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거문고팩토리는 이정석·유미영·정인령·김선아로 구성된 거문고 앙상블이다. 최근 해외 공연이 많아 국내 무대에서 접하기 힘들었는데, 2집 앨범 ‘이마고’ 발매를 계기로 오랜만에 관객과 조우한 무대였다.
먼저,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거문고계의 좌표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거문고를 이용한 창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창작의 물꼬를 튼 정대석이 있고, 서양의 현대음악과 어울림을 도모했던 김진희, 현의 수를 늘려 화현금(和絃琴)을 만든 이재화, 음악을 통해 인문적 기획과 접속했던 허윤정이 있다.
이러한 맥락과 달리 거문고팩토리가 남다르게 느껴지고 각광 받는 이유는 이들이 개발한 악기에 있을 것이다. 기존 거문고를 잘라 짧게 만든 미니 거문고, 다리 사이에 첼로처럼 끼고 활로 긋는 첼로 거문고, 실로폰의 주법을 이용하여 술대로 현을 쳐 연주하는 실로폰 거문고가 그것들이다. 다른 이들이 새로운 음악의 창작에만 집중할 때, 이들은 새로운 악기를 제작하며 동시에 그 악기에 걸맞은 음악을 만들어왔다. ‘새 술은 새 부대에’가 아니라 ‘새 부대를 짰으니 새 술을 빚자’는 것이었다.
이번 무대로 가보자. ‘Intro-I′m’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많은 수의 거문고가 놓여 있는 무대로 등장한 멤버들은 이제 이들의 대표곡이 된 ‘거문고&탱고’와 ‘정중동’을 매끄럽게 선보였다. 거문고 특유의 술대질이라기보다는 일렉트로닉 기타의 강한 스트로크 주법에 더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문고&탱고’에서 빠른 리듬을 타며 호흡을 맞추는 동안에도 관록과 여유가 돋보였다. 이어 이번 앨범에 수록된 ‘서나령’이 연주됐다. 곡을 연주하기 전 예술감독 이정석은 ‘서나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창단 이후 가장 힘든 고비가 찾아왔을 때, 김선아는 이 힘든 시간을 담아 정인령과 함께 곡을 썼어요. 우리는 이 곡을 발판 삼아 힘든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래서 선아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서나령’이라 했습니다.”
그들의 고백이 음악보다 먼저 나와서였을까? 잔잔한 가야금 선율을 타며 흐른 ‘서나령’은 이들의 고민과 성숙의 농도가 제대로 담긴 곡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프랑스어로 성충(成蟲), 즉 ‘성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번 앨범명과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세 명의 주자가 한 대의 실로폰 거문고에 붙어 술대로 현을 쳐서 연주한 ‘별금자’는 거문고 하면 떠오르는 묵직함보다는 악기에 숨겨진 아기자기한 소리를 들려준 순서였다. 다만 독특한 주법을 시각적으로 ‘전시’할 줄 아는 이들이기에 세 명의 주자가 감싼 실로폰 거문고와 그 주법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한 감이 있었다.
무대 후반에서는 2집 앨범에 수록된 ‘파랑새’ ‘아리아스’ ‘환유’ ‘Black Bird’를 연이어 선보였다. 보컬리스트 이나겸과 함께 한 ‘파랑새’에서는 여린 목소리 하나를 위해 숨죽이며 호흡을 모으는 집중도와 은은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네 곡을 연이어 듣는 동안 내가 발견한 것은 ‘선율성’이었다. ‘팩토리’라는 단어, 거문고의 기술적 개조, 강한 비트 등으로 그간 실험과 뭔지 모를 기계적 건조함을 선사했던 이들은 예전처럼 신 나게 놀면서도 그 안에 자신들의 노래와 선율을 담아낼 줄 아는 모습으로 성장한 듯했다. 1집부터 끌고 온 음악이 쭉 펼쳐진 이번 무대는 성숙한 자세가 돋보였던 시간이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거문고팩토리·종려나무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