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오 제이드

제9회 슈베르트 현대음악 콩쿠르 피아노 트리오 부문 1위 없는 3위 입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첼리스트 이정란, 피아니스트 이효주로 구성된 트리오 제이드.
2005년에 결성된 트리오가 꽃이 피기까지, 조용한 성장의 시간 속에는 그들의 진심이 담겨 있다


▲ 바이올린 박지윤 1985년 출생.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2002년 파리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과정과 실내악 전문사과정을 마친 후 모차르테움 국립대학을 졸업했다. 양성식·장 자크 캉토로프·이타마르 골란·이고르 오짐을 사사했다. 2004년 티보 바르가 콩쿠르에서 1위 및 청중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롱 티보 콩쿠르와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페이 프랑스의 페이 드 라 루아 국립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재직 중이다.


▲ 첼로 이정란 1983년 출생. 서울음대 재학 시절인 200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한국에서는 양성원, 파리 음악원에서는 필리프 뮐러를 사사했으며, 다른 두 멤버와 함께 실내악전문사과정에서 이타마르 골란을 사사했다. 2003년 루토스와프스키 콩쿠르에서 특별상, 2003년 모리스 장드롱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으며, 2006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는 1위를 수상했다.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로 부수석으로 재직 중이다.


▲ 피아노 이효주 1985년 출생. 서울예고 1학년이던 2001년 파리 행을 결정하고 이듬해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자크 루비에 문하에서 공부했다. 파리 음악원의 실내악전문사과정에서 박지윤·이정란과 함께 이타마르 골란을 사사했다. 2010년 제네바 콩쿠르 준우승 및 청중상을 수상했으며, 쇼팽 왈츠곡집,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집’을 담은 앨범을 발매했다. 현재 하노버 음대에서 김미경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트리오 제이드는 2005년, 파리 음악원 유학 시절에 결성됐다. 올해로 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셈인데, 예원학교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인연은 조금 더 길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많은, 청춘이 여물어가기에 딱 적당한 기간이지 않을까. 10대 시절 이들 각자는 한국 음악계에서 반짝반짝한 ‘루키’ 시절을 보냈고, 시간 차를 두고 파리로 유학을 간 이들에게는 얼마간의 ‘조용한 시절’도 주어졌다. 각자가 성숙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 사이사이 어우러졌을 우정의 결과물은 솔리스트로서 이들이 보여준 음악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일 테다. 그 아름다운 10년을 엿보기 위해선 관찰자에게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하여 봄이 시작되는 4월의 화창한 어느 날, 기자는 교향악축제에서 경북도립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대구로 리허설을 떠나는 트리오 제이드와 함께 기차에 올랐다.
피아노 이효주, 바이올린 박지윤, 그리고 첼로 이정란까지 세 연주자는 간간이 자신들의 음악적 동지인 트리오 제이드의 존재에 대해 알려왔지만, 그 활동이 잘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프리미어’라는 이름을 달고 첫 정기연주회를 갖기 전까지는 말이다. 팀을 이뤄 파리 음악원 실내악전문사과정을 수학한 이들은 이제 딱 10년의 세월을 함께 해왔으나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한 건 2011년부터다. 그해 예술의전당 여름실내악 무대에 오른 후 함께 미래를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해 아트실비아 실내악 오디션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공식적으로 닻을 올렸다. 10회에 이르는 올해 스케줄은 4월 8일 교향악축제에서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협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리허설은 공연 전날, 대구에 위치한 경북도립교향악단의 연습실에서 진행됐다. 아침 일찍 떠난 기차에서 나와 중형택시에 올라탄 이후, 매니저 포함 여자 다섯 명에게 오후 10시까지 종일 함께 움직이는 일정이 주어졌다. 시종 웃음이 끊이지 않는 택시 안 대화를 들으며 도착한 경북도립교향악단의 연습실에서 미처 손도 제대로 풀어보지 못하고 리허설이 진행됐고, 연주를 마친 이들의 ‘작전 회의’를 듣는 것으로부터 실질적인 인터뷰는 시작됐다.
“오케스트라가 잘 맞춰주기만을 기다릴 순 없겠어. 우리끼리 안 맞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니 어떻게든 셋은 맞추자.”
이효주가 총대를 메고 나선다. “그래, 우리가 피아노에 맞추면 되겠다. 피아노만 따라가자.” 이정란이 맞장구를 친다. 온종일 진행된 관찰 기행에서 셋의 성격은 참으로 달랐다. 쾌활한 이효주는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할 말을 다했다. 서글서글한 웃음 담아 “난 네가 오늘 약간 대충하는 줄 알았잖아, 으하하”라 말하며 밉지 않게(?), 그러나 “헉” 소리 나게 만드는 리뷰들을 정리해주는 편이다. 감성적인 이정란은 좋게 말하면 치밀하고, 나쁘게 말하면 잔 걱정이 많은 편이다. 리허설을 마치자마자 택시 안에서 녹음해둔 리허설 음원을 들으며 본공연을 대비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은 그야말로 ‘착한 언니’ 과. 가장 예민하기 쉬운 바이올리니스트가 “헤헤헤” 웃으며 모든 걱정을 날려버리니 한 명쯤 쉬어가는 공간이 생기는 셈이다.
점심 식사를 하며,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그리고 두 시간에 걸친 기차 여행 중 수다와 인터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긴긴 대화가 진행됐다. 인터뷰 내내 누군가는 급작스럽게 솔직했고, 또 누군가는 중심을 잡고 음악적 비전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트리오 제이드에 대한 이야기와 각자의 현재 고민에 대한 넋두리가 널 뛰듯 뒤바뀌었다. 이 냉탕과 온탕의 반복 속에서 이들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은 다음 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리됐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국 하나의 화음을 내는 이들에게 ‘각기 제 목소리를 내는 냉정과 열정 사이’는 곧 트리오 음악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예원학교에서 파리로 이어진 인연

나이가 같은 이효주와 박지윤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나 친구가 됐다. 젊은이의 음악제에서 앞뒤 순서로 처음 마주쳤는데, 이효주는 박지윤이 연주한 마지막 음을 지금까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둘에 비해 두 살이 많은 이정란은 예원학교 시절 통학버스에서 얼굴을 익힌 사이다. 이효주와 박지윤은 “우리 사이에 언니는 전설 같은 사람이었고, 두 살이나 많았으니 하늘 같은 존재였죠”라고 입을 모아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2002년, 이들은 파리 음악원에 동시에 입학했고, 4학년이 되던 해 실내악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자고 결의했다.
“파리 음악원이 미국의 음악원에 비해 아무래도 솔리스트적인 면을 강조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실내악을 공부하는 과정을 밟고 싶었습니다. 실내악 연주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우리 연주를 객관적으로 체크해줄 사람이 필요했지요. 실내악 연주에 필요한 기술들도 연마해야 하고요. 피아니스트 이타마르 골란을 사사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받으면서 솔로 연주만으로는 부족한 점들을 배웠죠. 선생님은 서로 호흡하는 방법부터 스케줄 맞추는 요령까지 모든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세 명 각자의 스승, 자크 루비에·필리프 뮐러·장 자크 캉토로프는 우연히도 30년 넘게 트리오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세 스승은 트리오 제이드를 자신들의 연습 시간에 불러 실제 연주에서 소통하는 법, 영감을 주고받는 법을 현장에서 배우도록 도왔다. 지금도 연주회가 있으면 언제든 스승들을 찾아가 한번 들어달라고 부탁해 조언을 얻곤 한다. 수십 년을 함께해온 이들 스승은 “트리오는 결혼 생활과도 같아서 좋을 때는 정말 좋지만 원수 같이 느껴질 때도 있으니 그럴 땐 그저 초월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비결 아닌 비결을 알려주었다.
파리 음악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셋은 행복했던 파리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제일 예쁘고 좋은 나이,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를 파리에서 보내서 참 즐거웠어요. 저는 방향 없이 돌아다니는 걸 참 좋아하는데, 파리는 어딜 가도 예쁘죠. 우연히 간 카페가 헤밍웨이가 다니던 곳인 걸 발견했던 적이 있는데, 그런 역사적인 장소를 찾는 것도 즐거웠어요. 학교보다는 나와 있는 걸 좋아했지요.”
이정란의 말에 박지윤도 “감성이 발달될 시기에 파리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음악적 소양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거든다. 목표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던 이효주도 이들과 마찬가지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해서 아무래도 빨리 성취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음악적인 내면을 성찰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프랑스로 갔는데, 선생님께서는 꽃이 자라는 것처럼 아주 느릴지라도 자그마한 성장에 귀를 기울여주셨어요.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해주셨죠. 한없이 방황하던 나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고민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조용한 고민의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

이효주가 꺼내놓은 고민과 방황의 시간, 그리고 그 속에 진행된 조용한 성장은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난 박지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저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기도 전에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입학 시험을 봐야 하는데, 어깨가 아파서 한 달도 넘게 바이올린을 쉬어야 했죠. 다른 진로를 선택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이후에는 리듬을 찾는 법을 알게 됐죠. 정란 언니는 슬럼프 없었죠?”
슬쩍 건네준 박지윤의 화두에 이정란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는다. 바로 지금이 슬럼프라고.
“저는 오히려 학창 시절에는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어요. 콩쿠르에 떨어지면 좌절하긴 했지만 그걸 슬럼프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거든요. 내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는 길을 늘 걸어왔는데, 30대가 되고 보니 꿈꿔왔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있더군요. 남들이 보기엔 안정된 직장과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최근에 오히려 마음이 힘들었어요. 나를 계속 못살게 괴롭히는 게 없으면 완전히 도태될 것 같다는 딜레마가 있어요.”
이들의 화두는 순식간에 30대를 맞이한 음악가로서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넘어왔다. 서울시향의 부수석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리사이틀인 ‘첼로미학’ 시리즈를 꾸준히 진행 중인 이정란에게는 생활과 이상 사이의 조율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정란은 “삶이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음악적 이상은 점차 높아만 가니 ‘이 정도로 타협할까’ 하는 갈등이 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나 자신은 아는” 기준, 즉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이상을 끊임없이 스스로 재설정해야 하는 문제는 이제 한국 나이로 30대에 접어든 이들에게 공통적인 화두였다. 이야기는 첼로 소리가 너무 여린 것 같아 두꺼운 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정란의 절절한 고민을 잘 아는 이효주가 가만히 듣다가 이를 유머로 승화시킨다.
“이렇게 고민이 많으니 우리가 차이콥스키 작품을 초견으로 연주할 때, 언니가 호소하는 듯 ‘우는 소리’로 앞장서서 우리를 끌고 갔잖아요. 그러고 보니 언니는 솔로 리사이틀에서도 차이콥스키 곡을 연주할 때 가장 편안해보였어. ‘여기가 내가 이야기할 곳이다!’ 하고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랄까? 언니의 첼로 소리를 들으면 프레이즈 처리가 말하는 것과 똑같은 거 알아요? 모든 프레이즈에 콧소리가 다 있어서 한 음이라도 그냥 끝내는 법이 없거든요. 사실 지윤이처럼 말이 빠른 애들의 말투를 따라하다 보면 연주도 빨라지더라고요. 언니도 중저음 목소리로 말하면서 베토벤 협주곡 2악장을 해봐요.”


▲ 트리오 제이드는 올해 교향악축제에서 경북도립교향악단과 베토벤 3중 협주곡을 연주했다

서로를 잘 아는 트리오 제이드의 무기

동료의 음악에서 말투까지 잡아낼 줄 아는 친밀함은 곧 앙상블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연주 파트너이기 전에 친구인 이들은 음악보다 우정이 먼저인 사이다. 음악적인 마찰이 생길 시 등을 돌려버리면 그만인 기성 연주자들과 달리, 친구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갈등 자체가 하나의 추억이 된다. 이들도 2005년 처음 결성했을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있었다고 한다. 싱가포르 초청 연주회를 앞두고 말하는 태도나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을 두고 많이 싸웠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얘기를 해도 눈치를 봐야 하는 단계는 지났으니” 마음 터놓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된다.
서로를 알아주고 믿어주는 우정은 각자의 악기 세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연주 생활에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배울 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유학을 떠나기 전만 해도 실내악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박지윤은 트리오 제이드 활동을 시작하고, 2011년 페이 드 라 루아 국립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으면서부터 새로이 배우는 점이 많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이올린은 단선율 악기인데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병행하면서 입체적인 면을 발견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악장은 지휘자와 단원 사이를 조정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트리오로 연주할 땐 마음이 통하고 친한 사이니 여러 시도들을 편하게 해볼 수 있어요. 제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찾고자 하는 소리를 우리 트리오와 함께 연구하고 완성하는 과정이 정말 좋아요.”
이정란도 함께 연주할 때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그 무엇보다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베토벤 3중 교향곡 2악장 첫 부분에 첼로 솔로가 나와요. 매우 중요한 부분인 만큼 너무나 긴장되죠. 첼로 솔로가 끝나면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기술적인 난이도는 같지만 다 같이 연주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각자 기술적으로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셋이 함께 연주하면 어렵다는 사실에 덜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어떨 때는 ‘쟤는 왜 이렇게 연주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할 때가 있지요. 그런데 녹음해서 들어보면 그 친구 생각이 더 나을 때가 있어요. 서로 조금씩 배워가는 거죠.”
트리오의 즐거움에 대해 이효주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함께 연주하면서 오히려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 연주자들은 넓은 음역대에서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음색 훈련을 받아요. 피아노로 베토벤 소나타를 치면 그게 베토벤 교향곡처럼 들리게 하도록 훈련 받는데, 트리오에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하나씩 있으니 진짜 피아노다운 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하게 되죠. 어떻게 하면 건반악기인 피아노가 현악기 두 대와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고민을 하는 것이죠. 트리오 활동을 하면서 피아노만 연주할 때는 모르던 피아노의 성질을 더 잘 알게 됐습니다. 두 현악기와 함께 연습할수록 내가 어떤 매력 때문에 피아노를 선택했는지 더 잘 알게 돼요.”

홀수와 짝수의 차이, 그것이 트리오의 묘미

트리오 제이드가 꼽는 3중주의 매력은 각자 개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점. 넷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현악 4중주단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악 4중주단의 경우 말 그대로 네 명이 모여 하나의 악기가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스케일 연습을 같이 하면서 같은 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아가는데, 듣는 사람들도 현악 4중주단에 대해서는 넷이 똑같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트리오는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그대로 살릴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현악 4중주단은 참 대단하죠.”
하지만 하나로 맞추는 게 어려운 만큼 서로 다른 개성들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도 어려운 법. 셋 다 같은 색으로 통일해도, 누구 하나만 튀는 색을 입어도 안 되는 까다로운 드레스 선택 문제부터 짝수가 아닌 홀수 구성에서 오는 어려움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들은 비슷하게도 맞춰봤다가 완전히 있는 그대로의 캐릭터도 살려가며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트리오의 재미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각기 다른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묘미다. 박지윤과 이정란은 곡 해석에 있어 자신들은 직관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라고 말하며 “효주가 가장 분석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깜짝 놀란 이효주, “본인들도 분석하지 않으세요?”라고 되묻는다. “우리도 분석을 하지.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네가 좀더 성의 있다 이거지.(웃음)”
감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또는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이들의 기질은 종잡을 수가 없는데, 그 조화는 무대 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진행된 교향악축제 무대에 오른 트리오 제이드는 세 명의 연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한 호흡으로 맞춰야 하는, 음악사상 가장 잔인하다고 회자되는 베토벤 3중 교향곡을 연주했다. 이정란이 당당히 포문을 연 후 세 명의 연주자는 시시각각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작품을 쌓아 올렸다. 이정란이 특유의 진한 음색으로 로맨티시즘을 부여하면서 곡의 심연을 흔들어대면, 박지윤과 이효주는 이를 심화시켰다가 진정시키기를 반복하는 식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잘 맞지 않아 누군가의 입이 뾰로통해지면 옆 사람이 갑자기 냉정을 되찾고 미소를 날리기도 했다.

‘꽃’이 핀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는다

이들은 올해 교향악축제를 시작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준비한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이다. 트리오 제이드는 아트실비아 실내악 오디션에 라벨 피아노 트리오를 들고 갔을 만큼 아무래도 프랑스 레퍼토리에 강하다.
“그 나라의 언어를 아는 것은 음악을 이해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파리에 있으면 그곳에서 내려오는 전통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프랑스 레퍼토리를 많이 갖게 되지요. 그래서 친근한 만큼 아무래도 우리가 잘할 수 있지 않나 싶네요. 10월에 예정된 핀란드 초청 연주회에서도 빈 악파 작품들과 라벨 같은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함께 선보일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랑스 레퍼토리에 강한 악단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히는 것은 거부한다. 지난해 트리오의 첫 공식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와 아렌스키의 러시아 작품들을 선보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10월 16일에 예정된 금호아트홀 기획 공연이 슈베르트·하이든·모차르트 등 빈 악파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시리즈이니만큼, 이 기회에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아직 연주해보지 못한 새로운 레퍼토리들을 개발할 예정이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기간인 5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선보일 작품은 드보르자크의 ‘둠키’. 트리오 제이드를 처음 결성하면서 선택한 곡이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첼로 카덴차가 따로 있을 정도로 첼로에게 많은 비중이 실리는 작품이다. 피아노 트리오의 편성상 피아노가 리드를 하게 되고, 또 바이올린은 주선율을 담당하는지라 첼로가 조금 더 부각되는 이 작품에 대한 이정란의 애착이 크다. 세 명 모두 이 작품이 정서적으로 잘 맞아서 최다 공연한 역사를 가진 레퍼토리라며 자신 있게 소개했는데, 특히 어릴 적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품이니 예전의 모습을 회상해볼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에 도착한 트리오 제이드는 촬영을 위해 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그 꽃 한 송이가 피기까지 필요했던 정성의 시간만큼,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한 트리오 제이드에게도 그 시간만큼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진심의 속내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gaeksuk.com) 사진 박진호(studio BoB) 헤어·메이크업 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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