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문제 제기2 교향악단 단원 고용 환경

65퍼센트의 불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1년마다 치르는 실기평정과 2년 단위의 고용 계약, 단원들은 불안하다

‘낙하산 인사 철폐, 고용 환경 개선’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여느 회사 노조원들의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이를 외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교향악단의 트럼펫 연주자가 있었다. 교향악단 단원들이 거리에 선 것은 최근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불거진 심상찮은 사건들 때문이다. 지난해 성남시향은 실기평정과 계약만료를 이유로 단원 7명을, 올해 초 목포시향은 노조에 가입한 단원 27명을 정리해고했다. 최근 천안시향·목포시향의 단원들은 상임지휘자의 극단적인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려온 것을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1, 2년 사이 여기저기서 터진 일련의 사건들을 특정 교향악단의 일시적인 문제로만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피해를 입은 단원들은 공통적으로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공정하지 못한 인사권’을 사건의 배경으로 꼽는다. 교향악단 구성원 간의 개인적 차원의 갈등이 아니라 교향악단이 운영되는 구조 전반이 품은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 국공립교향악단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해 운영된다. 세부적인 운영 방침은 다를 수 있지만 전체적인 틀은 같다. 각 국공립 교향악단이 비슷한 틀 위에서 운영되는 한 이런 문제는 어디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약 20개 국공립 교향악단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설립되었다. 교향악단 단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로는 국내에서 처음 생긴 단체다. 작년에 그들은 20개 단체 954명의 단원을 대상으로 교향악단 단원의 근무 여건에 대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동시에 각 교향악단의 운영 근거인 지방자치단체 조례와 운영 규칙을 분석하며 단원들의 근로계약조건 전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설문조사 결과 단원들이 실제로 고용불안을 심하게 느끼고 있으며, 부당대우가 빈번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장 김태일은 ‘객석’과의 인터뷰를 통해 단원들의 열악한 환경은 교향악단 내 ‘힘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비상식적인 지휘자의 폭언이나 공정하지 못한 인사 처리에도 단원들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근무평정자인 지휘자가 단원의 인사권을 쥐고 있고, 사무국은 창의성과 융통성이 필요한 ‘예술 활동’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 없이 획일적으로 행정사무를 처리한다. 단원이 지휘자와 사무국을 견제할 만한 힘이 부족해서 비효율적이거 부당한 대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러한 ‘힘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공정한 인사 처리를 꼽았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인간성과 실력,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지휘자를 위촉하여 단원과 지휘자가 서로 존중하며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원들의 평정도 공정하게 이루어져 타당한 이유 없이 단원이 해촉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교향악단 단원도 예술단체를 한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지휘자나 사무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을 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 그들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오직 예술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국내 교향악단 단원들의 고용 실태

실제로 교향악단 단원들은 어떠한 조건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가? 다음은 2013년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의 ‘전국 교향악단 실태조사’를 참고하여 정리한 31개의 지방자치단체 소속 교향악단의 고용 환경이다.

* 임금의 경우는 급여대장을 제출한 9개 국공립 교향악단만을 표본으로 한다
* 소통채널의 경우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954명의 국공립 교향악단 단원을 표본으로 한다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가 제시한 교향악단 단원 고용 환경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임단원은 조례상 ‘일반 공무원에 준하여 매일 상근하는 자’라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나가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어느 공무원군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신분으로 근로권을 보호받을 뚜렷한 근거가 없다. 둘째, 획일적인 근무 시간은 공연을 위한 탄력적 시간 운용에 비효율적이다. 단원들은 정해진 근로 시간 외에 개인적인 연습 시간이 따로 있다. 이를 고려하지 못한 채 정해놓은 융통성 없는 근무 시간은 창의적 예술 활동에 부적합하다. 셋째, 과도한 실기평정은 연주자의 경험과 연륜을 무시한 채 기능 위주의 과다경쟁을 부채질한다. 인사상의 불이익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협회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각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조례를 통합적으로 규제할 상위법령의 제정을 제안했다. 또한 공정한 근무평정과 악단 구성원 간 순조로운 소통을 위해서 지휘자 선발을 비롯한 인사 제도에 보완책을 마련해 설득력 있는 채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근로자와 예술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

교향악단 단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어려움에 대해 주로 공감되는 바는 ‘소통’의 문제다. 그중에서도 지휘자와 단원 간의 소통이다. 최근에 빚어진 교향악단 사건이 주로 지휘자와 단원 간에 일어난 것이고, 단원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평가제도의 평정자로서 지휘자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단원의 평정에 관여하지만 지휘자 임명에 단원들의 의견 반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사라는 예민한 절차를 처리함에 있어 지휘자와 단원, 이 두 교향악단 구성원 간의 충분한 공감과 설득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단원과 지휘자 간의 신뢰, 그리고 단원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사무국 사이의 신뢰를 좀먹는다.
그동안 다른 직업군에 있어서는 근무 여건과 고용 환경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늘 존재해왔다. 근로자는 법으로써 보장받은 노동권을 바탕으로,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주에 대항해 의견을 내고 힘을 모아왔다.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의 발족과 그들의 노력은 ‘예술가’인 교향악단 단원들도 결국 교향악단이라는 단체에 속한 ‘근로자’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리하여 그간 사회적으로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교향악단 단원들의 근로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공감을 받으며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편, 단원들의 환경 개선에 대한 교향악단단원협회의 주장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국민적 공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라는 직업의 특성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원들의 안정적인 신분 유지나 보수·복지 혜택의 보장을 위해서는 ‘근로자’라는 보편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유연하고 효율적인 근무 시간을 위해서는 ‘예술가’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내세운다. 대립되어 보이는 두 가치를 함께 내포하는 교향악단 단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근로자와 예술가의 경계에 선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를 충분히 알려야 그들의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가 “힘의 균형에 대한 회복”이라고 요약한 그들의 목표는 ‘예술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것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권력이나 돈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인사, 그리고 효율적인 운영 체계를 바탕으로 좋은 연주 하나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 예술가에게 당연하고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얻으려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상황이 바로 지금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현실을 짊어진 ‘근로자’로서 대면한 단원들에게 ‘예술’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기본으로 향한 자정작용은 이미 시작되었다.

글 이채은 인턴 기자(chaelee@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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