 만나지 못했다면 샹송과 연극, 나아가 코미디 뮤지컬을 위해 오페라 무대를 떠날 마음을 먹지 못했을 거라 말했다.)

당신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르그랑의 샹송을 통해 표출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적인 어떤 것에 끌렸다기보다 음악적 접근에 대한 측면이 더 강하죠. 영화에 대한 헌정, 특히 프랑스 영화감독 자크 드미(1931~1990)의 뮤지컬 영화에 대한 헌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나요?
저는 그 영화들을 줄줄 외울 정도예요. 그래서 다시 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로슈포르의 연인들’ ‘당나귀 공주’ ‘쉘부르의 우산’과 같은 영화들은 여러 번 보았습니다. 르그랑의 샹송을 노래하는 것도 제게는 아주 익숙한 행위입니다.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즉 대여섯 살 때부터 그의 노래를 부르며 자라왔으니까요.

음악적으로 르그랑의 작품들을 어떻게 봅니까?
그는 아주 훌륭한 ‘작곡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영화음악 작곡가를 멸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 인정받으려면 현대음악을 쓰거나 알려진 정규 오케스트라, 혹은 유명 극장에서 프로그램 된 공연에서 연주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라벨이나 드뷔시에 견주고 싶어요. 모차르트가 우리시대에 재탄생한다면 그 또한 르그랑처럼 영화음악을 썼을 겁니다. 그는 하프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뿐만 아니라 재즈·샹송·영화음악까지 모든 스타일의 작품들을 잘 작곡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작품들에서 르그랑적인 어떤 것, 즉 그만의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셸 르그랑은 나디아 불랑제 아래에서 배웠고, 2013년 존 노이마이어를 위한 발레곡도 썼다.)

‘옌틀’은 이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버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임했나요?
‘내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모방할 수 있다면, 그녀처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간절히 원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곡들을 저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대중가수 치고는 보컬 파워가 뛰어나다. 반면 나탈리 드세는 이번 앨범에서 오페라 때와는 달리 일명 ‘백색 보이스’라고 불리는, 거의 바이브레이션 없는 납작한 창법으로 불렀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로 노래된 ‘Papa, Can You Hear Me?’ 같은 곡들은 당신의 해석이 더 감동적이고 극적이었어요.
이 곡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옌틀’에서 표출되는 캐릭터의 연약함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은 여성 억압적인 사회에서 막 탈출한 후의 새로운 삶을 그리고 있어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나 그 순간 그녀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샹송을 부르기 위한 오페라 가수의 새로운 도전

당신은 폭발적인 비르투오시티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이번 음반에서는 바이브레이션이 제거된 전혀 다른 창법으로 부르더군요.
그 점이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페라 무대에서 성장한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건 아주 어렵습니다. 마이크를 쓰며 노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창법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일상적인 목소리를 쓰며 단어들에 집착하면서 청중과 사적인 공간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들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는 개념이랄까요. 거대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청중을 향해 음들을 투사하는 오페라적 체험과는 전혀 다르더군요.

당신의 보컬 파워를 일상적인 마이크용 음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나요?
샹송은 오페라보다 저음이 더 낮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저 자신의 보통 음성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그 다음은 스타일의 문제입니다. 저는 자크 드미의 영화음악이 담긴 모든 음반을 익숙히 들었습니다. 따라서 각 가수들이 영화 속의 샹송들을 어떻게 노래하는지 잘 알고 있었죠. 자크 드미는 이 샹송들이 말하듯 노래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점을 알고 있는 게 큰 도움이 됐죠. (미셸 르그랑은 ‘피가로’ 지와의 인터뷰에서 오페라의 고음 패시지들의 경우 작품 자체와 어우러지기보다 그저 디바의 괴성을 듣는 경우가 많지만, 드세의 고음은 아주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고 말했다. 또한 피아노를 위해 한 옥타브 아래로 변조된 곡들도 노래할 수 있는 드세의 존재는 작곡가로서 천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코멘트 했다.)

영화 ‘당나귀 공주’ 중 카트린 드뇌브가 케이크를 만들며 노래하는 샹송은 정말 너무 빨라서 노래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더군요.
맞아요. 이 샹송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가수만이 부를 수 있어요.

발음 분절의 경우도 차이가 있나요?
일단 샹송은 음역이 낮다는 점에서 말처럼 분절하는 것이 용이합니다. 오페라의 경우 일정한 음역 이후는 머리를 통해 발성을 하면서 모음을 찌그러트려야만 합니다. 종종 청중이 오페라 대사 이해가 안 된다고들 투덜거리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어떤 음높이부터는 거의 명확한 대사 전달이 불가능하죠. 이 점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재즈를 좀더 노래할 계획은 없나요?
한국 재즈 가수 나윤선을 좋아해 자주 듣습니다. 연주회도 자주 가요. 젊은 여성 재즈 가수인 세실 매코린 살반트도 환상적입니다. 스물다섯 살이지만 대단히 원숙한 가수죠. 제가 재즈를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와 음악성을 지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지만요. 하지만 재즈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샹송조로 노래할 수는 있습니다.

르그랑과 두 번째 음반을 만들 계획이 있나요?
그와 함께 오케스트라 편성의 음반을 만들고 싶어요. 색채감이 넘치는 그의 음악이 지닌 은밀한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르그랑의 음악은 오케스트레이션이 정선되고 아름다워서이기도 합니다.

르그랑이 당신만을 위한 작품을 계획하고 있나요?
우리는 12곡으로 구성된 연작을 구상 중인데, 사실 이 작품들은 르그랑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위해 쓰기 시작한 곡들이에요.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가사를 썼지요.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공연이 성사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곡들을 저를 위한 것으로 변형해 초연하고 싶어졌습니다. 스트라이샌드가 아닌 제 음성에 어울리도록 음역을 다시 고쳐 써야 하니 베리만의 마음에 꼭 안 드는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르그랑과 베리만이 이 연작 작업을 끝내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드세와 르그랑은 이미 런던에서 초연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프랑스어 버전으로 2015년 공연할 계획이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치하 프랑스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되었다.)


▲ 새로운 음악적 동반자인 영화음악 작곡가 미셸 르그랑과 함께 ⓒSimon Fowler

연극 무대를 향한 도전

요즘 제임스 조이스의 연극 무대를 준비 중이지요?
아직 연극 무대는 아니고 렉처 무대를 준비 중입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몰리 블룸의 긴 독백을 발췌한 텍스트로 구성된 극이지요. 20세기 초반에 쓰인 작품인데 매우 모던하고, 섹스에 대해 많이 말한다는 점에서 노골적이죠.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지만 몰리 블룸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불면증 때문에 생각이 아주 많죠. 이 모놀로그는 그 순간 그녀의 뇌리를 스쳐가는 모든 생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일 생선을 사야 하는데?’ 하는 순간 동시에 ‘시간이 없는걸! 만약 내가 그를 오늘 만난다면…’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러다 ‘아니야, 웬 청승이야’ 이러는 거죠. 구체적이고 명료한 그녀의 하루들을 말하는 동시에 과거에 일어난 추억도 가미됩니다.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며 검증하는 순간인데, 어쩐지 불행한 기혼녀의 삶을 그리고도 있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여자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에게도 호소력 있는 텍스트인가요?
그럼요. 몰리 블룸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고, 동시에 매우 여성적인 사람으로서 우리 여성들 모두가 그녀와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삶 한가운데서 아주 비밀스럽게 은밀한 여성들의 사고를 말하고 있으니까요.

극작가 베케트도 아주 좋아하지요?
네. 저는 그의 극작법과 용맹함, 그리고 절망을 좋아합니다.

베케트의 작품을 연기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역을 맡고 싶습니까?
당연히 ‘오! 아름다운 날들이여’의 위니 역이지요! 이 역을 연기할 수 있다면 여든 살까지 손꼽으며 기다릴 겁니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당신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오페라를 다시 할 계획도 있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요. 그 예로 피아니스트 필리프 카사르와 함께 프랑스와 독일 멜로디 연주 시리즈를 기획 중이에요. 슈만·브람스·슈트라우스·풀랑크·포레·뒤파르크의 작품으로 꾸며집니다. 그리고 6월에는 남편 로랑 나우리와 함께 프랑스 작품으로만 된 음반도 녹음할 예정이고요. 안락은 늘 마취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특히 황금 새장 같은 오페라 무대는 더 그렇죠. 보수도 좋고 예술적으로나 사회적 신분상 존경받기 때문입니다. 테크닉적인 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오페라에서 샹송으로 바꾸는 것이 샹송에서 오페라로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더군요.

미지의 미래를 향해 180도 커리어를 바꾼 나탈리 드세의 행보에는 감동과 좌절, 그리고 고통이 있었다. 대부분의 성악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베일로 가리고 화려한 이미지만 보여주지만,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좌절을 스스럼없이 토로해왔다.
“스포츠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거침없이 공식적으로 보도합니다. 왜 우리 성악인들은 그러면 안 되나요? 제가 목 종양으로 노래를 멈추게 되었을 때 청중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화려함 뒤에 가려진 고독과 아픔, 그리고 이것들을 승화시키는 무엇인가가 그녀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이제 50세를 앞두고 오페라 무대를 떠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밥벌이는 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드세의 강철 같은 의지였다. 브라보, 나탈리 드세!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