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비온디/ 에우로파 갈란테의 ‘키아라의 일기’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한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파비오 비온디의 신작 ‘키아라의 일기’는 지난해 제작된 동명의 다큐멘터리에 사용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다. 타이틀의 ‘키아라’는 비발디의 애제자로 그가 남긴 많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영감을 제공한 베네치아 피에타 보육원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키아라(1718~1791)를 가리킨다. 키아라는 생후 두 달 만에 피에타 보육원 계단에 버려졌다. 이곳은 고아나 버려진 아동들을 양육하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이 14세기에 설립한 자선기관이다. 남자 아이는 16세가 되면 떠나야 했지만 여자는 결혼만 하지 않으면 평생을 지낼 수 있었다. 특히 음악 재능을 지닌 여자 아이는 8세부터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아 부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활동했는데, 키아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재능이 있던 연주자였다.
비온디와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감독 루크레치아 레 몰리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는 키아라가 남긴 일기를 토대로 제작됐다. 키아라로 분한 여배우는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순간부터 비발디를 정점으로 자신이 사사한 당대 명망 있는 음악가들이 오가고, 1782년 재정난으로 음악원이 사실상 해체되는 순간까지 보육원의 흥망성쇠를 1인칭 시점에서 연기한다. 주요 장면마다 관련 음악이 스토리를 극적으로 꾸미고 화면은 현대 베네치아와 연주자들의 연주 장면, 여배우의 내레이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영화의 핵심이 내레이션과 음악이기 때문에 비온디는 이 작품을 모노드라마로 만들어 극장 투어를 진행 중이다.
음악을 추출한 음반은 비온디의 걸작으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다. 연주에 앞서 럭셔리한 사운드가 먼저 귀를 자극한다. 일반 CD인데도 SACD 같은 고해상도의 맑고 투명한 음향을 띠며, 휴지 부분에서마저 밀도 있는 현장의 소리를 전달한다. 비온디와 ‘그의 악단’은 기교와 표현력을 겸비한 독주와 빈틈없는 화성의 합주를 통해 피에타 보육원이 왜 베네치아 바로크 음악의 중심이 됐는지를 모자람 없이 들려준다. 음반엔 일곱 작곡가의 9개 작품이 수록돼 있는데 대부분 바이올린 협주곡과 현악 신포니아 형식이다. 작곡가의 중심은 역시 비발디이며, 그의 후임 안토니오 마르티넬리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비발디가 키아라를 위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RV372에서 비온디는 잦은 더블스토핑(1악장)과 잔결꾸밈음(3악장)을 천의무봉의 솜씨로 들려준다. 빠른 악장에서 불같은 속도를 적용해 아망딘 베예의 연주(Zig-Zag Territoires)와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린다. 키아라가 “잘 생겼다”라고 묘사한 마르티넬리도 키아라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했는데 비발디의 그것과 비교하면 아주 흥미롭다. 1악장과 처음부터 독주로 시작하는 2악장엔 1750년대 이후 작품답게 고전주의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3악장의 짧은 카덴차에서 선보이는 비온디의 현란한 초절 기교는 특필할 만하다. 이 밖에 비발디와 동시대의 조반니 포르타가 들려주는 갈랑 스타일의 현악 협주곡과 마르티넬리와 함께 근무한 가에타노 라틸라의 장대한 신포니아도 생소하지만 귀에 쉽게 들어오는 매력이 넘친다. 반면 음반과 함께 DVD로 제공되는 다큐멘터리는 비교적 감흥이 덜하다. 다만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가 베네치아를 방문할 때에 맞춰 비발디 신포니아 RV149가 울리는 장면이나, 비발디가 보육원을 그만두고 빈으로 떠날 때 키아라가 “떠나지 말라”고 간청하는 장면은 꽤 극적으로 묘사돼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하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 파비오 비온디(바이올린·지휘)/
에우로파 갈란테
Glossa GCD 923401
(1CD+Bonus DVD,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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