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 연습실에서 만난 지휘자 임헌정은 ‘가벼움’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꺼냈다.
거창한 포부 대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브루크너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에게서 새 바람의 에너지가 불어왔다
취임 25년이 되는 올해, 지휘자 임헌정은 부천필 상임지휘자직을 내려놓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직을 수락했다. “때가 되면 미련 없다”라던 그의 말처럼 임헌정과 부천필이라는 실과 바늘은 홀연히 기나긴 세월을 정리했다.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그였지만 큰 변화 맞이한 지금, 들을 이야기가 많으리라 생각해 예술의전당 연습동에 위치한 코리안심포니 연습실을 찾아갔다. 마침 직원과 단원을 충원하기로 한 코리안심포니의 채용 면접이 진행되던 날이었다. 평소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을 알기에 빠르게 촬영을 끝내기 위해 함께 대기 중인 사진작가와 작전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성격의 지휘자이신가요?” “음… 약간 고뇌하는 스타일?” “좋아요. 고뇌. 선생님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담아보죠.”
뜬구름 잡는 정보를 간단히 공유한 후 배경음악으로 깔아둔 노래가 지휘자 취향에 거슬리지는 않을지 내심 걱정하며 주어진 짧은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는데, 임헌정이 환한 웃음을 띠며 연습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브루크너 교향곡 악보를 올려둔 보면대 앞으로 그를 유도하자 ‘고뇌’ 작전을 눈치 챘는지 갑자기 모차르트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 ‘아마데우스’ 다들 봤죠? 살리에리는 당대 가장 권위 있던 작곡가였지. 모차르트는 까불기만 한 가벼운 사람이었고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살리에리 음악은 모르잖아요. 사람이 너무 진지하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배경지식을 습득한 우리의 사진작가. “옛날에는 많이 고뇌하셨다는 소문이 있던데요”라며 지지 않고 되묻는다.
“옛날에는 세상 고민을 내가 다 하는 줄 알았지. 술만 먹으면 어디 가서 인상 쓰고 앉아있었으니까. 난 이제 인상 쓰고 있는 게 제일 싫어요. 서로 사랑해야 사회가 밝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25년 동안 함께해온 부천필에 대한 걱정, 코리안심포니의 새 수장으로서의 부담감 등은 이제 그의 몫이 아니었다. 세상 걱정 다 짊어진 듯한 고뇌하는 모습은 사진기에도, 녹음기에도 담기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발전, 예술의 완성도에 관한 대화에서 그의 말은 ‘개인’에 그 중심이 있었다. 스스로 인정할 만한 노력을 하는 것, 단원 개개인이 만족할 만한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행복한 개인들의 소리가 모이는 곳이 오케스트라라는 단순한 진리 앞에 ‘부천필 사운드’니 ‘제2의 르네상스’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구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지휘봉) 흔드는 사람이지.”
지금 우리가 궁금한 것은 변화를 맞이한 임헌정의 생각보다 그의 지휘봉에 담길 힘찬 에너지다.
부천필과의 25년 긴 세월을 정리하며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 제안을 받고 여러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고민은 안 했어요. 정부가 운영하는 오케스트라니 이제 나라를 위해 봉사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 정도. 부천필을 떠날 때가 분명히 넘은 상태였습니다. 늘 25년을 넘기지는 않겠다고 말했고, 지난해 사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제안이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거죠. 코리안심포니는 오페라와 발레 반주를 같이 한다는 게 장점이에요. 교향곡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보다 단원들의 감성이 훨씬 풍부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페라나 발레도 직접 지휘할 예정인가요?
오페라는 할 수 있겠지만, 발레는 전문가의 영역이라 잘 모르겠네요.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추는 거라면 괜찮을 텐데, 우리가 발레에 음악을 맞춰줘야 하니 굉장히 어려운 분야예요. 발레의 언어를 정확히 알고 점프했을 때 언제 떨어지는지, 사람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죠.
지난 1월, 전임 상임지휘자의 마지막 정기연주회를 객석에 앉아 관람하며 무슨 생각을 했나요?
생각? 허허허, 별 거 있나요. 잘해야지. 앞으로 더 잘해야지.
취임 기사가 나기 이틀 전에 소식을 들은 부천필 단원들은 서운함이 크지 않았을지 궁금하네요.
정부가 하는 인사 업무이기 때문에 비밀을 지켜야 했어요.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천필 단원들은 처음엔 좀 놀랐겠지만, 다 이해했겠죠. 사실 이런 인사 문제는 미리 결정되어야 합니다. 부천필과 약속한 임기가 1년 남았으니 조금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문화부에 물었는데, 그건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부천필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부천에서의 임기를 다 끝마치고 코리안심포니로 갔으면 좋았겠죠. 그래도 계관지휘자로서 4월 교향악축제도 부천필과 함께 하고, 8월 말 유럽 투어도 계획한 대로 진행합니다.
정부의 방침이라지만, 음악가로서는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인사가 미리 결정돼서 해당 당사자들이 현재 직책을 정리할 시간도 갖고, 향후 계획도 세울 시간을 마련해주면 좋겠어요. 외국 교향악단의 경우 차기 지휘자가 몇 년 전에 결정되고, 현 지휘자는 자신의 임기까지는 소신껏 맡은 바를 다할 수 있잖아요. 그게 좋은 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상황이 안 되나 봅니다. 당장 코리안심포니의 이번 시즌도 대관이나 협연자 스케줄을 잡는 데 무척 애를 먹었죠.
부천필은 오랫동안 선생님과 호흡을 맞춰왔으니 빈자리가 크겠네요.
누구는 제가 평생 할 줄 알았다는데,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10년 전부터 물러날 것을 생각해왔습니다. 부천필 전용홀을 건립하는 문제 때문에 이걸 기다리느라 지금까지에 이른 거예요. 아직 건립 계획은 있다고 하지만, 예산이 있어야 하니 진행이 더딘 거죠. 어느 지역 사회를 가건 찬성과 반대는 있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계속 건립이 연기됐습니다. 취임 20주년이 된 2009년에 이제 퇴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25년이 되었네요. 어휴, 사반세기면 얼마나 길어요. 25세 청년이 50세가 된 나이 아니에요.
완벽주의 지휘자의 인간미
오케스트라 연습 스타일이 완벽주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아유, 그건 기자들 소설이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에요. 만나는 단원들마다 그러던데요.
흠… 그래요? 그런데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거죠. 나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연습 때 즐겨 하는 말이 있어요. “불량 연주하면 잡아가. 불량식품 팔면 잡혀간다잖아.” 음악이라는 것도 인간 정신의 영양분이니까 음악가는 연주를 잘 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그러려면 완벽하게 해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음악이라는 건 지휘자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소리를 내는 당사자의 마음이 우러나와야 해요. 글 쓸 때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죠? 건성으로 쓰고 나면 나중에 스스로 봐도 이상하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단원들 마음의 소리가 우러나게 하는 게 지휘자의 의무지요.
단원들의 마음을 우러나게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일단 지휘자가 열심히 공부해야죠. 내가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당신들 왜 그런 소리를 내쇼?”라고 윽박지르면 되겠어요? 준비도 안 된 사람을 따를 리 없죠. 우리는 왜 열심히 해야 하는가, 열심히 하면 무엇이 좋은가를 알려주는 게 지휘자의 역할이죠. ‘이게 나한테 왜 좋아’ ‘이게 나한테 무슨 보람이야’ 하고 의심이 가면, 그 마음이 그대로 소리가 돼요.
2011년 3월, 4년 만에 부천필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설 때 리허설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중단하고 꽤 추상적인 말씀을 하셨죠. “음악은 지휘자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지휘자와 같이 지휘를 해야 합니다.”
했겠죠, 뭐.(웃음)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건가요?
아무 의미 없어요, 허허허. 가끔 하는 소리예요. 단원들이 몇 십 명이나 되니까 게을러진 것 같은 사람들이 보이면 긴장하라고 하는 말이죠.
개개인이 흐트러진 게 보이나요?
보이고 들리죠. 그게 안 들리면 지휘 관둬야지.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는 뜻이지요. 본인이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는 대충 하다가 성가대 지휘자라도 맡으면 ‘아니 왜 이 사람들이 연습을 안 해와’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죠. “입장 바꿔 생각해봐. 당신들이 지휘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가만있을 상황인가” 하고 농담조로 이야기한 겁니다. 이야기를 할 때 사람 기분 나쁘게 말하면 안 돼요. ‘맞아. 지휘자라면 힘들겠지’ 하고 마음으로 느끼게 해줘야 하거든요. 사람 마음을 모으는 게 가장 힘들어요.
부천필 재직 당시 연습량이 굉장히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헛소문이에요. 그런데 말러는 ‘탄호이저’를 처음 무대에 올릴 때 80회나 연습했대요.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초연 때는 몇 백 번을 연습했다 하고요. 난이도가 높은 곡을 처음 연주하려면 그 곡을 배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어요. 할 만큼 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베를린 필 같이 역사와 전통이 쌓여 있는 오케스트라들의 경우 브람스 교향곡 같은 레퍼토리들은 두어 번만 연습해요. 하지만 학생들을 데리고 연주하면 두 번이 아니라 스무 번을 연습해도 될까 말까죠. 어려운 곡이라면 좀더 많이 연습하고, 쉬운 곡은 두세 번에 끝내도 되고,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겁니다. 그렇지만 처음 연주하는 곡을 단원들이 소화도 안 된 상태에서 연주하면, 바로 그게 불량 연주예요. 그러면 검찰에서 와서 잡아가요.
‘검찰에서 잡아갈 만큼’ 불량 연주를 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나요?
아니, 뭐 농담으로 하는 얘기죠. 사람들은 우리에게 음악가 정신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장사꾼’이라고 이야기하죠. 나는 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왜 그걸 신기하게 생각하는지 몰라요.
25년 만에 새로운 단체를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큰 변화일 것 같습니다.
신 나요. 인생에서 새로운 것은 뭐든 굉장히 신 나는 거예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가는 가잖아요. 새로 만나는 단원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이루고, 이를 통해 청중이 감동 받을 수 있는 연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 자체가 얼마나 신 나는 일인가요? “아이고 지겨워”라고 말하면서 일하면 우울증 생겨요.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브루크너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천필과 브루크너 전곡 사이클을 진행한 후, 바로 올해부터 코리안심포니와 다시 브루크너 전곡 연주에 도전합니다. 어떻게 달라질까요?
나부터 좀더 원숙해지겠죠. 오스트리아에서는 브루크너가 매우 자주 연주돼요. 힘들 때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는 친구 같은 작곡가죠. 말러 작품은 한국에서 이제 많이 연주되고 있어요. 말러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브루크너에 대한 호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6년 동안 조금씩 사이클을 연주해오면서 느껴지는 반응이 있어요.
브루크너도 이제 마니아가 늘어날까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연주가 좋으면 저절로 늘어날 겁니다. 브루크너 붐을 일으키면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고요. 예술의전당 측에서 기획을 제안해온 건데, 예술의전당에 연주를 올리면 파급력이 좀더 있을 거예요. 원래는 부천필과 함께 하기로 계획된 것이었지만 내가 자리를 옮기면서 코리안심포니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올해 11월 21일, 첫 번째 공연으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아무런 이유 없어요, 허허허. 이거 유행어인데 몰라요? ‘아무 이유 없어’라고 말하는 코미디언이 있는데 난 요즘 그 친구가 참 좋더라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9개 중에 하나 선택하신 건가요?
물론 7번 교향곡이 작곡가로서 처음 인정받았던 성공작이기도 하니, 겸사겸사 정했죠. 프로그램 일정이 이제 정해졌는데 올해 11월에 7번을 연주한 후 2015년에 네 곡, 2016년에 또 네 곡을 연주해서 마무리합니다. 일정을 잘 보면 올해 마지막 곡은 7번, 내년 마지막 곡은 8번, 그리고 내후년 마지막 곡은 9번이에요. 이런 심오한 논리가 있지요.(웃음) 브루크너가 바그너를 매우 존경했기 때문에 7번 교향곡은 바그너의 ‘리엔치 서곡’과 함께 연주해요(2015년 2월 6번, 4월 3번, 10월 1번, 12월 8번, 그리고 2016년 2월 4번, 4월 2번, 10월 5번, 12월 9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7번 교향곡이 초연될 때 브루크너의 나이가 지금 선생님 연세와 한 살 차이더라고요.
내 나이가 몇인데요?(61세…) 에이, 난 20대예요. 정신연령은 20대예요.
휴대전화도 이번에 구입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제 써요, 이제. 옛날엔 학교에서 수업하고 부천 가서 연습하면 집에 오곤 하니까 불편한 게 없었죠. 직원들이 할 말 있으면 집으로 전화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코리안심포니에 오니 국립단체들과 연결할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공연기획팀 윤 과장이 사라 그래서 샀어요. 원시인에서 미개인으로 내려왔죠.
평소 취미생활은 따로 있나요?
없어요. 사람 사는 생활이라는 게 공부하고 연습하고, 그러다가 재충전해서 그 다음 거 연주하는 거죠. 브루크너를 연주하게 되면 스코어 공부하고 관련된 책도 다시 다 들춰봐요. 들여다볼 때마다 ‘내가 이걸 놓쳤구나’ 하고 깨닫게 돼요. 린츠와 잘츠부르크로 여행도 갔어요. 오스트리아엔 호수가 많은데, 거길 가면 조그만 오리가 있어요. 물 안으로 들어가면 피아노 한 대와 책상 하나가 있지요. 말러가 작곡하던 방에 가서 30분씩 앉아 호수를 바라보곤 했어요. 혹시 말러를 만나려나 싶어서. 그런데 만났어요, 말러를.
정말요? 어디서 말러를 만났나요?
호수에서요. 아, 그건 정말 말러였죠. 세상이 그렇게 조용하다는 걸 잊어버리고 살았더라고요. 우리 사는 세상은 너무 시끄럽죠. 좀 전에도 밥 먹으러 갔는데 주문 들어갈 때마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띠리띠리리 하고 계속 울려대고, 저번에는 청평에 놀러갔는데 글쎄 건너편 주막집이 어찌나 시끄럽던지요. 어머니 장례식 때 빈소에서 좀 자려고 했더니 냉장고 소리는 또 왜 이렇게 큰지요. 우리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그야말로 세상에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그런 순간, 경험 못 해봤죠?
고향집이 시골에 있어서 종종 내려가면 참 적막합니다.
아, 그러면 그게 브루크너예요. 그 가운데 호수가 있고, 거기 안개까지 자욱이 있으면 그게 바로 브루크너죠. ‘이 소리다’ 하고 영감을 받는 것은 한 순간에 와요. 단원들에게 “좀더 안개 낀 것처럼 해봐, 좀더 부드럽게 해봐” 하고 주문을 하는데, 나는 브루크너를 만나고 왔어요.
한 번에 말러와 브루크너를 모두 만나고 왔네요.
나는 갈 때마다 만나고 돌아와요. 그게 음악가 인생이에요. 회화적 이미지가 머릿속에 들어오곤 하죠. 브루크너의 조용한 고향 마을에도 갔는데, 브루크너는 그곳의 교회에서 어릴 적 성가대원으로 노래를 불렀어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열 살 즈음 아이의 순수한 목소리입니다. 얼마나 예쁜가요. 브루크너의 작품에는 그런 소리가 있어요. 연습하다 말고 “빈 소년합창단의 음악을 들어봐라”라고 말하곤 합니다. 욕심 없는 세상의 소리, 그게 브루크너라고요. 아까 내가 20대라고 말한 건 농담이긴 하지만, 나이가 60대라 해도 마음은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해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당에 못 간다는 말도 있잖아요. 어렸을 적 어린이 찬송가를 참 많이 불렀어요. “반짝반짝 별 빛나는”이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를 참 좋아했는데, ‘반짝반짝 빛나니까 이 하늘엔 동방박사가 지나갈 거야’라는 상상을 했죠. 그런 선율이 갖고 있는 감성, 거기서 나오는 나만의 환상, 이런 것들이 평생 동안 마음 깊이 남아있다가 음악 할 때의 에너지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 때 좋은 노래를 많이 부르게 하고 또 많이 들려줘야죠. 그런 차원에서 코리안심포니에서 키즈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나는 안 시켜줘서 못 하지만.(웃음)
오케스트라도, 음악에도 균형이 중요하다
오케스트라에게 ‘안정성’이란 양날의 칼일까요? 노동 환경의 측면에서 복지가 중요하면서도, 너무 안정되어 있으면 음악이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에요. 음악도 결국 균형을 잡는 문제지요. 우리 몸도 균형을 잃었을 때 병이 나는 것입니다. 국립단체들이 법인으로 바뀌는 이유 중 하나도 결국 매너리즘 때문이죠. 그런데 예술가들을 또 너무 내몰면 기본 생활권이 침해되죠. 안정된 직장이 있어야 여기에 인생을 투자하지 않겠어요? 노력한 만큼 대접을 받는다는 믿음 속에서 음악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오케스트라 가서 대충 놀면서 연주해도 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고요.
코리안심포니의 고용 환경은 안정된 편인가요?
아직은 열악하죠. 여기는 기본급에 연주 횟수당 수당을 받는 구조인데, 기본급이 올라야 해요. 균형이 깨져 있어요. 우리가 사회적인 지지를 받으려면 여론의 호응이 있어야 명분이 서는 것이니 우선은 음악가로서 할 일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일단 연주를 잘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공감을 얻겠죠. 코리안심포니는 수당제라서 일을 안 하면 수입이 없으니 몸이 힘들어요. 사람이 몸이 힘들면 의욕도 안 생기죠. 일을 하면서 즐겁기도 하고 보람도 있고, 직장으로서의 안정성도 얻어야 하는데 그게 고민입니다.
연습실 음향을 꼼꼼하게 체크하시던데, 마음에 드는지요?
그럼요. 부천에 있다 오니 여긴 천당 같네요. 부천필 때는 처음에 연습실도 없어서 로비에서 연주하곤 했죠. 나중엔 식당을 개조했더니 가운데 큰 기둥이 두 개나 있었습니다. 음향은 조금 개선해야 돼요. 소리를 너무 흡입만 해서도 안 되고, 반사만 해도 안 되는데 지금 잘 울리지 않는 경향이 있네요. 연습할 때부터 예쁜 소리를 내야 공연장에 가서도 억지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정비해야 될 점들이 많겠네요.
할 게 정말 많아요. 11월부터 브루크너를 연주할 건데 활 체크부터 시작해서 악보도 통일해야 하고, 여러 판본을 대조해보면서 연구도 해야 합니다. 사전 작업을 많이 해야죠. 우리 단원들은 워낙 바쁘니까 틈틈이 연습도 해놔야 하고요.
판본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 여러 판본 중에 선택을 해야 하지만, 전 여러 개를 모두 비교해서 섞기도 해요. 가끔 “어느 판본을 쓰세요?”라고 질문들을 하더라고요. 브루크너를 좀 안다고 하는 질문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임헌정 판’을 쓴다고 대답합니다. 내가 필요한 걸 갖다 쓰는 내 판본이죠.
“선생님, 이제 다 여쭤봤어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헌정은 “고마워요, 일찍 끝내줘서”라고 답하며 화사하게 웃는다. 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직은 시간이 더 있겠다며 코리안심포니의 새 기획 시리즈인 ‘철학, 음악을 만나다’를 화두로 올린다. 부천필 시절, 말러 사이클을 공동으로 일궈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가 해설을 맡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10월 31일 무대에 오르는 첫 번째 공연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짜여 있다. 니체가 열렬히 지지했다가 등을 돌린 바그너, 그리고 그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R. 슈트라우스의 표제음악이라는 조합이 흥미롭다. “얼마나 의미심장해. 굉장히 재밌을 거야”라고 눈을 반짝이는 그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말은 최은규 씨가 하겠지. 나는 흔드는 사람이거든.”
호탕하게 웃으며 돌아서서는 또다시 연습실 음향 개선을 위해 악기 배치를 바꿔볼까, 커튼을 바꿔볼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대감독과 대화하는 임헌정. 미간 사이에 고민이 자연스레 가득해지는 걸 보니 ‘부천필 사운드’에 이은 ‘코리안심포니 사운드’라는 하나의 현상이 다시금 우리 음악계의 화두로 떠오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gaeksuk.com) 사진 홍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